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을 깨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고 납승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버려라. 죽이고 살리는 변통이 모두 때에 맞게 하는 데 있고 호령과 저울대가 모두 손아귀에 돌아간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저 그럴 뿐이다. 산승도 다만 그런 법으로 우리 주상전하께서 만세 만세 만만세토록 색신(色信)과 법신(法身)이 무궁하시고 수명과 혜명(慧命) 이 끝이 없기를 봉축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모두 진실로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행은 지극한데 말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행이 될 수 없고, 말은 지극한데 행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지극하고 행도 지극하다 하더라고 그것은 다 문 밖의 일이다.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입문삼구(入門三句)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入門句)는 분명히 말했으나
    문을 마주한 한마디(當門句)는 무엇이며
    문 안의 한마디(門裏句)는 무엇인가.
    入門句分明道
    當門句作?生
    門裏句作?生

삼전어(三轉語)

    산은 어찌하여 묏부리에서 그치고
    물은 어찌하여 개울을 이루며
    밥은 어찌하여 흰 쌀로 짓는가.
    山何嶽邊止
    水何到成渠
    飯何白米造

17일에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심덩이가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눈구멍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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