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정월 초하루 아침에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음을 씻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4대는 각기 떠나고 영식(靈識)만이 홀로 드러났소. 비록 산하와 석벽에 막힌 것 같으나 이 영지(靈知)는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티끌 같은 시방세계에 노닌다. 그러면서도 그 자취가 끊어졌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청하면 곧 온다. 지옥에 있거나 혹은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그들은 지금 계묘년 섣달 그믐날 다 여기 와서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말해 보라. 지금 내 말을 듣는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멸하지 않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앗  !.
   산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가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어라 할 수 없다는 그것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빨리 몸을 뒤쳐 겁 밖으로 뛰어넘으라. 그때부터는 확탕(湯: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도 시원해지리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자세히 아는가. 여기서 만일 자세히 알면 지옥에 있거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관계없이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잔소리를 좀 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망령되게 4대를 제 몸이라 여기고 망상분별을 제 진심으로 알아 하루 내내 일년 내내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악업을 지어 왔다. 그리하여 그 정도가 같지 않으므로 지옥에 들기도 하고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있기도 하는데, 지금 갑진년 섣달 그믐날 모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인연을 버리고 온갖 일을 쉬고, 여러 생 동안 지은 중죄를 참회하여 없애고 자심3보(自心三寶)에 귀의하라. 불법승 3보는 그대들의 선지식이 되고 그대들의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도 다 이것에 의하여 정각(正覺)을 이루고는,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여 다 성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처와 보살도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일체종지(一切種智: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가 뚜렷이 밝고 10호 (十號) 가 두루 빛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심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귀의란 망(妄)을 버리고 진(眞)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분명히 깨닫는, 텅 비고 밝고 신령하고 묘한, 조작없이 그대로인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불보(佛寶)요, 탐애를 아주 떠나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피어나 시방세계를 비추는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법보(法寶)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아 과거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승보(僧寶)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참귀의처이며, 이것을 일심3보(一心三寶)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철저히 알았는가? 만일 철저히 알아낸다면 법법이 원만히 통하고 티끌티끌이 해탈하여 다시는 3도와 6취에 윤회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예로 들어 그대들을 깨닫게 하겠다.

   삼조 승찬 (三祖僧璨) 대사가 처음으로 이조 (二祖) 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 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불자들이여,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고 한다면 결국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일어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본성이 공(空)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 분명하여 의심이 없다면 바른 안목이 활짝 열렸다 하겠으나 혹 그렇지 못하다면 또 한마디를 들어 그대들의 의심을 풀어 주겠다. 옛사람들의 말에 `물질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본다. 그러나 중생들은 물질만 보고 마음은 보지 못한다' 하였다."
   이어서 불자를 세우고는, "이것이 물질이라면 어느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하시고, 또 세우고는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이라면 어느 것이 물질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물질이면서 마음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데, 요새 사람들은 형상을 버리고 빈 마음을 찾는다."


19. 최상서(崔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羅)씨 영혼이여, 나씨 영혼이여, 아는가? 모른다면 그대의 의심을 풀어주겠다.
   나씨 영혼이여, 63년 전에 4연(四緣)이 거짓으로 모인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남(生)이라 하였으나 나도 난 적이 없었다. 63년 뒤인 오늘에 이르러 4대가 흩어진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죽음이라 하나 죽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 이렇게 따라 죽지도 않고 또 나지도 않았다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실체가 없다면 홀로 비추는 텅 비고 밝은 것(虛明)만이 영겁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나씨 영혼을 비롯한 여러 불자들이여,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3세 부처님네도 설명하지 못하였고 역대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했다면 4생6도의 일체 중생들에게 각각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본래 갖추어져 있다면 무엇을 남이라 하고 무엇을 죽음이라 하며, 무엇을 옴이라 하고 무엇을 감이라 하며, 무엇을 괴로움이라 하고 무엇을 즐거움이라 하며, 무엇을 옛날이라 하고 무엇을 지금이라 하는가.
   삶과 죽음, 감과 옴, 괴로움과 즐거움, 옛과 지금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적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아무런 틀(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 시방세계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묘한 불토(佛土)요 더 없는 (無上) )불토며, 견줄 데 없는 불토요 한량없는 불토며, 불가사의한 불토요 말할 수 없는 불토인 것이다.
   이런 불토가 있으므로 이 모임을 마련한 시주 최씨 등이 지금 산승을 청하여 이 일대사인연을 밝히고, 망모(亡母)인 나씨 영가 (靈駕)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영가는 지금 어느 국토 (國土)에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티끌 하나에 불토 하나요, 잎새 하나에 석가 하나니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0. 조상서(趙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香托)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蔡)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 (本地風光)을 밟을 것이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幻海)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虛明)  한 점만이 환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大圓鏡)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 "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大圓覺)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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