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行狀)
문인 각굉(門人覺宏) 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慧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거처하는 방은 강월헌(江月軒)이라 하며, 속성은 아(牙)씨인데 영해부(寧海府)사람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인데 선관서령(膳官署令)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鄭)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妙寂艤)의 요연(了然)스님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至正) 4년(1344)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石翁)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僧堂)에 내려와 선상(禪牀)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선불장(選佛場)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1348) 3월 13일에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神通)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自性)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赤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삼천(三天)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천검(千劍)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백양(白陽)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法王身法王身 三天爲主利群民
    千劍單提斬佛祖 百陽普遍照諸天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부상(扶桑)의 해와 달이 서천(西天)을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猶是幢家弄精魂
    也大奇也大奇 扶桑日月照西天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葉靑花發一樹一 十方八面無對一
    前事不問後事長 香氣到地吾帝喜

   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年年此樹雪裏開 蜂蝶忙忙不知新
    今朝一箇花滿卿 普天普地一般春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禪)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淸凉臺)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스님은 답하였다.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選佛場) 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入無堂內出無外 刹刹塵塵選佛場
    庭前栢樹更分明 今日夏初四月五

   하루는 지공스님이 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齋堂)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普慶寺)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五更)에 홰치네.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板首)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通州)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平江府)에 이르러 휴휴암(休休艤)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四海)와 오호(五湖)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8월에 정자선사(淨慈禪寺)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蒙堂)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禪法)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扶桑國)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곧 평산처림(平山處林)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三韓)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佛祖)와 걸맞다. 종안(宗眼)은 분명하고 견처(見處)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先師) 의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根) 이 깨끗해 보리(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