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교화에서 열반까지

1. 최초의 설법(초전법륜경 또는 여래소설경)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누구에게 설법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아라라와 웃다카가 떠올랐으나 그들은 아깝게도 모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이 네란자라 강가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문들이었다.

   부처님은 그들이 고행하고 있을 녹야원(鹿野苑)으로 발길을 옮겼다.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까지는 여러날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부처님이 혼자서 그 길을 걸어가시는 도중에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수행자는 부처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의 얼굴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맑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모든 것을 이겨냈고 이 세상의 진리를 다 알게 되었고, 나는 스스로 깨달았으므로 내 스승은 없소, 또 나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녹야원으로 가는 도중 부처님은 하루 한 끼씩 얻어 먹으면서 쇠약해진 몸을 다스렸다.

   부처님이 녹야원에 이르렀을 때 다섯 사문들은 전과 다름 없이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간혹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의 타락을 비난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가까이 걸어오고 있는 부처님을 알아보았다.
   “저기 고타마가 오는군.”
   고타마가 싯다르타의 성이다.
   “그럴 리가 있나.”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 틀림없는 고타마야.”
   “왜 찾아왔을까?”
   “자신의 타락을 후회한 모양이지? 고행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 둔 사람이니까.”
   “우리는 고타마가 가까이 오더라도 모른 척하세.”
   “그래, 타락한 사문에게 우리가 먼저 머리를 숙일 건 없지.”
  
   부처님은 천천히 그들이 앉아 있는 곳까지 가셨다.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이상한 힘에 끌려 자신들도 모르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은 그들을 보고 조용히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내가 와도 일어서서 맞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으면서 왜 일어나 인사를 하는가?”

   다섯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놀랐다. 부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환히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부처님이 앉으실 자리를 마련했다.
   “고타마여, 멀리서 오시느라고 고단하시겠습니다.”
   부처님은 엄숙하게 말씀하였다.
   “이제부터는 내 성을 고타마라고 부르지 마라. 나를 여래(如來)라고 불러라. 나는 이제 여래가 되었다.”

   여래란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도 되고, 진리의 세계에서 설법하러 온 사람이란 뜻도 된다. 부처님은 다섯 사문들을 향해 최초의 설법을 하셨다.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사문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사문은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 치우친 길이란,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겨 버리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사문은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여래는 바로 이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 여래는 그 길을 깨달음으로써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

   이 설법은 부처님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난 말씀이었다. 그 자신도 출가하기 전까지는 카필라의 왕궁에서 지나치게 쾌락을 누렸었다. 그리고 왕궁을 버리고 출가한 뒤에는 극심한 고행으로 육체를 학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다 잘못된 길이라는 것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육체의 쾌락을 따르는 길과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의 길을 넘어선 곳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찾아낸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사문들이여, 그렇다면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 가지로 되어 있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작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이다.”

   팔정도(八正道)를 말씀하신 것이다. 부드럽고 차근차근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던 다섯 사문들은 이내 그 길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실 때 숲에서 살던 사슴들이 떼지어 나와 부처님의 말씀을 한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부처님은 다섯 제자를 거느리고 녹야원에서 한동안 머무르셨다. 어느 날 새벽 부처님은 강물에 얼굴을 씻고, 강변을 조용히 거닐고 계셨다. 그때, 저쪽 강기슭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한 젊은이가 보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고함을 치며 뛰어다녔다.
   “아, 괴롭다. 괴로워!”
 
   그 소리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부처님은 말없이 강 건너에 있는 그 젊은이를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젊은이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강을 건너 부처님 곁으로 왔다. 그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이 괴로움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하소연을 했다.
   “여기에는 괴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소. 대체 무엇이 그렇게도 괴롭소?”
 
   이 젊은이는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큰 부자의 외아들 야사였다. 야사는 왕에 못지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날 밤 야사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다. 흥겨운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야사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그토록 아름답던 시녀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추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야사는 집을 뛰쳐나와 괴롭다고 외치면서 거리를 헤맨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미칠 것 같은 그의 마음은 점차 안정이 되었고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한 것이 다시없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았다. 부처님은 야사에게 인생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야사는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出家)하여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 곧 신도가 되었다. 그가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신도였다. 야사와 같은 상류 가정의 아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바라나시에 퍼졌다. 더구나 야사처럼 재주 있고 학식이 있는 유망한 청년이 출가하여 부처님 아래에서 비구(比丘)가 되었다는 사건은 바라나시의 젊은 청년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뒤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친구들이 뒤를 이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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