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영은할당 선사 1) 제 2) 에 답함

   송 효종(孝宗)황제 묻되
   "어찌하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대승도(大乘道)를 깨치지 못하면 마침내 생사는 면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다시
   "어떻게 하면 깨칠 수 있습니까?" 하니,
   "본래로 가지고 있는 성품을 세월을 가져 연마하여 나아가면
   깨치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하시었다.

▒ 용어정리 ▒

[1] 영은할당(靈隱할堂) :
   (1103-1167) 임안부(臨安府) 영은할당 혜원(慧遠)선사다. 남악하 16세. 원오근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휘종때 미산(眉山) 금유진(金留鎭)에서 출생. 속성은 팽(彭)씨.
   13세에 약사 원(藥師院) 종변(宗辯)스님에게 출가하고 성도(成都)에 가서 경론을 배우고 운암사(雲巖寺)에 돌아와 휘(微) 선사에게 참예하여 묻기를

   "문수보살은 7불의 스승이라 하옵는데 문수보살의 스승은 누구 입니까?" 하니
   "금사 시냇가(金沙溪)의 마가집 며느리(馬家婦)다." 라고 일러 주었으나, 2년 동안 참구하여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혼자 정좌하고 있는데 어떤 중이 지나가면서 혼자말로
   "사대(四大)를 빌어서 몸둥이로 삼고, 육진(六塵)을 인연하여 마음이 나니, 육진이 없을 때 무엇을 가져 마음을 삼을건가" 하는 말을 듣고 문득 깨치고, 수좌에게 가서 소견을 말하니 "옳다" 하고 방장에 가서 휘화상에게 말씀드려도 또한 "됐다" 하셨으나, 어딘가 석연치 못한 곳이 있어 다음날 동료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떠났다.

   곧 원오극근선사에게 갔는데, 하루는 근화상 보설(普說)에 말씀하기를
   "방거사가 마조(馬祖)에 묻기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마조가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는 것을보아 일러주마.' 하셨다." 는 말을 듣고 대중 가운데 있다가 벌떡 자빠지면서 활연대오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은 놀래면서 풍기(風氣)가 동했다고 다들 당황하여 부축하여 일으키니, 사 말이 "내가 꿈을 깼다"하였다. 그날 밤 소참에 극근 화상에게 나아가 묻기를,
   
   "발가벗은 듯 한 물건도 없고, 적골이 드러날 듯 가난하여 돈 한 푼 없사오며, 집은 허물어지고 집안은 망하였사오니 화상께서는 도와주옵소서." 하니, 말씀이
   "칠진팔보(七珍八寶)를 일시에 잡으렴!" 하시는데, 사
   "어찌 도적이 문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하니, 근화상은
   "기틀은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독바다(毒海)에 떨어져 있느니라" 하는 것을,
   사 그 말씀을 이어 "할" 을 하니,
   화상이 주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면서
   "방망이 맛을 보앗느냐?" 하시는 것을,
   사 또한 "할" 하니, 화상도 연거푸 두 번 "할" 하셨다.
   사는 즉시 예배하니 극근이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을 지어주고 인가하였다.

   이로부터 아무도 사의 기봉(機鋒)을 당적하는 사람이 없게 되니 대중들은 사를 가리켜 철설원(鐵舌遠)이라 불렀다. 그 후 얼마 아니하여 극근이 열반에 드니 회남(淮南)으로 내려와 제방에서 연마하여 대자재삼매(大自在三昧)를 이루고 크게 도풍을 떨쳤다. 마침 그때는 대혜 종고(大慧宗고) 선사가 매주(梅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인데 왕래하는 사람에게서 대혜스님의 게송을 전해 듣고 놀라며 극구 칭찬하고
   "노사께서 말년에 이런 법자가 있었던가?" 하여 글과 원오근이 전한 법의(法衣)를 보냈다. 그때에 천하에 종풍을 드날리니, 칙명으로 고정산 숭선사(高亭山 崇先寺)에 있다가 얼마 아니하여 다시 칙명으로 영은(靈隱)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효종(孝宗)의 귀의가 두터워 자주 왕중에 참례하였는데, 여기 본문에 보이는 문답은 건도(乾道) 7년(서기1171 년) 1월30일, 찬덕전(찬덕전)에서 문답한 일절인데, 이날 처음 효종황 제를 만나서 여러 문답이 있었다. 다음에 본문에 계속하는 일단을 더 소개한다.
   
   사가 "본유지성(本有之性)을 닦아 대승도를 깨쳐야 생사를 면한다" 하니,
   황제가 "깨치면 어떠합니까?" 하고 물었다.
   "깨치고 나야 비로소 알 일이오니,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나 신이 대답하는 것이 다 옳지 않습니다."
   "일체 처(一切處)가 옳지않을 때 어떠합니까?"
   "체(體)를 벗어난 것이 현전하면 터럭끝 만큼도 가히 찾아볼 상(相)이라고는 없습니다. 고덕이 말하기를 '옳은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보리(菩提)라' 하였습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어떠합니까?"
   "눈 앞에 한 법도 없아온데 폐하께서 무엇을 가져 마음이라 하시옵니까?"
   "어떠한 것이 마음입니까?"
   사 일어나 차수(叉手)하면서 "단지 이것 뿐입니다." 하였다.

   사는 입적하기 전에 이미 오는 1월15일에는 입적한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관속(官俗)이며 단도(檀徒) 제자들과 도하(都下) 많은 사람들이 사의 열반상(涅槃相)을 본다고 다투어 절에 모여 들었다. 왕의 밀사(密使)도 와서 사의 거지를 살폈다.
   그날 큰 재식이 있었는데 사의 왕래거저가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날 재를 파하고 시자와 속관이 다 같이 방장(方丈)에 들어 갔는데 사는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꼭 닫았다. 사가 방에 들어 가신후 방장에 있던 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니 다만 원행자(猿行者 평소에 사가 기르던 검은 원숭이)가 한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섰을 뿐 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뒷문으로 들어가 보니 사는 이미 탑 위에서 시적하였다. 원행자가 가진 종이는 바로 사의 사세송(辭世誦)이었다. 향수 74세.

[2] 제(制) :
   천자의 말씀을 '제'라 한다.

[3] 대승도(大乘道) :
   소승도(小乘道)에 대한 말로서 범어를 음대로 적어 "마하연(摩訶衍)" "마하야나" 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본분도리, 종문일착자를 가르키고 있다.

   소승은 인간을 보기를, 구속 한정 상황하에서 자유 해탈을 구하는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연 그 수행이 자기 일신의 구제에 치우치는 것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수행이 개인 중심의 수행이며 구속 한정 상황을 전제하고 그에서 벗어나고저 하는 수행과 얻을 바 법이 있고, 그밖에 타인을 제도하거나 내지 본래부터 이루어져 있는 참된 자기에 대한 믿음과 그에 상응하는 보살행 즉 해탈행이 애당초 없다. 그러므로 작은 수레라 하며 소승으로 불리운다.

   대승은 이에 반하여, 본불생(本不生), 본불멸(本不滅), 본자해탈(本自解脫), 본자구족(本自具足),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본상을 믿는 신앙으로 출발하여, 그에 따른 큰 원력과 수행이 있게 되어 여기서 대승의 원력(願力)과 육도만행(六度萬行)이 벌어진다.
   일체 중생을 자기로 삼는 대승이 일체 중생의 고를 덜기 위하여 그 몸을 희생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 하기 위하여 무량겁으로 천만억의 목숨을 버리며, 마침내 일체중생과 더불어 같이 성불하고저 하는 원력은 그대로 대승도의 본연적 원력이며 당연한 귀결이다.
   석가모니불을 위시한 많은 불보살이 이 본분 원력의 시현으로서 백억화신을 나투는 것이며 항사(恒沙)보살이 이 대승수행을 하여 마침내 성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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