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물었다.
   "지금 사문들은 다들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經)·논(論)·율(律)·선(禪)과 지식(知解)을 낱낱이 배우므로 신도들에게 네 가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받을 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조하는 작용(照用)으로 볼 때 소리[聲]·색(色)·냄새[香]·맛과[味]·유(有)·무(無) 모든 법 등 낱낱의 경계에 티끌만큼의 집착이나 물들음도 없고, 집착하거나 물들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매일 만 냥의 황금도 받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무 등 모든 법을 대할(照) 때 6근의 반연을 다 깎아내 털끝만큼도 탐욕과 애착을 다스려 버리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시주에게 쌀 한 톨 실낱 하나라도 구걸한다면 축생이 되어 무거운 짐을 지고 끌려 다니면서 하나하나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며 구함이 없는 사람이며 의지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분주하게 부처가 되고자 탐착한다면 모두가 등지는 짓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랫동안 부처를 가까이 하면서도 불성(佛性)을 모른 채 세상을 구제하는 자를 구경할 뿐, 6취(六趣)에 윤회하면서 오랫만에야 부처를 보는 자, 그를 두고 부처 만나기 어렵다 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문수는 7불의 스승이며 사바세계에서 으뜸가는 보살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부처를 보노라' '나는 법을 듣노라' 하는 근거없는 생각을 내어 부처님에게 위신력을 받고 두 철위산(鐵圍山)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모든 학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고, 후학들이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보배 여의주'라 하며, '보배 꽃으로 발꿈치를 받쳐든다'하는 것이다.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내는 것은 유·무 등으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두고 '눈병 난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며, '봄에 매임(見纏)', '봄에 덮임(見蓋)' 또는 봄의 재앙(見蘖)이라고도 한다. 이제 생각생각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모든 티끌 때를 다 없앤다면 한 티끌 한 색이 온통 한 부처이며 한 생각 일으켰다 하면 그대로 한 부처인데, 3세5음(三世五陰)의 생각 생각이라면 그 숫자를 뉘라서 헤아리겠는가. 이것을 '허공을 가득 메운 부처'라 하며, '분신불(分身佛)', '보배탑'이라 하니, 그러므로 항상 찬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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