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을 찾아뵙고 하나 하나 알기를(知解) 구한다면 그것은 선지식 마군이니, 말과 견해를 내기 때문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내어 일체중생을 다 제도한 뒤에야 성불하겠다고 발원하면 이는 보살법지(菩薩法智)의 마군이니, 서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齋戒)를 지키고 선(禪)을 닦으며 지혜(慧)를 배우는 것은 유루선근(有漏善根)이다. 그들은 비록 도량에 앉아 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항하사 수 모래알만큼의 사람을 제도한다 해도 모두 벽지불과(壁支佛果)를 얻을 뿐이니, 이는 선근(善根)의 마군으로서 탐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탐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며 신령한 이치만이 오롯이 남아 매우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앉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삼매(三昧)의 마군이니, 오래동안 맛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열반에 올라 탐욕을 떠나 고요해지면 그것은 마군의 업(業)이다. 지혜로 해탈하였다 해도 얼마간 마군의 그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비록 백권 위타경 (圍陀經)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모조리 지옥의 찌꺼기로서 부처님과 같아지고자 하나 될 수 없는 일이다.

   선·악과 유·무 등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공(空)에 떨어지는데 근본(根本)을 버리고 지말(支末)을 쫓는 줄을 모르므로 도리어 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와 보리, 유· 무 등의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것이다.

   지금 거친 밥으로 생명을 잇고 헤진 옷을 기워 추위를 막으며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일 외에는 모두 유·무 등의 법일 뿐이어서 털끝만큼도 매인 생각이 없다면 이 사람은 점차 가볍고 밝아질 소지가 있다.

   선지식은 있음(有)에 집착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십구(十句) 마군의 말을 벗어나 말을 꺼내도 사람을 얽어매지 않는다. 설법을 해도 스승이라 자칭하지 않고 골짜기의 메아리같이 말이 천하에 가득 차 입으로 짓은 허물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쏠린다.

   만일 "나는 설법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이다"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또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다"라든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보리(菩提)·열반(涅槃)·해탈(解脫)..." 하면서 근거없는 말을 한다. 또한 하나하나 알음알이(知解)를 근거없이 설명하며 한 손을 들고 한 손가락을 세우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선(禪)이고 도 (道)다"라고 한다. 이런 말은 사람을 얽어매는 것으로 그칠 기약이 없이 비구에게 결박만 더해주는데,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구업(口業)을 짓은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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