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門 棒·喝
香山 編集

* 군소리
   바야흐로 시대는 확실히 사견(邪見)의 홍수 시대인가 봅니다. 이곳 저곳에서 스스로 깨달았다고 외치며 무리를 형성하여 그릇된 사견(邪見)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화두를 깨치면 저 화두를 공부하고, 화두를 어떤 틀에 맞추어 이건 如如 도리다, 卽如 도리다 하여 알음알이를 조장시키는 의리선(義理禪)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주일만에 견성(見性)시켜준다는 곳이 있다고도 합니다.
   제가 비록 참선문의 초학이지만, 조사들의 어록과 송대(宋代)의 선서(禪書) 중에서 참선에 대해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 보았습니다. 어떤 것이 바른 수행이고, 투철히 깨친 분들의 행리처는 어떠했나를 살펴보고 참선수행에 대한 정견(正見)을 갖추는 것이 이 사견의 시대에 요긴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십시오. 학인이 스스로 깨달았다고 자부하다가 명안종사에게 어떻게 박살나고, 어떻게 진실히 참회하고, 어떻게 단련 받는가를!
   학인의 견처가 알음알이의 분상에서 나온 것인지, 본분의 자리에서 나온 소식인지를 점검하기 위해 스승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얼마나 면밀히 학인을 살폈던가를!
   마치 요즘의 상황을 예언한 것과도 같은 대혜스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 군소리를 마칠까 합니다.
   
   대혜스님께서 어느날 조거제(趙巨濟)에게 말하였다.
   "老스님[원오극근]께서 갑자기 떠나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禪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가 '이 화두는 이렇게 깨닫고, 저 화두는 저렇게 깨닫고…' 하면 뜨거운 똥물이나 퍼부어라. 기억하라!"

庚辰 立冬 香山


宗 門 棒 喝

● 장州羅漢

咸通七載初參道 함통 칠 년에 참선 시작해
到處逢言不識言 도처에서 말 만나되 말뜻 몰라
心裏疑團若고로 마음 속의 의단은 고리짝 같아
三春不樂止林泉 봄조차 안 즐기며 산중에 머물었네.
忽遇法王氈上坐 홀연히 법왕의 법상에 앉으심 만나
便陳疑懇向師前 의문을 스승 앞에 아뢰었던 바
師從氈上那伽定 나가정에 계시던 스승께서는
袒膊當胸打一拳 어깨 걷어 부치고 내 가슴 때리시니
駭散疑團갈달落 그 서슬에 의단이 박살이 나서
擧頭看見日初圓 고개들어 해의 둥금 처음으로 보았네
從玆등등以碣碣 이로부터는 자재하고 초연해서
直至如今常快活 오늘에 이르도록 언제나 즐겁나니
只聞두裏飽膨형 오직 배가 부름을 듣는 것 뿐
更不東西去持鉢 다시는 바루 들고 구걸은 안하노라.

● 등은봉(鄧隱峰) 선사 / 馬祖錄

   스님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미는데 마조(馬祖)스님이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님, 다리 좀 오므리세요."
   "이미 폈으니 오므릴 수 없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수레바퀴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스님의 다리를 다치게 했다. 스님께서는 법당으로 돌아와 도끼를 집어들고 말하였다.
   "조금 전에 바퀴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오너라."
   등은봉스님이 앞으로 나와 목을 쓱 빼자 스님은 도끼를 치웠다.

● 백장록

   어느날 울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자 소리 높여 웃으며 절로 돌아가니, 백장스님이 말했다.
   "장하다. 이것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드는 문이로다. 아까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웃었는가?"
   "제가 아까 북소리가 나는 것을 듣자, 돌아와서 밥 먹을 생각에 좋아서 웃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만두었다.

●조주록

   조주스님이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말하였다.
   "금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부처는 안에 있다.
   보리, 열반, 진여, 불성 등은 모두 몸에 걸치는 옷으로서 그 역시 번뇌라고도 이름한다. 문제삼지만 않으면 번뇌랄 것도 없는데 진실된 도리가 어디에 성립하겠는가.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은 허물이 없으니, 다만 이치를 궁구하면서 이삼십년 앉아 있어라. 그래도 깨치지 못하거든 내 머리를 베어가라.
   꿈 같고 허깨비 같은 허공꽃을 무어라 애써 붙들려는가.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 또한 한결 같으니 이미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 다시 무엇에 매이겠는가. 마치 양처럼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입에 주워 넣어서 어쩌자는 건가.
   내가 약산(藥山)스님을 뵈었을 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물어오면 다만 '개 아가리를 닥쳐라' 하는 말로 가르치라고 하셨다.
   그러니 나 역시 말하리라. 개 아가리를 닥치라고!
   <나>라고 여기면 더럽고, <나>라고 여기지 않으면 깨끗하다. 그렇게 사냥개처럼 얻어먹으려고만 해서야 불법을 어디서 찾겠느냐. 천 사람이고 만 사람이고 모조리 부처를 찾는 놈들뿐이니, 도인(道人)은 한 명도 찾을 수가 없구나. 만약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거든 마음을 병들게 하지 말아야 하니, 가장 고치기가 어렵다.
   세계가 있기 전에도 이 성품(性品)은 있었고 세계가 무너질 때라도 이 '성품'은 무너지지 않으니, 나를 한 번 본 다음에도 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일 따름이니, 이것을 다시 바깥에서 찾은들 무얼 하겠는가. 이런 때에 고개를 돌리지 말라. 곧 잃어버린다.

● 이류중행(異類中行) / 禪門拈頌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여여(如如)라고 불러도 벌써 변했다. 그러니 요새 사람들은 모름지기 이류(異類) 속에서 행하여야 하느니라."
   조주스님이 남전스님에게 물었다.
   "다른 것[異]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같은 것[類]입니까."
   남전(南泉)스님이 두 손으로 땅을 짚자 스님께서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연수당(延壽堂)으로 돌아가 안에서 소리질렀다.
   "후회스럽다, 후회스러워!"
   남전스님이 듣고는 사람을 보내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물으니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거듭 더 밟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 / 위山錄

   위산(위山靈祐)스님이 하루는 향엄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백장화상의 처소에 살면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고 하던데 이는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이해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줄 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생사(生死)의 근본이다. 부모가 낳기 전 그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방으로 되돌아와 평소에 보았던 모든 책을 뒤져가며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끝내는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은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런 뒤로 스님은 여러번 위산스님에게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만일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하게 될 것이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 일일뿐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스님은 이윽고 평소에 보았던 책들을 태워버리면서 말하였다.
   "금생에서는 더 이상 불법을 배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저 멀리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밥중노릇이나 하면서 이 몸뚱이나 좀 편하게 지내리라."
   이리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위산스님을 하직하였다. 곧바로 남양(南陽) 지방을 지나다가 혜충(慧忠)국사의 탑을 참배하고는 마침내 그곳에서 쉬게 되었다. 하루는 잡초와 나무를 베다가 우연히 기왓장 한 조각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딱"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활연대오(豁然大悟) 하였다.
   스님은 급히 거처로 돌아와 목욕 분향하고 멀리 계시는 위산스님께 절을 올리고는 말하였다.
   "스님의 큰 자비여! 부모의 은혜보다 더 크도다. 만일 그 때 저에게 설명해 주셨더라면 어찌 오늘의 이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 게송을 읊었다.

한 번 치는데 모두 잊었네 一擊忘所知
다시 애써 더 닦을 것 없네 更不假修持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動用揚古路
초췌한 처지에 빠질 일 없어라 不墮초然機
곳곳이 자취가 없으니 處處無종跡
빛과 소리 밖의 위의로다 聲色外威儀
제방의 도를 아는 이들이 諸方達道者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리 咸言上上機

   위산스님이 그것을 듣고서 말하였다.
   "향엄이 깨쳤구나!"
   앙산(仰山慧寂)스님이 말하였다.
   "이는 알음알이로 지은 것입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볼 터이니 기다리십시오."
   그 후 앙산스님이 향엄스님에게 물었다.
   "스승님이 사제의 오도송을 칭찬하시던데 그대가 한번 해보게나."
   향엄스님이 일전의 게송을 읊었다.
   "이는 오랜 훈습으로 기억하였다가 지은 것이다. 만일 바른 깨침을 얻었다면 따로 한마디 해 보게."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去年貧未是貧
금년 가난이 참 가난이네 今年貧始是貧
작년 가난에는 송곳 꽂을 去年貧猶有卓錐之地
땅이라도 있더니
금년 가난에는 송곳도 없구나" 今年貧錐也無
  "여래선(如來禪)은 사제가 깨쳤다 하겠지만, 조사선(祖師禪)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이에 향엄스님이 다시 게송을 읊었다.

"나에게 한 기틀이 있으니 我有一機
눈을 깜짝여 그에게 보였다가 瞬目示伊
만약에 알아채지 못한다면 若人不會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 別喚沙彌
  이에 앙산스님이 돌아와 위산스님에게 알렸다.
  "기뻐하십시오. 지한 사제가 조사선을 깨쳤습니다."

● 깨친 인연 / 雪峰錄

   설봉(雪峰義存)스님이 동산(東山良介) 스님의 회하에서 공양주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쌀을 일고 있는데 동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모래를 일어서 쌀을 가려내느냐, 쌀을 일어서 모래를 가려내느냐?"
   "모래와 쌀을 한꺼번에 다 가려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은 마침내 쌀쟁반을 엎어버렸다.
   "인연을 보니 그대는 덕산(德山)스님이 맞겠다."
   
   설봉스님이 덕산스님을 찾아 뵙고 물었다.
   "예로부터 내려온 종문(宗門)에 저도 자격이 있습니까?"
   덕산스님이 몽둥이로 한 대 때리면서
   "뭐라고?" 하시자 설봉스님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이튿날 스님이 다시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덕산스님이 말하였다.
   "우리 종문(宗門)에는 말이란 것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줄 그 어떤 법도 없다."
   설봉스님은 이 말에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 후 스님은 암두(巖頭) 스님과 오산진(鼇山鎭)이라는 곳에 갔다가 눈으로 길이 막혀 그곳에 묵게 되었는데, 암두스님은 매일 잠만 잤고 스님은 오로지 좌선만 하였는데, 하루는 암두스님을 불러 깨웠다.
   "사형! 사형! 좀 일어나 보시오."
   "무슨 일이요?"
   "금생에는 다 틀린 모양이군! 전에 문수(欽山文邃)란 작자와 행각할 때는 가는 곳마다 그 놈 때문에 귀찮은 일만 생기더니, 이제 사형(師兄)은 노상 잠만 자니…"
   암두스님이 악! 하고 할을 하고는 말하였다.
   "먹고 자고 하니 매일 하는 일이 시골뜨기처럼 보이겠지만 뒷날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홀릴 것이오."
   그 말에 스님은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나는 이 속에 답답합니다."
   "나는 그대가 훗날 우뚝한 봉우리에 띠집을 짓고 부처를 꾸짖고 선사를 욕하리라 믿어 왔었는데 오히려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대의 견처(見處)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지. 옳은 점은 증명해 주고 옳지 못한 점은 잘라 주겠네."
   
   "처음 염관(鹽官齊安)스님을 찾아갔을 때, 색(色)과 공(空)의 이치를 거론하시는 것을 듣고 들어갈 곳을 찾았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다시는 그 말을 들먹거리지 말게나."
   "그 다음에 동산스님이 개울을 건너다가 깨치고 지으신 게송을 보고서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절대로 남에게서 찾지 말지니 切忌從他覓
나와는 점점 멀어지리라 초초與我疏
그는 지금 바로 나이지만 渠今正是我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我今不是渠

   "그렇게 한다면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네."
   "다음에 덕산스님께 '예로부터 내려온 종문(宗門)에 저도 자격이 있겠습니까?' 여쭈었더니, 덕산스님은 몽둥이로 한 차례 친 후 '뭐라고?' 하셨는데, 그 말에 마치 물통 밑바닥이 쑥 빠진 듯 하였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무섭게 악! 하고 할을 하고는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을 듣지 못했는가, '문(門)으로 들어오는 것은 우리 가문의 보배가 아니다' 하신 말씀을."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뒷날 그대가 큰 가르침을 널리 펴려 한다면 반드시 하나하나를 자기 가슴 속에서 흘러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나와 함께 하늘과 온누리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오."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치고 연이어 큰소리로 외쳤다.
   "사형! 오늘에야 비로소 이 오산(鰲山)에서 도를 이루었습니다."

● 운문문언(雲門文偃)선사 1

   목주(睦州道明)스님은 황벽스님의 법제자로 기봉(機鋒)이 번개치듯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평소 학인을 제접할 때,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멱살을 움켜잡고 "말해라, 말해!" 하고, 학인이 어물어물 하면서 대답을 못하면 즉시 내쫓으며 "쓸모 없는 것!" 하곤 하였다.
   스님이 목주스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세 번째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문언입니다."
   문이 열리자 마자 재빨리 뛰어들어가니 목주스님이 멱살을 움켜잡고 말했다.
   "말해라, 말해!"
   스님이 어물어물하다 내쫓김을 당했다. 그 때 스님의 한쪽 발이 문지방에 걸렸는데, 목주스님이 급히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발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에 스님이 고통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다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 운문문언 선사 2 / 雪峰錄

   스님이 목주스님을 찾아 뵙고 종지를 깨친 다음 진조시랑의 집에 가서 3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 목주스님을 뵈니 스님이 말하였다.
   "남방에 가면 설봉(雪峰)스님이란 분이 있는데 그대는 그 곳에 가서 종지(宗旨)를 받지 그러느냐."
   
   이에 스님은 설봉산을 찾아갔다. 스님이 설봉스님의 농막[雪峰莊園]까지 갔을 때 한 스님을 만나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산에 오르는 길이요?"
   "그렇소."
   "내 한마디 부탁할 것이 있는데 절에 가면 설봉스님께 물어주시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시킨 말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절에 가서 주지스님이 법당에 올라 대중을 모아 놓거든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 그의 팔을 잡고 '이 늙은이야, 목 위에 쓰고 있는 형틀을 왜 벗어 던지지 못하느냐!' 하시오."
   그 스님은 가르쳐준대로 하였다. 그러자 설봉스님은 갑자기 법좌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잡고 "빨리 말해라, 빨리!" 라고 소리쳤는데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설봉스님은 그 스님을 밀치면서 말하였다.
   "이 말은 네 말이 아니다."
   "제 말입니다."
   "시자야! 오랏줄과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스님, 사실은 제 말이 아니라 농막에 있는 절강 땅 스님 하나가 저에게 말한 것입니다."
   "대중들아! 농막에 가서 5백명을 거느릴 선지식을 맞이해 오너라."
   
   그 이튿날 운문스님이 산에 오르자 설봉스님은 보자마자 말하였다.
   "무슨 인연으로 그러한 경지를 얻었는가!"
   운문스님은 고개를 숙였고, 이 일로 기연이 맞았다.

● 동산록

   동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

● 술, 고기로 부모님 제사를 모시다 / 宗門武庫

   분양(汾陽善昭) 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간밤에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오셔서 술과 고기, 그리고 종이돈을 찾았다. 그러니 속가의 풍속대로 제사를 지내야겠다."
   그리하여 위패를 모시고 세속에서처럼 술과 고기를 올리고 종이돈을 불살랐다. 제사를 마친 후 제자들을 모이게 하고 제사음식을 나누어주니 스님들이 이를 마다하였고, 분양스님은 혼자서 태연하게 술과 음식을 먹었다. 대중들은 '술, 고기 먹는 중을 어떻게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며 걸망을 메고 떠나고, 자명(慈明楚圓), 대우(大愚守智), 곡천(芭蕉谷泉), 등 예닐곱 사람 만이 남아 있었다.
   스님은 이튿날 법당에 올라 설법하였다.
   "수많은 잡귀신떼를 한 상의 술 고기와 두 뭉치의 종이돈으로 모조리 쫓아 보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이 대중 속에는 가지와 잎은 없고 오로지 진짜 열매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 원오극근선사와 불감혜근선사 / 宗門武庫

   원오(圓悟克勤)스님은 일찍이 기주 오아사(烏牙寺)의 방(方)스님에게 공부하였고, 불감(佛鑑慧懃)스님은 동림사(東林寺)의 선비도(宣秘度)스님에게 공부하였다. 두 사람 모두가 조각(照覺)스님의 평실선(平實禪)을 터득한 후 함께 오조(五祖法演)스님의 문하에 왔는데 평소 얻은 바를 한 구절도 써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깨친 바가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오조가 일부로 그르쳐 놓았다'고 생각하고 불손한 말을 하고 화를 내면서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이 말했다.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 절강성(浙江省)을 돌아다니다가 한 차례 열병을 겪을 것이니, 그 때 비로소 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원오스님은 금산사(金山寺)에 도착하자 갑자기 열병에 걸렸는데 무척 심하여 중병려(重病閭)에 옳겨졌다. 그래서 평소에 터득한 禪으로 병을 이겨보려고 하였지만 한 구절도 힘이 되지 못하자 오조스님의 말씀을 되새겨보고 병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곧장 오조산으로 돌아가겠다고 스스로 맹서하였다.
   한편 불감스님도 정혜사(定慧寺)에 있다가 역시 열병을 앓아 위급하게 되었다. 원오스님은 가까스로 몸이 회복되자 정혜사를 경유하여 불감스님을 끌고서 회서까지 함께 돌아왔다. 그러나 불감스님은 그때까지도 고집을 버리지 않고 원오스님에게 먼저 돌아가라 하니, 어쩔 수 없이 원오스님만이 그 길로 오조산으로 돌아왔다.
   오조스님은 크게 기뻐하면서 "네가 다시 돌아왔느냐" 하고는 곧 선당(禪堂)에 들어가게 하고는 시자소임을 보게 하였다.
   
   그 후 반달이 지났을 무렵 우연히 진제형(陳提刑)이 벼슬을 그만두고 촉(蜀)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조스님을 찾아 뵙고 도를 물었는데, 이야기 끝에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제형은 어린 시절에 소염시(小艶詩)를 읽어본 적이 있소? 그 시 가운데 두 구절은 제법 우리 불법과 가까운 데가 있습니다."
소옥아, 소옥아 자주 부르지만 頻呼小玉元無事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낭군에게 제 목소리를 알리려는 짓! 祗要檀郞認得聲

   제형은 연신 예, 예 하였고 오조스님은 자세히 참구해 보라고 하였다.
   때마침 원오스님이 밖에서 돌아와 곁에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스님께서 '소염시'를 인용하여 말씀하시는데 제형이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까."
   "그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지."
   "'낭군이 내목소리를 알아주었으면' 하였는데 그가 그 소리를 들었다면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습니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 <뜰 앞에 잣나무니라>"
   원오스님은 이 말에 갑자기 느낀 바 있어 방문을 나서니 닭이 홰를 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크게 깨치고는 다시 '이것이야말로 그 소리가 아니겠느냐' 하고 드디어 방장실에 들어가 자기가 깨달은 바를 말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불조의 큰 일이란 하열한 근기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너의 기쁨을 도왔구나."
   그리고는 다시 산중의 노스님들에게 "나의 시자가 禪을 알았다."고 널리 알렸다.
   
   한편 불감스님은 절강에서 오조산으로 돌아온 뒤에도 머뭇거리며 선뜻 선당(禪堂)에 들어오려 하지 않자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나와 네가 헤어진 지 겨우 한달 남짓인데 지금 서로 만나 예전과 비교하니 어떠하냐?"
   "난 그저 네가 의심스럽다."
   불감스님은 마침내 선당에 들어와 오래지 않아 투철히 깨치게 되었다.

●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듯이 / 宗門武庫

   원오(圓悟克勤), 불안(佛眼淸遠), 불감(佛鑑慧懃) 세 분은 절친한 도반으로 오조(五祖法演)스님의 밑에 있을 때였다.
   어느날 셋이서 "노스님은 그저 무미건조하기만 해서 이따금씩 마음이니 성품이니 마저 설법하지 않으신다." 하고는 "불신(佛身)은 하는 일이 없고 어느 범위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으로 법문을 청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맑은 마니주(摩尼珠)가 오색(五色)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 오색은 범위이고 마니주는 불신이다."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대단히 설법을 잘하신다. 우리는 설법할 때 매우 힘이 들지만 스님은 한 두 마디로 끝내 버리니 분명 그는 한 마리의 늙은 호랑이다."
   오조스님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만일 마음이니 성품이니를 설법하면 구업을 짓는 것이라 하고 다시 말하였다.
   "고양이는 피를 핥는 공덕이 있고, 호랑이는 주검을 일으켜 세우는 공덕이 있다. 禪이란 이른바 밭갈이 하는 자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자의 밥을 훔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모두 진흙덩이를 가지고 노는 놈들이다."

● 똥물이나 퍼부어라 / 宗門武庫

   대혜스님이 어느날 조거제(趙巨濟)에게 말하였다.
   "老스님[원오]께서 갑자기 떠나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禪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가 '이 화두는 이렇게 깨닫고, 저 화두는 저렇게 깨닫고…' 하면 뜨거운 똥물이나 퍼부어라. 기억하라!"

● 인가를 받으러 왔다가 / 宗門武庫

   대혜스님이 원오스님이 계시던 운거사(雲居寺)의 수좌(首座)로 있을 무렵, 어느날 원통사(圓通寺)에서 온 객승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였다.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에 관한 수좌의 송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수좌의 '인가'를 받고자 특별히 찾아 왔습니다."
   "그런 게 아니니 가보게나."
   "제가 아직 깨달은 곳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게 아니라 하십니까?"
   스님은 거듭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가보게. 그런 게 아니네. 그런 게 아니야!"

● 대혜스님이 찾아다닌 선지식 / 宗門武庫

   스님이 처음 행각할 때 선주의 명적선사를 찾아가 설두(雪竇重顯)스님의 염고, 송고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였다.
   또 소정선사는 스님에게 화두를 들게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말하도록 하였을 뿐 그의 말은 조금치도 빌려주지 않았다. 스님이 옛 성인들의 미묘한 종지를 모두 깨치자 소정선사는 대중 앞에서 '스님(대혜)은 부처님이 다시 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은 그 후 영주 대양사(大陽寺)에 가서 원(元) 수좌, 도미(洞山道微)스님, 견(堅)수좌 등을 참방하였는데, 도미스님은 부용(芙容道楷) 스님의 회중에 수좌로 있었으며 견 수좌는 그 곳 시자로 10여년을 지낸 스님이었다. 스님은 세 분 아래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조동(曹洞)의 종지를 모두 깨쳤다.
   그곳에서는 법을 주고받을 때, 모두가 팔뚝에 향을 피워 함부로 법통을 전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였는데, 스님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禪을 전수할 법이 있다면 불조(佛祖)가 스스로 깨치셨다는 법은 무엇인가' 하였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담당(湛堂文準) 스님에게 귀의하였다.
   
   어느날 담당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너의 코는 어째서 오늘 반쪽이 없느냐?"
   "보봉(寶峰) 문하에 있습니다."
   "엉터리 참선꾼이군!"
   
   한번은 경을 보고 있는데 물었다.
   "무슨 경을 보느냐?"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운거산은 높고 보봉산은 낮은가?"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는 좌주(座主:講師)의 심부름꾼이 되겠구나."
   
   어느날 담당스님이 말하였다.
   "고(고:大慧宗고)상좌야. 나의 禪을 너는 한번에 이해하였다. 그래서 너에게 설법을 하라면 설법을 할 수 있고, <염고> <송고>와 소참, 보설 법문을 하라면 그것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너는 알겠느냐?"
   "무슨 일입니까?"
   "네가 한 가지 알지 못한 게 있지. 네가 이 한 가지를 알지 못하니, 내가 방장실에서 너와 이야기할 때는 禪이 있다가도 나서자마자 없어져 버리고, 정신이 맑아서 사량할 때는 禪이 있다가도 잠이 들자마자 없어져 버린다. 만일 이렇다면 어떻게 생사(生死)와 대적할 수 있겠느냐?"
   "바로 그것이 제가 의심하는 바입니다."
   
   그 후 담당스님의 병세가 위독하자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만일 이 병환에서 일어나지 못하신다면 저를 누구에게 부탁하여 그 큰일을 끝마치게 하시렵니까?"
   "원오(圓悟克勤)라는 스님이 있는데 나도 그를 알지 못한다. 네가 만일 그를 만나면 반드시 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지만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하면 수행을 계속하다가 후세에 다시 태어나 참선을 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몇 년이 흐른 후 원오스님을 찾아갔다.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한 중이 운문스님에게 묻되, 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 하니 운문이 답하기를, 동산이 물위로 간다[東山水上行] 하였으니 한마디 일러라."
   이 말씀에 계합치 못하여 1년을 참구하면서 49회나 대답하였으나, 모두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하루는 거사의 집에서 원오스님이 설법하는데 "한 중이 운문스님에게 묻되, 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 하니 운문이 답하기를, <동산이 물위로 간다> 하였으나 천녕(天寧:원오)은 그렇지 아니하니,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집안이 시원해진다[薰風自南來 殿閣生微량]라 할 것이다' 함을 듣고 대혜스님이 활짝 깨쳤다.
   깨친 바를 원오스님에게 말하니 가지가지로 시험하여 보고는 말하였다.
   "네가 비록 얻은 바가 없지는 않으나 아직 대법(大法)을 밝히지는 못했다."
   
   하루는 원오스님이 대혜스님에게 말하였다.
   "너의 그 경지에 이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너는 다만 죽기만 하고 능히 살아나지 못했으니, 언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통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저는 지금의 얻은 것으로 이미 쾌활하니 다시 더 알아 얻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원오스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로 매일 서너 번씩 입실하는데 원오스님은 매양 <있느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쿨과 같다 有句無句如藤倚樹>는 화두를 가지고 힐난하면서, 입실하여 입만 열기만 하면 <틀렸어, 틀렸어!> 하였다.
   이러기를 반년이 넘도록 '인가'를 받지 못하고 생각생각에 잊지않고 지내는데, 하루는 대중들과 공양을 하다가 손에 수저를 들은 것도 잊고 멍멍히 앉아있는 것을 보고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저놈이 황양목선을 하여 쭈그러지는구나."
   "화상이시여, 이 도리는 마치 개가 뜨거운 기름가마를 본 것과 같아서 핥을래야 핥을 수도 없고, 버리고 갈래야 버리고 갈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비유가 극히 옳다. 너는 금강석으로 된 밤송이 같은 놈이로구나."
   
   하루는 스님이 원오스님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오조법연스님 회상에 계실 때 이 공안을 참구했다 하셨는데, 그 때 오조스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그 때 묻기를 <있느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쿨 같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오조스님 말씀이 <말로 형용할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느니라> 하시기에, 또 묻기를 <문득 나무도 쓰러지고 등넝쿨도 말라죽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서로 따라 오느니라 相隨來也>하셨느니라.
   이 말에 대혜스님이 크게 깨치고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네가 아직 저 공안을 뚫지 못하였을까 걱정이다. 이어 원오스님이 온갖 난해한 공안을 들어 대어도 조금도 걸림이 없으니 이에 원오스님이 손뼉을 치고 기뻐하였다.
   이후로는 병의 물을 거꾸로 세운 것 같고 둥근 바위를 천길 언덕에서 내리 굴리는 것과 같아서 아무도 그 '기봉'을 당하는 사람이 없으니 혹 누가 와서 원오스님에게 물으면 "나의 저 선자(禪者)가 마치 큰 바닷물과 같으니 너희들은 저 큰 바닷물에 가서 물어 가라." 하였다.
   이때부터 원오스님과 분좌설법(分座說法)하고 납자를 제접하니 그 이름이 천하 총림에 떨쳤다.

● 스스로 깨닫고 남을 지도하려면 / 宗門武庫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요즘 불과(佛果)스님 회중에서 공부하는 납자는 불안(佛眼)스님을 뵈려 하지 않고 불안스님 회중에서 공부하는 납자는 불과스님을 뵈려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많은 봉사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니 어떻게 두 노스님의 뜻을 알겠는가?
   그들은 '불안스님이 곧 규범을 갖춘 불과스님'이며, '불과스님이 바로 규범을 갖추지 않은 불안스님'이라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다. 사람을 지도할 때 눈을 멀게 하지 않으려면 불과스님을 찾아보아야 한다. 만일 불안스님만 본다면 열반당(涅槃堂)의 禪이니, 스스로는 구제할 수 있어도 남을 지도하지는 못한다.
   황룡혜남 노스님의 회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납자들에게 眞點胸(可眞)스님을 뵙도록 하는 것은 가진스님의 수단이 매섭고 신랄하여 학인을 지도하는 데 남다른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스님이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에는 날마다 향상해 나가는 禪이란 없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한 번 퉁긴 뒤,
   "만일 이 뜻을 안다면 당장에 법문을 끝내겠다"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어떤 종사들은 학인(學人)을 지도하면서 서너차례 입실(入室)한 뒤에도 그의 경지를 분명히 가려내지 못하고 스스로 깨친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다시 그에게 '견처(見處)가 어떻느냐'고 물으면 학인은 '자신의 견처를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도리어 '네가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하니, 이런 식으로 해서는 어떻게 학인을 지도하겠느냐?"

● 지견(知見)과 정해(情解)가 많은 납자들 / 宗門武庫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요즘 납자들은 지견과 정해가 많다. 쓸모없는 말, 긴 이야기를 기억해서 그 속에서 답을 구하는 것은 마치 손에 값을 따질 수 없는 마니주(摩尼珠)를 쥐고 있다가, 어느 누가 '손 안에 있는 게 무엇이냐'고 하면 갑자기 그 구슬을 버리고 흙덩이를 집어 올리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건 멍청이다. 그렇게 참구한다면 당나귀해가 되도록 참선을 해도 깨치지 못할 것이다."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내게는 사람들에게 줄 법이 없고 다만 사건에 따라서 판결을 내려줄 뿐이다. 비유컨대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하는 유리병을 가지고 오면 내가 한 번 보고는 너를 위하여 곧 유리병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 네가 또다시 마니주를 가져오면 나는 또 빼앗을 것이며, 네가 그대로 오는 것을 보면 나는 너의 두 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 이 때문에 임제(臨濟)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라고 말한 것이다.
   말해 보아라. 선지식(善知識)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를 살펴보아라. 그것이 무슨 도리인가를.
   그런데 요즘 납자들은 공부를 할 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것을 밝혀 나가고자 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며, 이렇게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두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 선지식에게로 인도하다 / 宗門武庫

   도솔종열(從悅) 스님이 도오산(道吾山)에 수좌(首座)로 있을 때 운개수지(雲蓋守智) 노스님은 운개산(雲蓋山)에 계셨다. 종열스님이 하루는 수십명의 납자를 거느리고 수지스님을 찾아갔는데 수지스님은 종열스님과 몇마디 주고받지 않고서도 종열스님의 경지를 알았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수좌를 보아하니 기질은 훌륭한데 어찌하여 말은 마치 술취한 사람같이 하느냐?"
   종열스님은 얼굴을 붉히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를 아끼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다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마 후 또 따끔하게 일침(一針)을 가하자 종열스님은 망연자실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입실하려 하였으나 수지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대중의 수좌(首座)로서 설법하는 사람이다. 나는 보고들은 게 넓지 못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종열스님이 재삼 간청하였으나 수지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복이 없어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였으니, 설령 내가 수좌의 절을 받는다 해도 뒷날 반드시 나 때문에 시비를 듣게 될 것이다."
   수지스님은 끝내 입실을 허락하지 않고 다시 종열스님에게 물었다.
   "수좌는 법창(法昌倚遇) 스님을 뵌 적이 있는가?"
   "그의 어록을 보고서 내 스스로 깨닫기는 하였으나 만나보고 싶지 않습니다."
   "진정(眞淨克文) 스님을 뵌 적이 있는가?"
   "그 관서자(關西子) 말입니까? 머리가 없는 놈입니다. 그의 승복자락을 잡아당기면 지린내가 진동하는데 그에게 무슨 훌륭한 점이 있겠습니까?"
   "수좌는 그 지린내 나는 곳을 참구하라!"
   
   종열스님은 그의 가르침을 따라 진정스님을 찾아 귀의하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심오한 종지를 깊이 깨치고 다시 수지스님을 찾아가자 수지스님이 말하였다.
   "수좌는 관서자를 만난 후에 대사(大事)는 어떻게 되었는고?"
   "만일 스님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뻔 하였습니다."
   
   그 후 종열스님은 세상에 나와 진정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지만 평소에 그의 문도들에게 자신이 운개스님의 가르침으로 진정스님을 찾아가게 된 이야기를 해 주고, 너희들은 마땅히 스승의 예로서 수지노스님을 섬겨야 한다고 훈계하곤 하였다.
   그 후 수지스님이 입적했을 때는 혜조(慧照)스님이 도솔사의 주지로 있었는데 그는 종열스님의 상수제자였다. 수지스님의 장례는 모두 혜조스님이 주관하였는데 그를 스승으로 예우한 것은 종열스님의 부탁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 황룡혜남(黃龍慧南)선사 / 林間錄

   운봉(雲峰文悅)스님이 두 번째로 늑담사(륵潭寺)를 찾아갔을 때, 혜남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헤어진 후의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매우 기뻐하며 오래 머물면서 혜남스님에게 석상사(石霜寺) 자명(慈明楚圓)스님을 다시 한 번 만나보도록 권하였다. 이에 혜남스님은 석상사에 가서 산아래 객사에 묵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자명스님이 평범하고 소탈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을 후회하여 그의 문 앞에까지 가보지도 않고 곧바로 남악 복엄사(福嚴寺)에 이르러, 한 달도 못되어 서기(書記)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곳의 장로 지현(智賢)스님이 돌아가시자 고을에서 자명스님을 그 곳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이에 야참 법문에서 여러 총림의 잘못된 견해를 비난하는 설법을 처음으로 들었는데 모두가 평소에 어렵게 얻은 요체들이었다. 그리하여 감탄해 마지않고 정성을 다하여 도(道)를 물으려고 세 차례 찾아갔으나 그 때마다 꾸지람을 듣고 물러났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여 맡은 일을 모두 되돌려주고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지만 자명스님의 꾸지람은 여전하였다.
   황룡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다만 깨닫지 못하였기에 찾아와 물은 것입니다. 선지식께서는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주셔야 하는데도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오로지 꾸지람만 하시니, 어찌 그것을 예로부터 법을 전수해 온 격식이라 하겠습니까?"
   그러자 자명스님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남(南) 서기야? 내가 너를 꾸짖는다고 생각하느냐!"
   황룡스님은 그 말에 마치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훤히 깨치게 되어 절을 올리고 일어서니 몸에서는 식은 땀이 흠뻑 흘러내렸다.

● 불법을 배우는 자세 / 林間錄

   운봉(雲峰文悅) 스님이 처음 대우(大愚守芝)스님을 찾아 뵙자 수지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려고 여기 왔는가?"
   "불법을 배워볼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불법을 쉽사리 배울 수 있겠는가? 기운이 있을 때 대중을 위하여 한 차례 구걸 행각을 한 뒤에 불법을 배운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스님은 천성이 순박하여 그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 길로 구걸을 떠났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수지스님은 취암(翠巖)으로 옮겨 간 뒤였다. 스님이 다시 취암으로 수지스님을 찾아가 입실(入室)하기를 청하자 수지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은 우선 그만 두고 차가운 밤날씨에 대중들에게 숯이 필요하니, 한 차례 더 숯을 구걸해 온 뒤에 불법을 배운다 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스님은 이번에도 스님의 말씀대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숯을 구걸하여 연말이 되어서야 숯을 싣고 돌아와 가르침을 구하니 수지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이 썩어 없어질까 걱정이냐? 마침 유나(維那) 자리가 비었으니 사양치 말고 맡아보아라!"
   이에 도리어 종을 울려 대중을 모아 놓고 이 사실을 알리어 스님에게 유나의 직책을 맡아주기를 청하였다. 어쩔 수 없이 유나직을 맡게 된 스님은, '수지스님의 의중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깨진 물통을 묶으려고 대껍질을 잡아당기다가 옆에 놓인 쟁반에 물통이 부딪쳐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크게 깨쳤다. 그제서야 수지스님의 마음 씀씀이를 알게 되어 그 길로 수지스님에게 달려가니 수지스님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유나여! 기뻐하라, 큰 일을 마쳤구나."

● 진정극문(眞淨克文)선사 /

   스님의 법명은 극문이며 황룡(黃龍慧南) 스님의 법제자이다. 스님이 위산에 살 때, 어느날 밤 운문스님의 어록을 읽다가 느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기세가 등등해졌고 여러 총림에서는 스님을 포참이라 하여 그 '기봉'과 맞닥뜨리는 사람이 적었다.
   이 때 황룡스님의 명성이 자자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그곳을 찾아갔지만 황룡스님은 입실과 법문을 모두 허락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성을 내며 "내게도 깨달은 경계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하며 마침내 그 곳을 떠나 취암사의 순스님을 친견하자 순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적취사(積翠寺)에서 왔습니다."
   "고향은 어딘가?"
   "관서(關西) 땅입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군가?"
   "북탑사광 스님입니다."
   순스님은 북탑이라는 말을 듣고 울음을 터트렸다. 스님이 그 까닭을 물으니 순화상은 이렇게 말하였다.
   "예전에 거눌(居訥) 사숙이 오랫동안 그 분에게서 참구(參究)하였으나 그의 말씀을 깨칠 수 없었는데, 내가 참선을 하게되어 찾아갔었지만 그 분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새로 부임한 황벽산 주지[황룡혜남]를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어떻든가?"
   "매우 훌륭합니다."
   "그는 한마디 긴요한 말을 할 수 있어 황벽산의 주지가 되었지만은 불법이라곤 꿈에서도 본 일이 없다."
   스님은 이 말 끝에 황룡스님의 마음 쓰는 경계를 단박에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날을 후회하고 다시 찾아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 마음을 순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순스님이 말하였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 황룡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그대가 적취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
   
   스님이 마침내 적취산으로 돌아오자 황룡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취암사에서 왔습니다."
   "하필이면 내가 떠나려 할 때 찾아왔구나."
   "어디로 가시렵니까?"
   "천태산(天台山)에서 운력하고 남악(南岳)에 유람하려 한다."
   "저도 그처럼 자유자재(自由自在)할 수 있습니다."
   "네 발에 신은 신은 어디에서 얻었는가?"
   "여산(廬山)에서 7백 50푼을 부르기에 샀습니다."
   "언제 그대가 자재(自在)를 얻었느냐?"
   "제가 언제 자재를 얻지 못했습니까?"
   황룡스님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허명을 굴복 받는 일 / 林間錄

   황룡혜남스님은 오랫동안 늑담회징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회징스님은 그가 이미 깨쳤다 하여 분좌(分座) 설법케 하니, 남서기(南書記)의 명성은 일시에 자자하였다. 그러나 자명(慈明楚圓)스님의 회하에 이르러 야참법문을 듣고 기세가 꺾여버렸다.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세 차례나 침실 밖까지 찾아갔지만 세 차례 모두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러자 '장부가 의심이 있는데도 끊어버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개탄하고는 곧바로 자명스님을 찾아뵈었다.
   "저에게 의문이 있기에 성의를 다하여 결단을 구하오니, 스님께서는 큰 자비를 내리시어 법보시를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그대는 이미 대중을 거느리고 행각하여 선림(禪林)에 명성이 자자하니, 깨닫지 못한 곳이 있다면 서로가 이야기하면 될 것인데 굳이 입실(入室)할 것까지야 있겠는가?"
   스님이 재삼 간청하자 자명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운문삼돈봉(雲門三頓棒)의 인연에서 당시 동산(洞山守初)스님은 실제로 몽둥이맛을 보아야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실제로 몽둥이맛을 보아야 할 분수가 있었습니다."
   "서기의 견처(見處)가 그 정도라면 이 노승은 그대의 스승이 될 수도 있지!"
   이에 자명스님은 절을 올리도록 하였으니 혜남스님이 평소 자부했던 바가 여기에서 꺾인 것이다.

● 자명스님의 문도들 / 林間錄

   자복 선(資福 善)스님은 자명스님의 으뜸제자이다. 당시 뛰어난 스님으로는 도오(道吾吾眞)스님과 양기(楊岐方會) 스님을 꼽았으나, 그들도 모두 선스님을 추앙하였다.
   일찍이 금란사에 이르니, 가진(可眞點胸) 스님은 자명스님을 친견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천하에는 특별히 마음에 새겨둘 만한 인물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선스님은 그와 이야기를 한 후 그가 아직 깨치지 못했음을 알고서 비웃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산길을 걷다가 가진스님이 불법을 거론하면서 '기봉'을 발휘하자 선스님은 조약돌 하나를 주워 바위 위에 놓고서 말하였다.
   "그대가 여기에다 일전어(一轉語)를 놓는다면 그대가 자명스님을 친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다."
   가진스님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리자 선스님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머뭇거리며 생각하느라 '기봉'이 멈췄으니, 알음알이를 벗어나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꿈엔들 노스님을 친견하였겠는가. 가거라!"
   이에 가진스님은 매우 부끄러워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상화산(霜華山)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명스님은 가진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진짜 행각인(行脚人)이란 반드시 시절을 알아야 하는데 무슨 바쁜 일이 있기에 여름해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에 왔는가?"
   "선 사형(善 師兄)이 독한 마음으로 사람을 질식시키기에 다시 스님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무엇이 불법대의(佛法大意)인가?"
   "잿마루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달은 떠서 강물 속에 부서진다(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자명스님은 눈알을 부라리고 소리치며 꾸짖었다.
   "머리털이 하얗고 이빨이 엉성히 빠져서까지도 오히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생사를 떠날 수 있나!"
   가진스님은 감히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양 볼의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릴 뿐이었다. 한참 후 다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잿마루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달은 떠서 강물 속에 부서진다(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가진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 술상을 받고 지은 제문 / 林間錄

   취리(醉里)에 계(戒)도인이라 하는 미치광이 중 한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 머물면서 하루도 취하지 않는 날이 없었으나 그가 내놓은 문장은 남다르게 기이하여 세인들은 성승(聖僧)인지 범승(凡僧)인지 가늠하지 못하였다.
   누군가 그에게 술을 내주며 제문을 짓도록 하니, 계도인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장을 지었다.

영가님이여! 사바세계에 나시어  惟靈 生在閻浮
성내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不瞋不妬
술 마시기 좋아하여  愛喫酒子
길거리에 드러누우시라  倒街臥路
도솔천에 태어난다면  直待生도率陀天
그때는 바야흐로 술 마시지 못하리라  爾時方不喫酒故
왜냐고?  何以故
정토세계에서야  淨土之中
술 살 곳이 있어야지!  無酒得沽

● 대혜스님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다 / 叢林盛事

   나암정수(懶菴鼎需) 스님은 불심(佛心本才) 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본재스님이 대승사(大乘寺)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수좌로 선방에 패를 걸고 학인들에게 '마음이 부처다'하는 화두를 묻곤 하였다. 당시 대혜스님은 양서암(洋嶼菴)에 있었는데 정수스님의 도반 미광(晦庵彌光) 스님이 편지를 보냈다.
   "이곳 양서암 주지의 솜씨는 다른 총림과는 다르니 한 번 찾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정수스님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이에 광장원(光壯元)은 꾀를 내어 함께 식사나 하자고 그를 불렀다. 정수스님이 그곳을 찾아가 산문에 들어서니 때마침 대혜스님의 개실(開室) 법회가 열리려던 참이었다. 정수스님도 대중을 따라 들어가니 대혜스님이 물었다.
   "한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무엇이 부처냐'고 묻자, '마음이 부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수스님이 이에 대하여 말하자 대혜스님이 그를 꾸짖었다.
   "그런 견해로 감히 남의 스승노릇을 하느냐?"
   이에 북을 올려 대중을 모아 놓고 그가 평소 얻은 바를 말하게 하여 잘못된 견해를 물리쳐주자 정수스님은 두 뺨이 눈물로 뒤범벅되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제까지 깨달은 바는 이미 깨어졌지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어찌 여기에 그치겠느냐?'
   그는 마음을 돌이켜 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대혜스님이 물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바로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정수스님이 무어라고 대답하려는데 대혜스님이 죽비를 들고 등짝을 후려치는 바람에 크게 깨치고 말을 이었다.
   "스님 그만 하십시오. 이미 많이 때렸습니다."
   대혜스님이 또 한 차례 때리자 정수스님은 넓죽이 절을 올렸다. 대혜스님은 웃으면서 "오늘에야 내가 너를 속이지 않았음을 알겠지!" 하면서 마침내 게를 지어 '인가'하였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니 身心一如
몸밖에 나머지 일이 없어라 身外無餘
아서라! 이 눈먼 당나귀가 돌這할驢
정수에게 전해 주노라 付與鼎需
   이로부터 그의 이름이 총림에 진동하였다.

● 모르는 공안(公案)이 없었어도 / 叢林盛事

   무암(無菴法全) 스님은 ≪금강경오가해≫로 유명한 야보(冶父道川)스님의 제자이다. 오랫동안 육왕사 불지(佛智瑞裕)스님에게 귀의하였다.
   고금의 공안(公案)을 거론할 때는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방장실에서의 기연은 깨치지 못하여 밤낮으로 슬피 울며 잠을 자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어울려 세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없었다. 이와 같이 몇 해를 지내던 어느날, 불지스님이 방장실에서 그의 멱살을 붙잡고 말하였다.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나무에 얽힌 등넝쿨과 같다> 하는데 말해보아라, 빨리!"
   법전스님이 무어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불지스님이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이에 밝게 깨치고 연거푸 큰소리로 윽! 윽! 하고 소리쳤다. 불지스님이 그제서야 멱살을 놓아주니, 게송을 지어 올렸다.

북소리 피리소리 울리는데 鼓笛轟轟袒半肩
한쪽 어깨 가사 벗고
용루에서 향기 뿜는 익주의 배 龍樓香噴益州船
때로는 발을 담가 밝은 달을 희롱하고 有時著脚弄明月
5호의 물결 아래 하늘을 밟아 나가네 蹈破五湖波底天

   후일 그는 세상에 나아가 큰 사찰의 주지를 두루 지내다가 호구산(虎丘山)에서 입적하였다.

● 통쾌한 납승이 없는 세상 / 山菴雜錄

   육왕사 설창(雪窓)스님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머물기를 청하자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천태산에서 왔습니다."
   "발우는 가지고 왔느냐?"
   "가지고 왔습니다."
   "내게 좀 보여주지 않겠느냐?"
   "객사에 있습니다."
   "나는 그 발우를 물은 게 아니다. 내가 묻는 것은 밑없는 발우이다."
   그 스님이 몸둘 바를 모르자 스님은 한탄하였다.
   "통쾌한 납승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가거라!"

● 송원숭악(松源崇岳)선사의 깨침 / 枯崖漫錄

   스님이 처음 민주 건원사(乾元寺)의 목암(木庵)스님을 찾아 뵙고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하직인사를 드리니 목암스님이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넝쿨이 나무에 기대있는 것과 같다>는 화두를 거론하였다. 그러자 송원스님이 대답하였다.
   "싹둑 잘라버릴 것입니다."
   "낭야(瑯야)스님은 이에 대해 '한 무더기 좋은 땔감이로다' 하였다."
   "화살 위에 화살을 얹는 격입니다."
   "그대의 말을 내 따를 수야 없지만 그렇게 공부가 안되어 가지고는 뒷날 불자(拂子)를 잡고 설법한다 해도 사람을 가르칠 수 없고, 사람을 간파(看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온갖 번뇌에 매인 범부를 단숨에 성인(聖人)의 경지로 뛰어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진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을 간파한다는 것은 얼굴만 스치면 말 한마디 안 해도 그의 골수(骨髓)까지 알 수 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에 목암스님은 손을 들어 저지하며 말하였다.
   "그만! 그만! 그대에게 명백히 말해주리라. '입을 벌려 말한다는 것은 혓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뒷날 그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 이듬해 송원스님은 구주 서산사(西山寺)에서 밀암(密巖咸傑)스님을 찾아 뵙고 묻는 족족 대답하였는데, 밀암스님이 웃으면서 '황양목선이로다' 하였다.
   스님은 뒷날 경산(徑山)에서, 밀암스님이 곁에 있는 스님에게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하는 말을 듣고 문득 크게 깨치고서 말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지난날 목암스님이 '입을 벌려 말하는 것은 혓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신 말씀의 뜻을 알았노라."

● 밀암(密巖咸傑)스님의 개당법회에서 / 枯崖漫錄

   철편윤소(鐵鞭允韶) 스님이 밀암스님의 개당법회에서 곧장 앞으로 달려나가 말하였다.
   "이곳은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니 마음을 비워 급제하고 돌아간다. 오늘 서로 만난 이곳에, 자 무엇이 서로 만난 일인가?"
   밀암스님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다시 말하였다.
   "하루 종일 너를 노려보는 놈이 네 머리통을 베어가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또다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드디어 좌구(座具)를 집어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저 원수 놈을 만나 죽이지 않고 언제까지 이처럼 기다릴텐가?"
   그래도 아무런 기색이 없자 물러서면서 "예, 예, 예" 세 차례 말하고서 다시 말하였다.
   "도적놈 우두머리, 원달리마(袁達李磨)를 잡아왔습니다. 명령을 내리십시오."
   그때서야 밀암스님은 주먹을 세워 보이면서 "명을 받아 곤두박질이나 치거라." 하고는 나가버렸다. 밀암스님은 법회를 마치고 방장실로 들어가면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아까 왔던 그놈, 이빨은 칼숲 같고, 입은 피바가지 같았으며, 손에 잡은 한가닥 실오라기는 쇠채찍 같았는데 이 늙은 중이 한 차례 얻어맞았노라. 너희는 각별히 조심하여라."
   이로부터 철편(鐵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6년 동안 소임을 바꾸지 않고 스님을 시봉하였다.

● 일심발원, 용맹정진 / 枯崖漫錄

   몽암총(蒙庵聰)스님은 복주(福州) 사람으로 19세에 신주 귀봉사(龜峰寺)의 미광(晦庵彌光)스님에게 귀의하였고 27세에 도첩을 얻자 미광스님에게, 대중에 섞여 오로지 자신의 생사대사를 깨닫는데 전념하고 여러 가지 소임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바라니 미광스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는 참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불법이란 일상생활 모든 작용 가운데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일 때문에 빼앗길까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안에 깨닫지 못한다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이에 물러 나와 <불법이란 평상시 모든 작용 가운데 있다>는 구절을 창문 위에 써 붙여 놓고 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은 채 보름을 지냈다. 미광스님이 수시로 그의 행동을 엿보니, 그의 결심은 매우 맹렬하였다.
   이에 미광스님은 그가 만일 깨치지 못하면 미쳐 버릴까봐 속으로 걱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콧물을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나기에 미광스님은 마음 속으로 '아! 이 아이를 버렸구나' 하고 그 연유를 물어보니 속가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미광스님은 '이 때가 일추를 가하기에 좋은 기회다.' 하고 몽암스님을 불러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 말해 보아라."
   "아버님이 돌아가셨습……."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멱살을 움켜잡고 세차게 뺨을 때리면서 말하였다.
   "수많은 무명번뇌가 어느 곳에서 오느냐?"
   그리고는 또 한 차례 따귀를 후려치니 그 자리에서 의심이 얼음 녹듯 풀리게 되었다. 이에 몽암스님은 예의를 갖추어 사례하고 소리 높여 게송을 읊었다.

알았다, 알았다. 철저히 알았구나 了了了徹底了
괜스레 맨발 벗고 동분서주했었구나 無端赤脚東西走
창공의 둥근 달을 밟으니 踏破晴空月日輪
팔만사천문이 밝기도 하다 八萬四千門洞曉

   그러나 미광스님은 또 다시 소리쳤다.
   "이 둔한 놈아, 몽둥이 30대는 맞아야겠다."
   "저도 스님에게 30대를 치겠습니다."
   "보아하니 애꾸눈이 감히 법통을 어지럽히는구나."
   이 뒤로 그의 '기봉'이 준엄하고 민첩하여 감히 당할 사람이 없었다.

● 법(法)의 알을 품어준 은혜 / 羅湖野錄

   서촉 표자(表自)스님이 오조법연스님을 찾아뵈니 당시 원오스님이 오조스님과 함께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오조스님은 원오스님에게 표자스님을 직접 가르치라 하니 원오스님이 표자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오랫동안 스승의 법석에 나와 함께 있었으니 물이 깊은지 얕은지를 더 이상 염탐할 필요가 있겠는가? 미진한 점이 있다면 그것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좋겠다."
   표자스님이 마침내 덕산스님의 <소참화두>를 들어 말하자, 원오스님은 큰소리로 껄껄대며 웃었다.
   "내 그대의 스승이 되기에는 퍽이나 부족할 줄 알았는데,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되고도 남겠다."
   원오스님은 다시 그 화두를 거론케 하며 '오늘밤에는 답하지 않겠다' 하는 대목에서 손으로 표자스님의 입을 급히 막으며,
   "그만! 그렇게 참구하여 뚫어버리면 곧 덕산스님을 뵙게 될 것이다."
   하였다. 표자스님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나가 방석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날더러 오직 한 구절만 참구하라니!"
   이에 여러 도반들이 표자스님을 격려하며 원오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였는데 얼마 후 느낀 바가 있었다.
   
   원오스님이 총원(總院)의 감독으로 옮겨가게 되자 표자스님을 좌원(座元)으로 천거하면서 남모르게 오조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는 한 토막을 얻었을 뿐, 큰 법은 밝히지 못했으나 더 단련시키면 반드시 큰그릇이 될 것입니다."
   얼마 후 표자스님은 오조스님의 명에 따라 입승을 맡았다. 사실 그것은 그의 먼 장래를 격려하기 위함이었는데 표자스님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오조스님이 법당에 올라 표자스님을 보면서,
   "망상 피우지 말라!"
   하고는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표자스님은 몹시 불쾌한 마음으로 그 곳을 떠나 낭야산 계(啓)선사의 절을 찾아갔다.
   오랜 뒤에 원오스님이 표자스님을 찾아가 달래니, 한 마디에 크게 깨치고는 함께 오조스님에게 돌아오자 바로 입승으로 임명하였다.
   
   그 후 원오스님은 촉(蜀)으로 돌아가 소각사(昭覺寺)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왔고, 오조스님이 입적하자 태수는 표자스님에게 오조스님의 법좌를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향을 사르고 개당설법을 하였는데,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만일 지금 성도(成都) 소각사(昭覺寺)에 계시는 원오극근선사가 아니었다면 그 때 내가 어떻게 도(道)의 진수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어째서인가? 그분이 없었더라면 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고기가 물 때문에 살고 자식이 어머니 때문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로 본다면 원오스님은 표자스님에게 있어서 알을 품어준 은혜가 있었다. 표자스님은 속에 있는 분함을 씻고자 모든 대중 앞에서 자기의 불만을 토로했으니, 이는 황벽스님이 백장스님에게 응수한 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 표자스님에게 법제자가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하겠다.

● 좋은 스승 / 羅湖野錄

   요주 천복사(薦福寺)의 오본(悟本)스님은 강서 운문사(雲門寺)에서부터 대혜스님을 시봉하여 천남 소계사(小谿寺)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당시 빼어난 스님들이 모두 모였으며 '인가'를 받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오본스님은 대혜스님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자 대혜스님이 그 사실을 알고 말하였다.
   "그대는 참선에만 전념하라. 만일 터득한 바가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알 것이다."
   
   얼마 후 오본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대혜스님은 일부러
   "본시자는 그렇게 오랫동안 참선을 하고서도 하는 말마다 모르는 소리뿐이다."
   하니, 오본스님이 대혜스님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야, 이 쩨쩨한 도깨비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곽산(곽山)의 산신각에서 세 차례나 이(齒)갈이를 했다. 오냐, 내가 가르쳐 주마."
   이를 계기로 더욱 분발하여 조주스님의 <無字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였다. 어느날 삼경 무렵에 법당 기둥에 몸을 기대고 깜박 잠들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無>자가 튀어나오면서 홀연히 깨달았다.
   사흘 후 대혜스님이 마을에서 돌아오자 오본스님이 방장실로 달려갔는데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털보스님이 이번에야 비로소 철저히 깨달았구나!"

● 노둔한 말은 다시 채찍질해도 모르는 법/ 羅湖野錄

   불안(佛眼淸遠)스님이 21세 때 서주 태평사(太平寺)에 계시는 오조법연스님을 찾아뵈었다. 그러나 오조스님이 머지않아 해회사(海會寺)로 옮겨가려 하니 불안스님은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내 일이 되어 가는데 스님을 따라가 황폐한 절에서 시봉을 하다 보면 어떻게 내 일을 마칠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는 게송을 지어 이별을 고하였다.

서쪽으로 민아산을 떠나 오천리 길에
다행이 물병과 지팡이 짚고서 높은 선사 찾아뵈었네
못난 재목에 자주 도끼질을 한다해도
둔한 말은 두 번째 채찍을 알지 못하네
일월처럼 빛나는 은혜 느꼈지만
산 속에 머물 수 없는 이 내 몸
내일 아침 산 아래로 떠나가도
뒷날 다시 와서 인연을 맺으리라.

   오조스님도 게송으로 불안스님을 송별하였다.

완백대 앞에서 그대를 보낼 때
복사꽃 비단같고 버들잎은 눈썹같아라
내년 이맘 때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본다면
한 두 가지 버들은 여전히 푸르겠지

   그 길로 불안스님은 장산(蔣山)을 찾아가 여름결제를 하였다. 거기서 우연히 영원(靈源惟淸)스님을 만나 나날이 우의가 두터워졌는데, 한번은 한가히 이야기하던 중 불안스님이 영원스님에게 말하였다.
   "요즈음 서울에 계시는 어떤 노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오조스님은 천하에 제일가는 큰스님이신데 무슨 까닭에 그 분을 버리고 먼 곳으로 돌아다니는가? 인연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지견(知見)으로 이해하는 스님일 것이니, 그대가 처음 발심한 때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불안스님은 이 말에 고무되어 곧장 해회사로 달려갔고, 그 후 7년만에 비로소 종지를 깨달았다.
   아! 영원스님이 없었다면 불안스님은 반드시 썩은 물에 빠졌을 것이니, 어찌 용문(龍門)을 통과할 수 있었겠는가. 옛 사람의 말에 "나의 도를 이루어줄 사람은 밝은 벗이다." 하였는데 이 말씀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 스스로 알아내는 것이 좋으리라 / 羅湖野錄

   불안(佛眼淸遠) 스님이 처음 해회사 오조법연스님에게 가서 자기문제를 누차 묻자 오조스님은 "나는 그대만 못하니 그대 스스로 알아내는 것이 좋겠다." 거나, "나는 모른다. 내 그대보다 못하다."고만 할 뿐이어서 불안스님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다시 물었다.
   "지금 이 회중에서 누가 가까이 할 만합니까?"
   "원례(元禮) 수좌가 있는데 그가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납자라면 모름지기 승려와 속인의 안목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상당설법에서 '같은 문으로 드나드니 오랜 원수다' 한 말을 듣고 느낀 바 있었다. 그대가 만일 원례수좌에게 가르침을 청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불안스님이 가서 묻자 원례수좌는 불안스님의 귀를 잡아끌고서 화롯가를 빙빙 돌며 말하였다.
   "그대 스스로 알아내는 것이 좋겠다."
   "나는 깨우쳐 주기를 바랬는데 도리어 놀려대니 이를 어찌 법보시라 할 수 있겠습니까?"
   "깨닫는 날 비로소 오늘의 곡절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차가운 밤에 홀로 앉아 화롯불을 헤치다가 콩알만한 불씨 한 개를 보고 환하게 깨우쳐 스스로 기쁨에 겨워 말하였다.
   "깊이 깊이 파헤쳐 보니 이런 게 있었구나. 평생의 일이란 이와 같구나!"
   이에 벌떡 일어나 책상 위의 ≪전등록≫을 펼쳐보다가 파조타(破조墮)선사의 인연에 가서 막힘이 없이 자기가 증험한 바와 일치되었다.
   도반 원오(圓悟克勤)스님이 그의 요사채를 찾아가 청림선사의 <흙나르는 화두>를 들어 그를 시험하였다.
   "옛적이나 지금이나 벗어난 사람은 없다."
   "무슨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있겠는가."
   "철륜천자(鐵輪天子)가 천하에 명을 내린다고 한 그의 말에서 또한 어떻게 벗어나올 수 있겠는가?"
   "내 말하리라. 제석천궁에서 사면서를 내린다고."
   원오스님은 물러 나와 그의 도반에게 말하였다.
   "원(遠)스님에게 활인구(活人句)가 있으니 기쁘다."

● 강주를 그만두고 수좌가 되다 / 羅湖野錄

   금릉 화장사(華藏寺)의 안민(安民)스님이 처음 성도(成都)에서 ≪능엄경≫을 강의하였을 때, 그에게 공부한 자가 유달리 많았다. 당시 원오스님이 소각사 주지로 있었는데 안민스님이 그의 도반인 승(勝)선사와 함께 원오스님을 찾아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뜻을 묻고 있었다. 마침 한 스님이 <십현담>에 대하여 자세한 법문을 청하면서 말했다.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어떤 얼굴인가?"
   라는 구절을 들어 말하자 원오스님이 갑자기
   "환한 모습이 드러났구나." 하고 고함쳤다.
   이 소리를 듣고 안민스님은 환해져서 '자기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원오스님은 그가 알음알이로 이해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서 드디어 본분의 수단을 내보이니 안민스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자기의 견해를 말하였다.
   "백추를 치고 불자(拂子)를 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묘하고 밝은 참마음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원래 이 속에서 살림살이를 꾸려왔구나."
   "할(喝)을 하고 주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는 것은 들음[聞]을 돌이켜 자성을 듣게 하고, 그 자성이 무상도(無上道)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학(敎學)에 의하면 '오묘한 성품은 원만하고 밝아 모든 이름과 모습을 떠났다'고 하니 원래 세계라고는 없는데 중생이란 무엇인가?"
   안민스님은 두려운 마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원오스님이 촉(蜀)에서 나와 호북 협산사(夾山寺)에 주지로 있자, 안민스님 또한 강의를 그만 두고 그곳을 찾아갔다. 만참(晩參) 때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한 스님이 암두스님에게 '옛 돛대를 걸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자 암두스님은 '후원에서 당나귀가 풀을 씹고 있다.' 하셨다. "
   안민스님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여 원오스님에게 조금 전의 화두를 따져 물어가다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하는 말에 활연대오 하였다. 이에 원오스님은 그를 선방의 제일수좌로 명하고 법상에 올라 게송으로 칭찬하였다.

사분율도 그만두고 능엄경도 내던지고 休淹四分罷楞嚴
구름 가를 살피며 철저히 참구했네 按下雲頭徹底參
양좌주가 마조선사와 친했던 일을 莫學亮公親馬祖
배우지 말고
덕산스님이 용담선사를 찾아간 뜻을 須知德嶠訪龍潭
알아야 하리
7년 동안 왕래하며 소각사에 노닐다가 七年往返遊昭覺
만리 길을 날아서 벽암에 올라섰네 萬里고翔上碧巖
이제 제일 수좌를 번거롭게 하리니 今日煩充第一座
많은 꽃밭 속에 우담바라가 피어난 듯 百花叢裏現優曇
하여라

● 구봉(九峰道虔)이 긍정치 않음 / 從容錄

   구봉스님이 석상(石霜楚圓)스님 회상에서 시자 소임을 보는데 석상스님이 입적하니, 대중이 당중의 수좌를 천거해서 주지의 소임을 잇게 하고자 하였다. 이에 구봉스님이 이를 긍정치 않으면서 이르되, "내가 물어서 스승의 뜻을 분명히 알았으면 스승에게 하던 대로 시봉을 하겠다." 하고는 다시 말했다.
   "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쉬어라, 쉬어라[休去歇去] 하셨고
   한 생각이 만년가게 하라[一念萬年去] 하셨고,
   식은 재와 마른나무 같게 하라[寒灰枯木去] 하셨고
   한 가닥의 베를 희게 도련하라[一條白練去] 하셨는데,
   일러보라, 어떤 쪽의 일을 밝히신 것인가?"
   "한 빛이 되는 쪽의 일[一色邊事]을 밝히신 것이오."
   "그렇다면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오."
   "(수좌가 향을 사르며) 그대가 나를 긍정치 못하는가. 내가 만일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솟을 때 앉은 채로 열반에 들지 못하리라."
   이어 수좌가 앉아서 입적하니, 구봉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앉아서 죽고 서서 가는 길이 없지는 않으나 스승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坐脫立亡則不無 先師意未夢見在]


● 천목산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 / 禪關策進

   이 일은 오직 본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하기만 하면 곧 참다운 의정[眞疑]이 일어날 것이다.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부가 <타성일편>이 되어 흔들어도 동(動)하지 아니하고 쫓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며, 항상 '소소령령'하여 분명히 현전하게 되리니 이 때가 곧 득력시절(得力時節)이라.
   이러한 때에 정념(正念)을 확고히 잡고, 부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 중에 가도 가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 때가 곧 집에 이르게될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부를 잊지 아니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精進心)을 내어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 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正念)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아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 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만큼이라도 저 경계에 집착심을 내면, 곧 마군의 올가미에 얽힘이 되어서, 마(魔)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으로 마(魔)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의 일[魔事]을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 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禪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화상에게 참례하니 <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 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雪巖)화상을 뵈니, <無>자 화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는 매일 나에게 와 한마디 일러라." 하셨다.
   그 후 공부에 진전이 있음을 보시고는 공부짓는 곳은 묻지 아니하시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느냐?" 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쫓아내셨다.
   후에 경산(徑山)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의 방에서 보았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疑情)이 돈발하여 동서도 남북도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 6일째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경(經)을 외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법연화상의 진찬(眞讚)을 보니, 끝 두 글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 6천일 百年三百六十朝
온갖 조화를 부린 것이 反覆元來是這漢
원래가 이 놈이니라.

   하였음을 보고 홀연히 전에 참구하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을 타파하고, 즉시 혼담(魂膽)이 날아가 버린 듯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20근 짐을 벗어버린 것에 비하랴! 그 때는 24세요, 3년이 다 차던 해였다.
   그 후 화상께서 물으셨다.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는 때 너의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
   이 말씀에 가히 대답할 말도 없고 내어 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하시기를
   "너 이제부터는 불(佛)도 법(法)도 배울 것이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이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든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 하는 것일까!>를 참구하라." 하시었다.
   그 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세코 이 도리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
   하고는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서 깨어 이 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도반(道伴)이 잠결에 목침을 밀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疑團)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렸다가 풀려 나온 듯 하고, 불조(佛祖)의 깊고 깊은 공안(公案)과 고금의 차별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 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편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 생각도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坐斷)하였느니라.

● 철산경(鐵山瓊)선사 / 禪關策進

   산승이 13세에 불법이 있음을 알고, 18세에 출가하여 22세에 중이 되었다. 먼저 석상에 갔는데 상암주(詳庵主)가 "항상 코끝의 흰 것을 관하라." 하기에, 이 법을 익혔더니 얼마 아니하여 청정한 경계를 얻었다. 그 후 한사람이 설암(雪巖)화상의 회상에서 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설암화상의 좌선잠(坐禪箴)을 베끼어 두고 보니 나의 공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알고 드디어 설암화상에게 참례하여 가르침을 따라 공부하였는데 오직 <無>자를 참구하였다.
   4일째 되는 밤에 이르러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나니 십분 상쾌하기에 이어 선실(禪室)에 돌아와 사람들과 말도 끊고 오로지 좌선에만 힘썼다.
   후에 고봉원묘화상을 뵈니 말씀하시기를
   "12시 중에 끊일 사이를 두지 말지니, 사경(四更)에 일어나거든 곧 화두를 들어 눈앞에 분명하게 잡아두라. 혹 졸음이 오거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땅으로 내려올 때에도 화두를 들고, 걸어갈 때도 화두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도, 발우를 들 때도, 수저를 놓을 때도, 또한 대중일에 참여할 때도 항상 화두를 여의지 말며 밤이고 낮이고 이와같이 지어가면 자연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아무도 깨닫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기에 화상의 가르침에 따라 지어가니 과연 타성일편이 되었다.

   3월 20일, 설암화상이 상당하여 이르시기를
   "형제들아, 포단(蒲團) 위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는구나! 모름지기 땅으로 내려와 한 바퀴 거닐고 냉수로 두 눈을 씻고 다시 포단 위에 앉아 척량골을 바로 세우고 만길 되는 절벽 위에 앉은 듯이 생각하고 다만 화두만 들어라. 이와 같이 공(功)을 드리면 결정코 7일이면 깨치리라. 이것은 바로 산승이 40년 전에 이미 시험한 방법이다."
   하셨는데, 내 그 때 그 말씀대로 공부를 지으니 곧 공부가 심상치 않음을 알겠더라.
   제 2일에는 두눈을 감고자하여도 감아지지 않았으며,
   제 3일에는 몸이 마치 허공을 가는 듯 하였고,
   제 4일에는 일찍이 세간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고, 난간에 의지하여 잠시 서 있으니 마치 잠든 듯이 아주 아는 것이 없으매 화두를 점검하니 또한 분명한 지라 몸을 돌려 포단에 앉으니 문득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흡사 두골(頭骨)을 쪼개는 것과 같으며, 또한 만 길 되는 샘 밑에서 치켜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 듯도 하여 그 때의 환희를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설암화상에게 이 일을 아뢰니 "아직 멀었다. 더 지어 가라." 하셨는데, 내가 법어를 청하니 법어 끝에 이르시기를 "불조(佛祖)의 향상사(向上事)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하셨다.
   이 법어를 받아가지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찌하여 한 방망이가 아직도 모자란다 하실까?' 하기도 하고 또한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여도 또한 의심이 있는 듯하여 마침내 결단을 짓지 못하고 매일 포단 위에 주저앉아 좌선하기를 반년이 되었다.
   
   하루는 두통이 나서 약을 달이다가 각적비(覺赤鼻)를 만났더니 <나타태자가 뼈를 발라서 아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린 일화>를 꺼냈는데, 전날에 지객스님이 이 말을 물을 때에 대답하지 못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몽산(蒙山)화상을 뵈니 물으시기를, "참선은 어느 곳에 이르러서 공(功)을 마치는 것이냐?" 하시는데, 마침내 말문이 막히니 그 때에 화상은 나에게 다시 정력(定力) 공부를 지어 망상습기를 씻어 없애라고 하시고 매양 입실할 때마다 다만 "아직 멀었다." 고만 하셨다.
   
   하루는 5경이 다할 때까지 정력으로 밀어대니 곧 지극히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정(定)에서 나와 화상에게 이 경계를 말하니 화상이 물으시기를, "어떠한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하시는데, 내가 대답하려하자 갑자기 문을 닫아 버리시니 이로부터 공부에 날로 묘처(妙處)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너무 일찍 설암화상 회하를 떠난 까닭에 일찍이 세밀한 공부를 짓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다행이 본분종사를 만나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다.
   원래 공부는 간절하게 지으면 때때로 깨침이 있고 걸음마다 진취가 있는 것이다.
   하루는 벽에 붙여 놓은 삼조(三祖)의 신심명(信心銘)을 보다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라가면 종(宗)을 잃는다 歸根得旨 隨照失宗> 하는 구절에서 다시 한층 껍질을 벗어났었다.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일은 흡사 구슬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고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맑아지나니 한 껍질 벗기고 또 벗기는 것이 몇 생을 공부하는 것보다 낫느니라." 하시고, 다만 번번히 "아직 흠(欠)이 있다."고만 하시었다.
   
   하루는 정(定) 중에서 홀연히 <흠>자를 깨치니 몸과 마음이 활연(豁然)하여 골수에 사무쳐, 마치 적설(積雪)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짐과 같았으니, 환희심과 호기(豪氣)을 참을 수 없어 땅으로 뛰어 내려와 화상의 멱살을 잡고,
   "내게 무엇이 모자라오!"
   하니 화상이 뺨을 세 번 치시는데, 내가 삼배를 하니 화상의 말씀이
   "철산아, 이 소식이 몇 년만이냐. 이제야 마쳤구나!" 하셨다.

● 영은할당혜원(靈隱할堂慧遠)선사 / 禪關策進

   스님은 13세에 약사원 종변스님에게 출가하고 성도에 가서 경론을 배우고 운암사(雲岩寺)에 돌아와 휘(徽)선사에게 참례하여 물었다.
   "문수보살은 7불의 스승이라 하는데 문수보살은 누구입니까?"
   "금사시냇가[金沙溪]의 마가집 며느리[馬家婦]다."
   
   이 말씀을 2년 동안 참구하여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혼자 정좌하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지나가면서 혼자 말로 "사대(四大)를 빌어서 몸뚱이로 삼고, 육진(六塵)을 인연하여 마음이 나니, 육진이 없을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마음을 삼을건가." 하는 말을 듣고 문득 깨쳤다.
   수좌(首座)에게 가서 소견을 말하니, "옳다" 하고, 방장실에 가서 휘화상에게 말씀드려도 또한 "됐다" 하셨으나, 어딘가 석연치 못한 곳이 있어, 다음날 도반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떠났다.
   곧 원오극근 스님에게 갔는데 하루는 원오스님이 보설(普說)에서 말하였다.
   "방(龐)거사가 마조스님에게 묻기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면 일러주마.'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영은스님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벌떡 자빠지면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은 놀래면서 "풍기(風氣)가 동했다."고 당황하여 부축하여 일으키니 영은스님은 "내가 꿈을 깼다." 하였다.
   그 날밤 소참(小參)에 원오스님에게 나아가 물었다.
   "발가벗은 듯한 물건도 없고, 적골이 드러날 듯 가난하여 돈 한 푼 없사오며, 집은 허물어지고 집안은 망하였사오니 화상께서는 도와주시옵소서."
   "칠진팔보(七珍八寶)를 일시에 잡으렴."
   "어찌 도적이 문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기틀은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독해(毒海)에 떨어져 있느니라."
   이에 영은스님이 할(喝)을 하니, 원오스님은 주장자로 선상(禪床)을 치시며,
   "방망이 맛을 보았느냐?" 하였다. 계속하여 영은스님이 할(喝)을 하니 원오스님이 연거푸 두 번 할(喝)을 하였다. 영은스님이 즉시에 예배하니 원오스님이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을 지어주고 '인가'하였다.
   이로부터는 아무도 그의 '기봉'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되니 대중들은 스님을 가리켜 철설원(鐵舌遠)이라 불렀다.

● 회암미광(晦巖彌光)선사 / 人天寶鑑, 叢林盛事

   대혜스님이 스님에게 말했다.
   "네가 불심(佛心)화상 처소에서 얻은 것을 한 두가지 들어보아라."
   "불심화상이 상당하여 보화(普化)의 공안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아무 것도 오지 않았을 때에 어떻게 등짝을 때린단 말인가. 여전히 온 세상에 분신하였다.' 하셨습니다."
   "네 뜻은 어떤가."
   "저는 그 말씀에 대해 주석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병(病)을 법(法)이라 여기는 것이다."
   미광스님은 태연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대혜스님이 "네가 깊이 생각해 보라." 하였으나, 스님은 끝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보름여 지난 후 해인 신(海印 信)선사가 '뇌성이 우렁차지만 빗방울은 전혀 없다' 하고 염(拈)한 것을 기억해 보고 마침내 막힘이 없자 대혜스님께 쫓아가서 아뢰었다. 대혜스님은 '도자(道者)가 낭야(瑯耶)와 현사(玄沙)를 만났으나 깨닫지 못한 말'을 들어 힐난하였다. 스님이 대답하자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비록 한 걸음 나아갔으나 아직 방안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마치 사람이 나무를 자름에 뿌리를 자르면 명근(命根)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 너는 가지를 자르는데 지나지 않았으니 어떻게 명근을 절단할 수 있겠는가? 제방(諸方)의 그럴듯한 선사들의 견해가 모두 이와 같을 따름이니, 일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양기(楊岐)스님의 정전(正傳)은 3∼4인일 따름이다."
   그러나 스님은 못마땅해하며 그곳을 떠나버렸다.
   
   후일 다시 대혜스님을 찾아뵈니 스님이 물었다.
   "너는 아직도 의심하느냐?"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고인(古人)들이 서로 만나는 경우에는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허실(虛實)을 알았고, 그 말만 듣고도 곧 깊고 얕은 것을 알았다. 이러한 이치는 어떠한가?"
   스님이 깜짝 놀라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에 대혜스님은 <유구무구有句無句> 공안을 참구케 했다.
   
   후에 대혜스님이 운문암에서 지낼 적에 미광스님이 시봉하였다. 하루는 대혜스님께 물었다.
   "제가 여기에 온 후 아직까지 철저하지 못하니, 병은 어디에 있습니까?"
   "너의 병은 고약하여 의사도 두 손을 들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죽어버리고 살지 못하였으나, 너는 살아있기만 하고 죽은 적이 없다. 큰 안락의 경계에 이르고자 하면 아무쪼록 한 번 죽어야만 한다."
   
   이후로 미광스님의 의정(疑情)은 더욱 깊어졌다. 어느날 입실하니 대혜스님이 물었다.
   "죽을 먹고 발우를 씻었느냐? 약을 먹느라 가리는 음식[藥忌]일랑 집어치우고 한마디 해 보아라."
   "찢어버리겠다.[裂破]"
   대혜스님이 무섭게 꾸짖으며,
   "또다시 여기 와서 禪을 말할테냐?" 하니,
   스님이 그 말에 크게 깨치고 땀을 흘리며 절을 하니 대혜스님은 게(偈)를 지어 '인가'하였다.

거북이털을 뽑았다고 '해해' 거리다가 龜毛拈得笑哈哈
일격에 만겹 관문의 쇠사슬이 열렸도다 一擊萬重關쇄開
평생에 통쾌한 날은 오늘 같은 날인데 慶快平生在今日
누가 말하나 천리 밖에서 나를 속여먹었다고 孰云千里잠吾來

   이에 대해 미광스님은 투기송을 지어 올렸다.

한번 부딪쳐 기연을 만나니 성난 우뢰 같은데 一찰當機怒雷吼
놀라 일어나 수미산을 북두성에 감추었구나 驚起須彌藏北斗
넘실대는 큰 파도는 하늘에 닿았는데 洪波浩渺浪滔天
콧구멍을 뽑아드니 입을 잃어버렸네 拈得鼻孔失却口

   대혜스님이 보고서, "이것이야말로 선림(禪林)의 장원 감이다."하여 이를 계기로 미광스님은 광장원(光壯元)이라 불리게 되었다.

● 불심본재(佛心本才)선사 / 雲臥紀談

   스님은 처음 수업원(受業院)에서 범패를 익혀 제사에 응해왔다. 한 번은 성(城)에 가서 법기(法器)를 차려 놓다가 어느 노인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였다.
   "네 자신이 바로 법기인데 하필 딴 데서 그것을 찾느냐?"
   본재스님은 이 말 끝에 홀연히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 길로 서선사(西禪寺)의 법석으로 달려가니 대중이 천명이 넘었는데 스님은 신심을 내서 변소청소를 맡았다. 어느날 저녁 물 뿌리고 청소하는데 때마침 융(隆)선사가 야참(夜參)에 참석하여 주장자를 집어던지면서 하는 법문을 듣게 되었다.

깨닫고 보면 한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了卽毛端呑巨海
온누리가 하나의 작은 티끌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始知大地一微塵

   이 말에 본재스님이 환하게 깨친 바 있었다. 다시 황룡(黃龍死心)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기연이 맞지 않아 얼마 후 영원(靈源)스님에게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선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반성하였다.
   '이 일을 내 분명히 보았는데 다만 기연(機緣)에 임하여 토(吐)해 내지를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원스님은 그의 독실함을 알고, '확실히 깨쳐야만 비로소 자유자재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얼마 후 옆 스님이 ≪조동광록曹洞廣錄≫을 읽는데 이를 훔쳐보다가
<약산스님이 땔감을 짊어지고 돌아오는데 한 스님이 '어디서 오느냐?'고 묻자 '땔감을 해온다.'고 하였다. 그 스님이 또다시 약산스님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칼을 가리키며 '달그락, 달그락 소리나는 그것이 무엇이오?'라고 묻자 약산스님은 칼을 빼어들고 나무 자르는 시늉을 했다.> 는 부분에 이르러 크게 깨치고 옆에 있던 스님을 한 대 갈겨주고 요사채 문을 박차고 나가며 입에서 나오는대로 게송을 읊었다.

깨달았다, 깨달았다 徹鐵
큰 바다는 물이 마르고 大海乾枯虛空병裂
허공은 깨지는구나!
사방팔방에 나를 가로막는 난간이 없고 四方八面絶遮欄
삼라만상이 모두 누설하는구나! 萬象森羅齊漏泄

● 불등수순(佛燈守珣)선사 / 人天寶鑑

   스님은 삽천(삽川) 사람인데 오랫동안 불감(佛鑑慧懃) 스님에게 귀의하여 공부하였다. 대중에 섞여 살며 법을 묻곤 하였는데, 까마득하여 아무 것도 깨달은 바가 없자 갑자기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 생에서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맹세코 이불을 펴지 않겠다."
   이에 49일 동안을 노주(露柱)에 기댄 채 맨땅 위에 서 있었는데, 마치 부모상을 당한 사람 같았다.
   한 번은 불감스님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삼라만상이 모두 한 법에서 도장 찍히듯 나온 것이다."
   스님이 그 말끝에 단박 깨달았다. 그리하여 불감스님을 찾아가 뵈니 불감스님이 말하기를
   "아깝다!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이 지랄병 든 놈이 주웠구나." 하였다.

   원오극근스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가 아직 그런 경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꼭 시험해 봐야겠다." 하고는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한 번은 같이 산에 갔다가 깊은 못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원오스님이 수순스님을 물 속에 밀어 넣고는 대뜸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4조[道信]를 만나지 않았을 때는 어땠는가?"
   "(허우적대며…) 못이 깊으니 고기가 모입니다."
   "만난 뒤에는 어땠는가?"
   "나무가 높으니 바람을 부릅니다."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난 뒤에는 어떤가?"
   "다리를 뻗는 것은 다리를 오므리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에 원오스님이 매우 칭찬하며 '인가'하였다.

● 단하자순(丹霞子淳)선사 / 人天寶鑑

   스님은 검주(劍州)사람이다. 단하산에 주지할 때 굉지(宏知正覺)스님이 시자로 있으면서 요사채에서 한 스님과 공안을 거량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마침 단하스님이 그 방문 앞을 지나갔는데, 밤이 되어 굉지스님이 참문(參門)할 때 단하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아까 어째서 크게 웃었는가?"
   "한 스님과 화두를 거량하다가 그의 대답이 너무 서툴러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대의 웃음소리 하나에 많은 좋은 일을 잃게 되었다. 옛 말을 듣지 못했느냐? <잠시라도 정신이 구도(求道)에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다."
   굉지스님은 공경히 절하고 승복하였으며 그 후에는 어두운 방 속에 있을 때라도 감히 한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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