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구 참 선 법


          파수오경간월출      芭峀午更看月出
          두견성리목장려      杜鵑聲裡牧將驪    
          원앙수출종교간      鴛鴦繡出從敎看
          불파금침도여인      不把金針渡與人

  뾰족한 산봉우리에 달뜨는 것을 보고, 두견새 소리 속에 나귀를 먹인다. 원앙새 수 놓은 것 보여주어도, 수 놓은 금침은 주지 못하네.  '파수오경'의 오경은 낮 '오'(午)자 오경입니다.  달은 밤에 뜨는 것인데 어떻게 해서 낮 오경에 달뜨는 것을 보느냐?

  이 '파수오경 간월출'은 볼래야 볼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고, 만져볼래야 만져볼 수 없는 한 물건을 깨닫는 도리를 표현한 것이고, 두견새 소리 속에  나귀를  먹인다하는 것은 내가 나를 깨닫고 그 도리에 입각해서 깨달은 뒤에 수행해  나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원앙새' 수 놓은 것  보여주어도  수 놓은 금침은 주지 못하네.'

  참선은 바로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며, 그 길을 통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해탈을 하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음으로써 나도 영원히 행복하고 모든 중생도  영원히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바른  수행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바른 길을 알았다  하더라도, 쉬지 아니하고 중단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가지 아니한다면  도업을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불교를 펴시기 이전부터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참나'는 있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어려서부터 "대관절 이 인생이란게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디에서부터 와가지고 한평생을 희노애락의 많은 고비고비를 겪으면서 마침내는 일생을 하직하고 어느 곳으로 또 가느냐?"  생각하면  생각해 볼 수록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성현들도 이 문제를 위해서 많은 힘을 거기에  쏟았던  것입니다.이 문제의 해결은 말로써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고 귀를 통해서 들어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론으로 따져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생의 힘을 다 소비한다 하더라도 이론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참선법을 통해서 깨달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아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참선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 그것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과 아는 것과는 전혀 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론을 통해서 불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마침내  중생의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조장하는 결과 밖에는 안되는 것이라 그걸 가지고는 생사해탈이 아니되는 것입니다.

* 활구선(活句禪), 사구선(死句禪)

  요새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까지도 널리 보급이 되고, 붐이  일어나서 너도 나도 참선을 하려고 하고, 또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만은 참선은 두가지 경향이 있읍니다.  하나는 - 살 활자 글귀 구자 - 활구참선(活句參禪)이고, 또 하나는 - 죽을 사자 글귀 구자 -  사구참선(死句參禪)입니다.  사구 참선은 무엇이냐?  참선을 하되,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하는 그런 참선, 공안 또는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런 참선, 그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활구참선은 선지식으로부터 공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은 당장 처음 시작할 때부터  꽉막혀서 뒤를 돌아봐도 꽉막히고, 왼쪽 오른쪽을 둘러봐도 꽉막혀서 한 걸음도  나아갈래야 나아갈 수 없는 상태로 지어가되,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참 나를 깨닫는 길인 것입니다. 물질문명이 차츰 발달해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점점 약아져서 힘을  적게 들이고 쉽게 목적한 바에 도달하려는 생각들을 많이하게 됩니다.

  참선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약은 생각을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바보가 되어 가지고, 다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갖  지식, 상식을 다 내버리고 백지 상태로부터 공부를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해감에 따라서 차츰 무엇인가 얻어지는 바가 있어야만 되지만, 이 참선 공부는  이미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일시에 다 버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만큼 공부에 빨리 힘을 얻게 되는 것이고, 미련 때문에 버리지를 못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늦어지는 것입니다.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하려면 그동안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 - 불교에 관한 것이건, 부처님의 말씀이나 조사의 말씀까지도 - 전부를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만  바보가 되어서 하라는 대로만 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 자 세

        첫째,  자세를 바르게 가져라.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하라.
        셋째,  생각을 옳게 지어가라.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가부좌, 오른다리를 구부려서 왼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고, 또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오른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는 것입니다.  다리가 굳어서 잘 안되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만, 자꾸 해 버릇하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일생동안 의자생활만 해서 이 책상다리를 할 수 없을 만큼 굳어져  있지만은, 그 사람들도 얼마 동안만 연습하면 가부좌를 우리보다도 더 오랜  동안 잘 하는 것을 봤습니다.  가부좌하는 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입니다.

  자꾸 익혀서 되도록 하면 그 굳어져 있던 힘줄이 서서히 늘어지므로 해서 건강에도 좋은 것이니까요.  틈틈이 가부좌를 연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꼭 가부좌를 해야만 참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 무방합니다.

  다리를 그렇게 한 다음에는, 오른 손바닥을 위로하여  왼쪽 발복숭아뼈 위에 올려놓고, 왼손을 펴서 오른손 위에 포게 놓은 다음, 양 엄지손가락 끝을 가볍게 맞댑니다.  너무 힘주어 맞대려고 하지 말고 또  떨어지지도 않도록 하되 엄지손가락의 모습이 아주  곱게  되어야  합니다.위로 삐쭉 올라가거나 삐뚤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손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지금 그 사람의 생각이 안정되었나, 어떤 망상 속에서 곤두박질을 치고 있나, 또는 졸음에 빠져있느냐, 그런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참 딴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두서 없이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손장난을 하기도 하고 손이 삐뜰어져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손만 보면 그 사람이 옳게 화두를 들고 있나 안 들고 있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손 모습을  잘 갖는 것이 대단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앉은 자세가 뒤로  넘어가거나  앞으로 기울여지거나 좌우로 기울여지지 않아야 합니다.  두 귀는 어깨 위에 수직으로 놓이게 하고 고개도 전후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코끝은 단전위에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합니다.  몸도 바르게 해야 하고 고개도 바르게 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대는 것입니다.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너무 똑 부릅뜨면 생각이 산만해지기가 쉽고 너무 가늘게 뜨면 졸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성하고 적적하며(惺惺寂寂), 적적하면서 성성해야  하므로(寂寂惺惺), 처음 시작할 때부터 평상으로 뜨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눈은 평상으도 뜨되 자기 앉은 자리로부터 3미터  전방에다  시선을 떨구면 되는 것입니다.  시선을 떨군다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거기가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지, 3미터의 어떤 한점을 의식으로 응시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 단전호흡

  우리의 의식은 오직 배꼽 밑에 1촌 3푼, 단전(丹田)에다가 집중해야 합니다.  어떻게 집중해야 하느냐?  보통 가슴으로 호흡하지만 참선하는 사람은 단전으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 마시되, 너무 가득 들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이마시되, 숨을 들이마심에 따라 단전부위가 블룩해지고, 3초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단전이 차츰차츰 훌쭉해지도록 온 의식이 거기에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게 잔뜩  들이마신다든지,들어마신 상태에서 너무 오래 억지로 참는다든지 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 무리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단전호흡을 잘하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회복이 되며 정신이 안정되고 몸이 가벼위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 수식관

  앉아서 하는 것이 기본 자세이지만, 매우 피로 했을 때나, 정신이  착잡할 때 그리고 잠이 안 올 때는 누워서 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팔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누워서 단전 부위에다가 두툼한 책 한 권을 올려놓습니다.  그래가지고 숨을 들이마시면, 아랫배가 불룩해지니까 책이 약3센치가량  위로 올라가고, 올라간 상태에서 악3초 동안 머물렸다가, 조용히 내쉬면 아랫배가 홀쭉해지니까 따라서 책도 한3센치 내려오게 됩니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마다 하나, 둘,.. 하고 세어서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 올라가고, 열에서 하나까지 세어 내려옵니다.  이것이 수식관입니다.   중간에 딴 생각이 나서 몇까지 했나 막연하면, 다시 하나에서 시작하고  해서, 잘되면 이십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또 그게 잘되면 삼십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합니다.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도록 아무 실수 없이 되면 참선해 나가는데 기초가 아주 훌륭하게 닦아졌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큰 건물을 지우려고 할 수록 암반이 나오도록 깊이 파서 기초공사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대도를 성취하려면 그 고초인 자세와 단전호흡을 완벽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초를 허술하게 하고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봤자 얼마 안가서 와우아파트와 같이 무서운  사고가  나게 되는 것처럼, 참선도 기본 자세와 호흡법을 잘 모르고 덮어 놓고 화두만 맹렬히 들고 나가다가는, 백이면 백 위장병이나 상기병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기본 자세와 호흡법을 바르게 알고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 생각의 기멸

  그 다음 세 번째에 가서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느냐?  우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무엇인가 생각을 아니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이리저리 발전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사그러지면 또 딴 생각이 생겨나고 쓸 데 없는 생각, 쓸 데 있는 생각,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그러한  생각 속에서 일분일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그러면서  일생이  지나가게 됩니다.

  심지어 잠이 들어 있을 때도, 꿈 속에서도, 그 생각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서 행동화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되고, 바르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화되면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이 육도 윤회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안하게 할려면 죽으면 안 하게 될 것 같지만 죽는다고 한들 현재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가지고서는 끝나지마는, 이 몸 버린다고 해서 그  생각의 활동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또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설사 다음 몸을 받아 날 때까지 몸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중음신의 상태에서도 우리 생각의 기멸(起滅)은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 참선만이 생각의 기멸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송(頌)에,

          참선수투조사관      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      妙悟要窮心路絶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종요로이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 활구참선의 법맥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난 존자에게, 아난 존자는 상나화수 존자에게, 이렇게 해서 28대 달마대사까지 전해왔읍니다.  달마대사는 일백오십세가 되도록 인도 천지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정법을 펴시다가, 그 이전에 중국에 불법이 건너갔다고는 하지마는 경전이나 불상이나 그런 상법(像法)만이 건너갔지, 내가 나를  깨닫는 부처님의 최상승법은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일백오십세의 고령으로3년간의 항해 끝에 중국 남해안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맨 처음에 양무제를 만나니 "짐이 절을 많이 짓고, 경전을 보시하고, 스님네 봉양을 많이 한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대사께서 "확연해서 성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하고 달마대사가 답했습니다.

  거기에서  대화가 끊어져서,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위나라 숭산 소림굴에  들어가 9년간 면벽 관심을 하다가 혜가라고 하는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육조 혜능스님까지 33대가 되고, 육조스님 이후로  오종가풍이 벌어져 중국 천지에 선풍이 크게 진작을 했습니다.  그 오종 가풍가운데 임제종의 활구 참선법이 한국에 전해졌습니다.  이조에 와서 수백년간 교풍(敎風)이 성하고 선풍(禪豊)이 다소 침체한 감이 있었으나,  백여년 전에 경허선사가 대강사로 확철대오 하시어 종풍(宗風)을  중흥하셨읍니다.

  그 밑에 만공선사를 비롯한 육대 선지식이 배출되고, 오늘날 활구 참선법이 이 땅에 전해지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그 활구  참선법이란 어떠한 것이냐?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일체 이론을 배제하고 오직 꽉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하나의 화두를 참구하여 일체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하는 참선법입니다.

 
* 화 두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한다음,
세째는 화두를 의심해 나가는데,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막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 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차를 탈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해서 들려고 안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에 확철대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물을 가득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며는 그  항아리가 바싹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참선을 해나가는데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화두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기에 참선법을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러분을 이끌고 계시는 만덕장보살이 가자고 해서 왔다고 혹 생각할른지 모르지만, 그것은 표면에 나타난 한 조건에 지나지 못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온 것은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발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뚱이가 제멋대로 온 것이 아니고, 남이 오자고 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지금 편의상 자신이라는 말을 썼지마는 알 수 없는 놈이 여기를 오기로 결정을 해서 그 놈이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 명령에 의해서 여러분의 몸이 움직여져 가지고 발로 걷기도 하고, 차를 타기도 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여기를 가자 하고 명령을 했겠느냐? 그놈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그 놈인 것입니다.

  누구 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이 편의상 지어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합니다.  마음이다. 성품이다. 주인공이다.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에서 붙인 이름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려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만,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을 뿐이고, 그런 이름은 그만 두고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로 부터 이몸을 받아나기 이전에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 천만번을 그 놈이 이 옷 입었다 벗어 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 버리고, 사람 옷도 몇백만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 천만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가봤을 것이고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도 떠돌아 다녀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에 온 그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는 맛도 보고 말도 하고, 몸뚱이를 가지고는 차갑고 덥고 부드럽고 껄끄러운 것도 알고, 여기 앉아서 백리 이백리, 저 광주나 부산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고 또 십년 전,  이십년 전, 삼십년 전도 생각하면 환하고 해서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신통이 자재하고 시간 공간에 걸림이 없는 묘한 물건을 우리 모두 낱낱이 다 지니고 있고, 그놈에 의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자체를 깨닫지를 못하고  계속 생사윤회를 할 수밖에 없느냐?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작 이 문제에 눈 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고,  그놈을 마음껏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열반하신 뒤  3천년이 된, 이 말세에 겨우 이 문제를 알고 이제야 그것을  하려고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후회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금생에라도 알게된 것은 천만 다행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에 금생에 마저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면, 무량겁 미래 언제 또 사람몸을 받아서 이 법을 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한 없는 생사윤회를 거듭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몸은 금생에 언젠가는 버리게 됩니다.  버리고 난 다음에 다시 또 육도의 어느 곳에 몸을 받아나게 됩니다만은 금생에 일생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마지막에 숨 딱 거둘 때에도 참선하는 그 마음가짐, 그 화두일념으로 딱 숨을 거두게 되면 내생에 금방 또 사람몸을 받아서 좀더  일찍, 좀더 공부하기 좋은 여건 하에 태어나게 되기 때문에, 내생에는  훨씬 빨리 공부를 하여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도인들, 모든성현들도 일생 이생 닦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생을 공부해 가지고, 금생에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을 받아 태어나 가지고 일찍 공부를 성취하시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은 점진적이 아니고 비약적인 것입니다. 차츰차츰 알아들어가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자리걸음만을 하는 것 같지마는, 결국 깨달을 때에는 중생의 상태에서 성현의상태로 비약적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한번 뛰어가지고 바로 여래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이만 해 놓으면, 설사 금생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공부가 허사가 아니고 또 올바르게 해 놓은 공부는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점진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깨닫지 못한다고 조급한 생각을 낼 것도 없고, 금생에 나이가 먹도록, 죽음에 이르도록,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조금도 후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놓았으면서도, 그죽은 날만은 알지 못한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에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 작용하는 바로 이 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 대관절 이 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아가지고 이승을 하직 할 때까지 단 일초동안도 이몸으로 부터 떠나보지 못한 채 같이 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그 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읍니다.  단 일초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보지 못한 그 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물 -우리 밖의 모든 사물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있고, 그 놈의 부림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이 삼라만상, 우주법계를 내가 운전하고 내가 요리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밖의 물건에 의해서 내가 구속을 당하고 있고, 그 조종을 받고 있고, 그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나인데, 주인이 시원찮고 정신을 못 차리니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 내가 소유하고 있는 종들에게 주인이 멸시를 당하고, 주인이 종 노릇을하고, 종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입니까. 이렇게 말을 하니까, "하! 그  공부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대단히 어렵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마는 절대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게 있는 것,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놈, 여러분이 듣고 있는 놈, 밥을 먹을때는 먹고 있는 놈, 길을 걸어 갈 때에는 바로 그 걸어 가는 놈, 성날 때는 바로 그 성내는 놈, 그 놈을 돌이켜 살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날 때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고,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차를 탈 때도,앉았을 때도, 누웠을 때도, 바로 그 때 그 자리 그 자리가 나를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서 하는 공부는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분위기가 필요하지마는, 이 공부는 때도 장소도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한생각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이 뭣고"라고 합니다. 표준말로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정확히 쓰면 일곱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이뭣고? 석자 입니다.  그래서 참선해 나가는 데에는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해 왔습니다.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뿐이어야 합니다.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슬플 때는 슬픔에 빠져 슬픈 생각이 더 일어나도록 이 생각 저 생각, 묵은 생각을 일으켜 내어 점점 더 슬픔에  빠집니다. 어떤 근심 걱정이 있으면 그 근심 걱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점점 근심이 더 치성하게 일어나도록 근심이 될 만한 사건을 연상해서 더 근심에 빠집니다. 성이 날 때에는 빨리 그 생각을 돌리켜서 성나는 생각이 가라앉도록 해야 유익할텐데 점점 더 성이 일어나도록 고약하게 지나간 생각을 되살려 깊이 그 성나는 생각에 빠져 들어가서 자기가 자기를 괴롭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불붙은 데다가 스스로 석유와 휘발유를 끼얹어 점점 더 불이 치성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픈 생각이 나도 바로 이뭣고? 기분나쁜 생각이 일어나도 바로 이뭣고?  괴로운 생각이 나도, 그 괴로운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져나기 이전에 바로 이뭣고?로 돌아와 버리는 것입니다.

  도인이라고 해서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되, 그 일어나는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참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면 그 생각으로 인해서 점점 괴로움에 빠져 들어가, 나중에는 그 생각이 원인이 되어 건강을 상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한테 좋지 않은 생각을 터트려 다른 사람 마음까지 괴롭히고, 일까지 그르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니 생사윤회에 안 떨어지고 배기겠습니까? 참선은 일어나는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번 일어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읍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성나는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현재 생각이건,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자 마자 바로 이뭣고? 이렇게 합니다. 무슨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서 성이 푹 솟구치더라도 숨을 깊이 들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 참선의 효과

  지극히 간단한 이 한마디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깊이 명심하고 생활 속에 응용해 나가고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한 달을 못가서 차츰차츰 이 공부가 얼마만큼 소중하고 훌륭한 것인가를 느끼게 될 것  입니다. 두달, 석달, 반년, 일년 가노라면 여러분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 간에도 "하! 저 사람이 딴 사람이 됐다. 그렇게 신경질을 잘 내고 경솔하고 괴벽한 성질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 라고 말할 것 입니다.  

  물론 깨달음에 이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수십가지 좋은 이득을 얻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시간상 그것을 낱낱이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우선 피가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안정되고 정신통일이 됩니다. 여러분은 학생이니까 학생으로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고, 회사나 관공서에 나가시는 분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게 마련인데, 아까 말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과 아울러 화두를 잘 관조해 나가면 피로회복이 빨리 되고, 온갖 짜증이 쉽게 풀어지며 정신이 맑고 안정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공부를 알고서 열심히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활구 '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에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의 고인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하는 화두 하나 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1700 공안이 일시에 타파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조금 해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를 철저히 해나가면 일체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요새 일본식 참선이 수입되어 화두 하나를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를  지어 놓고 또 다른 화두를 하고 해서 10개, 20개... 화두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들어가며 참선을 하는 지성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참선은 사구참선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 놓았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 생사해탈을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알고도 남을 상식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차라리 참선을 안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부를지언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쉴 때 "이뭣고?" 다 내쉬면 스르르 숨을 들이 마시되 들이마시면서도 아까 그 이뭣고?"한 의식의 여운이 그 때까지 오도록 그렇게 조용하게 관조하는 것입니다. 3초를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의심을 묵묵히 관조하다가 조용하게 내숼 때 다시 또 "이뭣고?". 처음에는 숨을 들이셨다가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하다가 차츰차츰 딴 생각은 줄어들고 "이뭣고?"가  잘 되어지면, 두 번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 한 번씩만 "이뭣고?"를 들다가 나중에 더 익숙해지면 다섯번 호흡하는 동안 "이뭣고?" 한번의 의심으로 쭉 이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공부가 더욱 익숙해지면 아침에 눈딱 떴을 때 "이뭣고?" 한 번 해놓으면 하루종일 "이뭣고?" 한번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될 때가 꼭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 깨달을래야  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바로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로써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서 밥을 먹고, 똥도 누고, 차도 타고, 걷기도 하고,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팔만사천 마구니가 엿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팔만사천 번뇌망상인데, 화두의 단이  돈독한 사람한테는 와서 달라붙지를 못합니다. 잠깐 필요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필요한 일을 적절히 처리하되 나의 이 화두 일념은 근본적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깨달는 것이요, 우주법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우주법계를 내가 요리해 나가고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운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바로 불법이요 최상승법 입니다. 팔만대장경에 그렇게 많은 법문이 있지마는 그 말씀을 하나로 뭉치면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 말세와 근기

  말세다. 중생의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런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말씀을 해왔지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 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옯기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달고자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정법시대를 만난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고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 맺 음

  시작할 때에 읊은,

  원앙수출종교간(鴛鴦繡出從敎看),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

하는 것은 원앙새 수 놓은 것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지마는, 원앙새 수 놓은 그 바늘은 여러분에게 줄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이야기 해 드릴 수 있지마는 깨달음 그 자체는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금생약불종사어      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      後世當然恨萬端

  금생에 이 자리에서 들은 말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여러분에게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여러분들도 더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하시겠지마는, 오늘은 이것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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