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오년(庚午年) 동안거 금모선원 정진대중과의 문답

문 :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답 :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것은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 회상(會上)에서부터 전개되어 육조(六祖) 문하에 오종(五宗)이 벌어졌는데, 이 오종이 모두 돈오돈수다.  돈오점수 사상은 오조 대사 밑에 교수사(敎修師)로 있던 신수(神秀), 육조대사 밑에 하택(荷澤), 이후 규봉 종밀(圭峰宗密)로 전개 되었는데, 이 점수 사상은 선종(禪宗)의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안목이 아니다.  이 최상승(最上乘) 선법(禪法)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이다.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궁극에 가서 구경법(究景法)은 하나이니, 그 구경의 여래지에 이르면 다시 더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는 돈오돈수인 것이다.

문 : 스님께서 상당(上堂)법문 하실 때, '한 번 깨치고 또 깨쳤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로, 향곡(香谷) 큰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서 행자(行者)시절에 한번 깨쳤는데, 그 후 봉암사에서 정진하실 때 또 한 번 깨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말씀만 들을 때는 혼돈이 옵니다. 한번 깨치면 바로 여래지(如來地)인데, 다시 또 깨쳤다고 하시니까요.
   저희들도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만약 화두를 한 번 타파(打破)한 뒤에 다시 또 참구해서 깨쳐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돈오돈수 사상이 성립될수 없지 않는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답 : 그래, 그것이 의심이 날 수가 있는 것이지. 육조대사도 두 번 깨치셨는데, 처음 한 번은 시장에서 탁발승이 금강경(金剛經) 독송하는 것을 듣고 홀연히 깨달으셨다.  그러고 나서 오조(五祖)대사 회상을 찾아가서 행자(行者)로 있었는데 하루는 오조 대사께서 대중에게 이렇게 일렀다.
   "모두 공부한 바 소견(所見)을 글로 지어 바쳐라. 만약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법(法)을 전해서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리라."
   그러나 신수(呻) 상좌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적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오조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 게송대로 닦으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 하시며 향 피워 예배하게 하고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 대중이 신수 상좌를 칭찬하며 그 게송을 외웠는데, 마침 한 사미승이 그 게송을 외우면서 노 행자(盧行者)가 방아를 찧고 있던 방앗간 앞을 지나갔다. 노 행자가 그 계송을 들어보고, 그것이 견성(見性)한 사람의 글이 아니니, "나에게도 한 게송이 있는데, 나는 글자를 모르니 나를 위해서 대신 좀 적어다오"하고 게송을 읊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        

   이 게송(偈頌)이 신수 상좌 글 옆에 붙으니 대중이 모두 놀라 서로들 웅성거렸다. 오조대사께서 그 소란스러움 때문에 나오셔서 그 게송을 보시게 되었다.  보시니 그것은 진리의 눈이 열린 이의 글귀라, 대중이 시기하여 해칠 것을 염려하셔서 손수 신짝으로 문질러 버리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견성한 이의 글이 아니다."
   다음날, 오조대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오셔서 방앗대를 세번 치고 돌아가셨는데, 노 행자가 그 뜻을 알아 차리고 대중이 다 잠든 삼경(三更)에 조실방으로 갔다. 오조 대사께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사(袈娑)로 방문을 두르시고는 금강경(金剛經)을 쭉 설해 내려가시는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 而生其心)'하는 귀절에 이르러서, 노 행자가 다시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오조대사께 말씀드리기를,

何期自性 本自淸淨 何期自性 本不生滅
何期自性 本自具足 何期自性 本無動搖
何期自性 能生萬法

어찌 제 성품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까
   하니, 오조께서 노 행자가 크게 깨달았음을 아시고 법(法)을 전하셨다. 이렇듯 육조 대사는 행자 시절에 두 번 열리셨던 것이다. 그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를 보면 두 번 세 번 깨달으신 분이 부지기수다.  설봉(雪峰) 선사도 암두(岩頭) 선사께 혼이 나 다시 깨치셨고, 임제(臨濟) 선사도 그런 적이 있었고...
   몰록 구경법은 하나이니, 최상승의 향상구가 열리면 다시 더 깨달을 것이 없는 돈오돈수이지. 향상구를 알면 그것이 바로 구경법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그 가운데 전개되어 있으므로 자연히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어 있다.
   그런데 향상구 밑에 여래선(如來禪)이 있고 법신변사(法身邊事)가 있어서, 우리가 공부를 하여 그러한 경계에 소견(所見)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스승없이 공부하는 이 중에는 법신변사를 알아 가지고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착각하여 구경법으로 삼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향상(向上)의 진리의 법에 설해놓은 것에는 도저히 앙망불급(仰望不及)이다.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또 향상의 진리를 깨쳐야만 구경법에 이른다. 자고로 고인네들이 두 번 세 번 깨달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향상구만 해결이 되면 모든 공안(公案)을 다 알게 되어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산 상봉에 올라서면 동서남북 상하가 다 내려다 보이는 것과 같이, 향상구를 투과(透過)하면 모든 공안이 다 그 아래에 있다.
   그러나 향상구를 모르면 견성이 아니고, 부처님과 조사의 전지(田地)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향상구를 알아야만 비로소 부처님과 조사의 전지에 이르러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된다. 수방자재(收放自在) 여탈자재(與奪自在) 살활자재(殺活自在), 거두고 놓고 주고 빼앗고 죽이고 살리는,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춘다는 말이다. 이러한 향상의 안목을 갖춘 연후에야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안주(安住)하는 무념무심(無念無心)의 경지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문 :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실 스님께서는 향곡 큰 스님께 전법게(傳法偈)를 받으실때, 향상구를 아시고 받으셨습니까?
답 : 허허. 몰랐다면 어찌 법을 전하셨겠느냐.
   내가 스물 네살 때 선산 도리사에서 첫 철을 났다. 그때 일곱 분이 함께 지냈는데, 그 분들 중에서 지금 학산 스님이라는 노장님이 전라도 어느 토굴에 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타계(他界)하시거나 속가(俗家)에 가고 안 계시지. 공부인은 본시 모든 반연(攀緣)이 다 끊어져야 하고, 방선(放禪)을 했다고 해서 한화잡담(閑話雜談)을 해서도 안되고, 항시 화두와 씨름하여 자나 깨나 그 일념(一念)에 잠겨야 된다. 그래야만 화두가 무르익어져서 흐르는 물과 같이 끊이지 않고 지속이 된다.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져서 모든 분별(分別)을 다 잊어버린 가운데, 흡사 돌사람(石人)과도 같고 나무사람(木人)과도 같이 되었다가, 거기에서 문득 살아나야 대용전창(大用全彰)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 곳에서 공부를 애쓰다가 사견(邪見)으로 '알았다'는 한 생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것을 점검받겠다고 제방(諸方)선지식들을 두루 참방(參訪)해 보았는데 그 분들 대부분이 문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옳다','그르다'하는 점검을 바로 해주시지를 못하더라. 그런데 월내(月內)향곡(香谷)선사께서는, 물음에 답을 하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것이 옳은 답인가, 그른 답인가 척척 칼질을 하셨다. 그래서 '제방 선지식들이 쓰지 못하는 칼을 쓰시는구나' 싶어 어느 선지식보다도 신망(信望)이 많이 갔지.

   그러나 '알았다'는 이 고집덩어리 하나를 들게 되면, 그것을 놓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엊그제도 몇년 전에 여기서 살았던 수좌 한명이 자기 딴에는 '알았다'고 점검받겠다고 왔더라. 그래서 쉬운 공안(公案)을 하나 던져보았는데, 엉뚱한 소리만 하길래, "그것은 잘못 안 것이니 다시 공부해라." 하고 바로 일러 주었거든. 그런데도 자기 고집만 세우고 가던데, 그 병이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3년 허송세월을 했었지. 만약 그때 가는 곳마다 아니다 라고 방망이를 내렸었더라면, 아닌 줄을 알고 즉시 놓아버렸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안하무인이 되어 세월을 헛보냈던 게지.

   그러다가 스물 여섯살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정진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마을이건 절집이건 생활이 몹시 어려웠던 때라 모든 것이 귀했다. 그 추운 곳에 이불도 없고 좌복도 하나여서 잘 때는 그 좌복때기를 배에다 앉고 잤었다. 그런데 그 곳이 얼마나 추웠느냐하면, 방에 숭늉을 놔두면 그 숭늉이 꽁꽁 얼더라. 문단속도 허술하고 나무도 풍족하질 않고 하니.  그 당시에 그 곳에서 한 열명 남짓 지냈는데, 지금 해인사 부방장이신 혜암 스님, 활안 스님, 월현 스님이 지내셨고 그리고, 젊은 우리 또래들이 살았다. 한번은 일주일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는데, 그때는 다들 40대 전이라서 장군죽비를 때리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는 판이라. 어떻게나 때리던지, 모두 그렇게 애를 쓰면서 살았다.

   하루는 유달리 겨울 날씨가 푸근해서 선방 옆마루에 혼자 아침 햇볕을 벗하고 있다가 문득 자기사(自己事)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내가 참으로 견성을 해서 고인네와 같이 낱낱 법문 당당한가?' 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데, 거기는 조작과 거짓이 통할 리가 없지. 그래서 '내가 이것을 가지고 견성했다 한다면, 나를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것이요, 세월 낭비요, 말이 아니니, 백지로 돌아가서 다시 출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어느 선지식을 찾아가서 지도받아야 되겠는가? 언하(言下)에 흑백을 칼질해 주는 선지식을 찾아가서, 나의 전 생애를 걸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해제하자 마자 바랑을 짊어지고 도반 스님 몇몇과 함께 월내 향곡선사 회상을 다시 찾아갔다. 그 곳에서 향곡선사로부터 새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화두를 받았다. 그 화두를 한 2년 들었을 게야. 그 2년동안은 모든 반연과 가고 오는 것을 다 잊어 버리고 해제도 상관하지 않고 화두와 씨름했지. 그러다가 그 화두가 해결되니, 종전에는 문답하면 허튼 소리만 나오던 것이 그때야 비로소 바른 소리가 나오더라. 그러나 비로소 바른 답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마조(馬祖)선사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일면불은 천 팔백세까지 장수하는 부처님, 월면불은 단 하루 수명의 부처님)' 공안에는 막혔다. 그래서 그 화두를 들고 다시 5년 동안 신고(辛苦)하다 해결해 냈지. 그리하여 마침내, 고인들께서 베풀어 놓으신 중중(重重)의 차별법문(差別法門)에 걸리는 바 없이 상통(相通)하게 되었다.
   
문 : 제 경우는 '삼서근'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만일, '삼서근'화두가 타파되지는 않았으니까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입니다만, 타파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면불 월면불' 화두에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답 : 그것은 화두 참구하는 심천(深淺)에 달렸다. 화두일념이 지속되고 의심이 아주 철두철미해서 온 대지가 의심덩어리가 되는 일념무심삼매(一念無心三昧)에 깊이 들어가서 깨닫게 되면, 그 때는 향상구(向上句)가 열린다. 그렇지 않고 홀연히 아는 수가 있다. 홀연히 아는 것은 힘이 미약해서 모든 공안을 바로 보기가 어렵다. 그러니 무심삼매에 며칠이고 몇 달이고 푹 빠진 그 가운데서 해결이 되어야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에 올라서게 되는 법이지.

문 : 무심삼매(無心三昧)라는 말씀과 오매일여(寤寐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라는 말씀하고는...
답 : 다 자나 깨나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도 내가 말했던 것처럼, 흡사 석인(石人), 목인(木人)과 같이 모든 분별이 다 마비된 상태다. 전후지분별(前後之分別)이 다 끊어져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 버리는 상태라는 거지, 그 상태에서는 온 천지가 화두가 되어 오로지 화두 한 생각, 의심 뿐이다.

문: 스님의 첫 오도송(悟道頌)인 '자개주장기인회(這箇柱杖幾人會) 삼세제불총불식(三世諸佛總不識)...'하는 그 오도송도 확철대오(廓撤大俉)한 오도송입니까?
답: 허허허허, 그것은 내가 '확철대오한 오도송이다', '아니다'하는 것 보다 안목이 열린 이는 보면 다 안다. 그것은 '향엄상수화' 화두가 열려 견처(見處)가 나서 지은 것이고, '일면불 월면불'을 깨닫고는 '일봉타도비로정(一棒打倒毘盧頂)'으로 시작되는 오도송을 지은 것이다. 두 오도송이 그러한 기연(機緣)이 있지.

문: 스님께서는 '일면불 월면불' 화두를 참구하실 때 오매일여(寤寐一如)가 5년 동안 지속되셨습니까?
답: 아니, 그리 지속된 것은 아니다.

문: 화두일념에 간단(間斷)이 있게 되면 화두가 해결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답: 그렇지, 그렇지. 일념(一念)이 간단없이 지속되어야만 깨달음이 온다는 것은 철칙이다. 그런데 지속되는 그 기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거든. 며칠이거나 몇 달이거나 몇년이거나,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른데, 내 경우는 그렇게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문: 예전 선지식들께서는 화두를 주실 때, 상대방의 근기(根機)에 맞게끔 고려해 주셨던 것 같은데, 요즈음 스님들께서는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주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기계화되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의심도 크게 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맞지 않는 화두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스님, 옛날 그 천 칠백 공안 외에 의심이 굉장히 많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상대방의 근기에 맞게끔 다른 것을 창조해 주시면 안 되는지, 그것 좀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의심이 일고 일지 않고, 의심의 강도가 강하고 약하고 하는 것의 원인은 화두상에서 찾는 것은 분별이다.
   선지식이 참학자(參學者)에게 천 칠백공안 중의 한 화두를 주나, 의심을 물어서 한 마디 던져주나, 상대방이 얼마만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십분 신(信)을 갖고 참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공부가 화두나 선지식이 이것 저것 일러주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고인들께서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셨던 것과 같이 참 학인이 와서 부처님의 근본대의(根本大意)를 묻는다든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다든가 하면, 응당 한마디 일러주지. 그러면 그것을 참구의 분(分)으로 삼으면 되는데, 그러한 자세로 공부하려는 이가 없거든. 다들 "화두 타러 왔습니다"하니 계제따라 화두를 일러주는 것이지.  그러나 참구하는 데 있어서 의심이 일고 일지 않고의 문제는, 일러주는 화두가 어떤 화두인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신심(信心)있게 받아들이고 실답게 참구하느냐, 여기에 있는 것이지 절대 화두에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 그래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심이 돈발(頓發)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기연(機緣)이 없겠습니까?
답 : 그것은 정말 의심이 나서 찾아와 물으면 그렇게 한 마디 던질 거 아니냐. 그러면 받아 가지면 되지.
   이 공부는 무슨 요행을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대도(大道)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선지식이 던지는 법문 한 마디가 금쪽 같은 법이다. 그러한 신심(信心)에서 묻는다면, 한 마디 던졌을 때 몰록 의심삼매(疑心三昧)에 들 수가 있다.
   
문: 잘 알겠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향엄상수화' 화두를 타파하시고 다른 공안에는 다 막힘이 없으셨는데 '일면불 월면불' 공안에 막혀 다시 5년 동안을 참구하셔서, 그 화두를 해결 해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면불 월면불' 화두를 해결하시기 전에 다른 공안(公案)들에 대해서 아셨다는 공부 분상이, 혹시 일면불 월면불을 해결하시고 난 후에 달라지지는 않으셨습니까?
답 : 달라진 것은 없지.
   백천공안(百千公案)에는 고인네들이 여래선(如來禪)을 알아서 여래선 도리를 베풀어 놓은 것이 있고, 법신변사(法身邊事)를 알아서 법신의 변사를 베풀어 놓은 대문도 있고, 최초구(最初句), 말후구(末後句)를 알아서 그것을 베풀어 놓은 것이 있고, 향상구(向上句), 향하구(向下句)를 베풀어 놓은 것이 있고, 일구(一句), 이구(二句), 삼구(三句)를 베풀어 놓은 것이 있다.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인 향상구가 해결되면 다른 것은 다 자연히 알게 되어 있지만, 최고봉에 올라서기 전이라도 앞에서 열거한 작은 봉우리들에 올라서서 진리의 부분 부분들을 볼 수가 있다.
   
문 : 향상구라는 것이 천 칠백 공안 중에 어떤 공안이 아니고...
답 : 그렇지.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이다.

문 : 공안(公案)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답 : 그렇지, 아니지. 진리의 최고 봉우리라는 말이다.

문 : 잘 알겠습니다. 교리(敎理)에서 말하는 십지보살지위(十地菩薩地位), 등각(等覺), 묘각(妙覺)과 관련지어 볼때, 향상구는 어떤 것을 제창한 것입니까?
답 : 향상구는 부처님의 구경열반법(究竟涅盤法)이니 묘각의 경계로 보면 정확하다.

문 : 과거 육조 혜능(六祖慧能)대사까지 조사(祖師)들께서는 여래선(如來禪) 도리로 인가(印可)를 하시고 전법(傳法)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조사선(祖師禪)을 제창하시고 향상구를 타파해야만 진리의 최고봉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렇다면 과거 십삼조사들께서 깨치신 살림살이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답 : 그것은 그렇지도 않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세 번 특별한 법문을 하셨다. 한 번은 인천(人天)백만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좌정(坐定)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처님께 우담바라꽃을 올리니 부처님께서 그 꽃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대중에게 보이셨고, 한 번은 또, 법회일에 모든 대중이 법문을 들기 위해서 다 운집(雲集)해 있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가섭 존자(迦葉尊者)가 들어오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에 좌정해 계시다가 자리의 반을 비켜 앉으셨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그 뜻을 알고는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으니, 부처님께서 가사를 같이 두르시고 대중에게 말없이 보이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타방(他方)에 가 있던 가섭존자가 돌아와, 부처님의 시신을 향하여 위요삼잡하고 합장 예배를 올리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의 자비스런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하시기를,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이렇게 가신 것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칠푼 두께의 금관 속에서 두 발이 쑥 나왔다. 그래서 가섭 존자가 다시 합장 예배를 올리니, 두 발은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관이 그대로 중천(中天)에 떠올랐는데 이때, 지혜삼매(智慧三昧)의 불꽃이 일어 허공 중에서 화장(火葬)되었다.
   이것이 삼처전심(三處傳心)이다. 꽃을 들어보인 뜻은 무엇이며, 자리를 나누어 가사를 같이 두르고 앉으신 뜻은 무엇이며, 또 두 발을  내미신 뜻은 무엇이냐? 모든 후손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깨달아 거기에서 백천공안(百千公案)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삼처전심 외에 또 특이한 것을 보이셨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청법(聽法) 대중이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는데, 한 여인이 부처님 근좌(近座)에 좌정한 채 자리를 뜰줄 몰랐다. 문수보살이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대중들이 모두 돌아갔는데, 어찌하여 저 여인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저렇게 앉아 있습니까?"
   "저 여인이 정(定)에 들어 있으니, 문수 너의 신력(神力)으로 저 여인이 정에서 나오도록 한번 해 보아라."
   말씀이 떨어지자 문수보살이 신통으로 백천 문수를 허공주에 나투고, 위요삼잡을 하고, 탄지(彈指)를 해보았는데, 여인은 정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 광경을 지켜 보시고는,
   "문수야, 네가 비록 백천신통묘용(百千神通妙用)을 나투어도 너의 신력(神力)으로는 저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할 수 없다. 하방(下方) 42국토를 지나가면 망명초지보살(罔明初地菩薩)이 있는데, 오직 그만이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망명 보살이 땅에서 솟아나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한 여인을 가리키시며,
   "저 여인이 정에 들어 있으니, 망명 네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망명 보살이 여인을 향하여 손가락을 세 번 튕기자. 여인이 바로 정에서 나왔다.

   또 하루는, 부처님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말 없이 앉아 계신데, 문수 보살이 나와서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는
   "자세히  법왕법(法王法)을 보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그러면, 문수 보살은 과거 칠불(過去七佛)의 스승이며 백천신통을 나투었는데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끔 하지 못했으며, 어찌하여 망명은 초지 보살인데도 탄지(彈指) 세 번에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느냐? 그리고 문수 보살은 무엇을 보았기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앉아 계시는데 "법왕법(法王法)을 보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다."고 하였느냐?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공안(公案)이 벌어졌는데, 삼처전심(三處傳心)은 알기 쉬워도 이 '여인출정화(女人出定話)'나 '관 법왕법여시(觀法王法如是)'는 알기 어려운 공안이다. 이것을 알면 향상구(向上句)를 알게 된다. 중국의 위대한 도인들도 이러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바로 알았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법을 써서 백천 공안(百千公案)을 베풀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향상구가 제창되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견성법(見性法)이라 하는 것은, 내 살림이 따로 있고 네 살림살이가 따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불만조사(千佛萬祖師)의 견성이나 모든 후래인(後來人)의 견성이나 다 성품, 즉 마음 땅을 본 것을 말한다. 백천 공안은 모두 이 가운데서 베풀어진 것이므로, 우리가 성품을 바로 보게 되면, 한번 봄으로 인해서 모든 공안을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백천 공안의 낙처(落處)를 척척 꼬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방중(房中)에 봐라. 다 같은 출가승(出家僧)인 비구, 사미로 이렇게 한방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모습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백천 공안도 그와 같이 모양이 다 다르고 이름도 다 다르다. 우리가 어떤 사람 이름을 "아무개야!" 하고 부르는데 다른 사람이 "제가 아무개입니다" 한다면 통하지 않는다. 백천 공안도 이치가 그와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졌다가 일기일경(一機一境)에 홀연히 개오(開悟)하면 고인과 더불어 동일한 안목(眼目)을 갖추게 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고인네 살림살이를 내 살림으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문 : 그런데 제가 어리석어 가닥을 제대로 못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은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조사선이 곧 여래선이고 여래선이 곧 조사선인 것이니, 그것은 고인들이 자재처(自在處)를 식파(識坡)하면 된다.

문 : 건강문제에 대해서 여쭤 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깨닫기 전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셨으며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가, 지금도 화두를 들고 계시는가 궁금합니다.
답 : 이 몸뚱이라는 것은 제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병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다 소소한 병은 있기 마련이니, 그렇게 알고 이 몸뚱이에 애착(愛着)을 두지 말아야 한다.
   몸은 배탈이 날 수도 있고 신경통도 생길 수가 있고 감기도 앓을 수 있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착실히 화두를 챙기면서 소일을 하면, 위장병도 나을 수 있고 신경통도 나을 수 있고 감기도 나을 수 있는 법이다.
   수좌들에게 생기는 위장병은 대체로 잔뜩 먹고 조는 데서 온다. 적당히 한 칠부 팔부 먹고 어깨와 허리를 쭉 펴고 반듯하게 앉으면, 설사 졸음이 오더라도 고개만 끄떡하다 말지 허리가 구부정한 자세는 되지 않는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고개가 앞으로 많이 수그러지게 되면 오장육부에 부담을 줘서 병을 만들게 된다. 그러니 항상 바른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몸뚱이라는 것은 '내가 약하다', '무슨 병이 있다'고 하여 거기에 집착하면 더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몸이 약하다거나 조그만 병이 있는 것은 아예 마음에 두지 말고 무심(無心)으로 돌려 버리고 화두에 안주(安住)할 것 같으면, 고요한 일념이 지속되는 데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소소한 병은 자연히 잊어 버리게 된다. 병에 대한 집착에서 생각이 떠나 버리기 때문에 자연히 좋아지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좌선하는 자세가 바르면 건강상의 장애 뿐만 아니라, 화두 참구할 때 오는 장애들도 다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망상도 사라져 버리고, 혼침도 달아나 버리고 그렇다. 그래서 이 공부하는 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 처음 한철만 잘 길들여서 바른 자세를 갖추어 놓으면 일생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끄떡 없고, 앉아 있을 때 다리 아프면, 아래 위 다리 바꾸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 식생활에 있어서는 좋은 것만 취하지 말고 고루고루 먹고 과식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견성지인(見性之人)은 공부를 마쳤다고 하여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경계를 일상생활에 항시 수용하는 것이다. 깨달은 살림이 그대로 생활화된다는 말이지.
   
문 : 특별히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답 : 그렇지,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가 일상생활에 그대로 살림살이가 되어 버리지.

문 : 스님께서는 화두를 목전(目前)에 두라고 하셨는데, 목전에 둔 화두 있고 화두 드는 사람 따로 있고 하면 둘로 쪼개지는 것 아닙니까?
답 : 둘로 어떻게 쪼개져?

문 : 화두를 목전에 두라고 하였으니까, 목전에 둔 화두 따로 있고 또, 참구하는 나 자신이 따로 있게 되니, 둘로 쪼개지는 것 아닙니까?
답 : 아니, 온 정신을 목전에 두라는 말이지. 목전에 두는 것이 숙달되면 앉아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걸어갈 때도 그렇고, 누울 때도 그렇고, 어느 때건 화두 한 생각 모으기가 쉽다.
   그렇지 않고 생각을 머리에 두면 상기(上氣)되어 참선을 할수가 없고, 또, 시야를 다른데 두면 견문(見聞)에  끄달려 화두 한 생각 모으기가 어렵다.
   
문 :  제 소견으로는 화두가 어디 머무는 바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답 : 응?

문 : 어디 한 군데 주(住)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답 : 아니, 그렇지 않아. 항시 화두를 목전에 두어 생각을 모아야 된다.

문 : 그리고 또,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의리선(意理禪)이 되는 것 아닙니까?
답 : 아니지. 내가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하라'고 할 때의 '생각하라'는 말의 의미는, 사량(思量)으로 화두를 헤아리거나 이치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라, 화두 전체를 분명하게 챙기라는 말이다.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이렇게 화두 제목이 분명하면서 의심이 쭉 지속되면 다시 화두를 챙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화두가 희미해지고 혼침이 오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면 화두를 다시 챙겨야 한다. 분명하게 챙겨야 다른 번뇌, 망상, 혼침이 달라들지 않는다.
   그렇게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짓고, 챙기고 의심을 짓고, 그렇게 계속 애쓰다 보면 진의심(眞疑心)이 발동걸릴 때가 있다. 그 때는 한 번 화두를 챙겨들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게 되므로 굳이 다시 챙길 필요가 없다. 이렇게만 화두를 든다면 공부를 바로 지어가는 것이다.
   
문 : 한 생각이 지속되면 화두를 다시 챙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답 : 그렇지. 다시 챙길 필요가 없지. 그대로 지속이 되니.

문 : 그것이 화두를 '관(觀)하라' 하는 것과 같은 말씀이신가요?
답 : 아니지. '관하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화두는 고요히 관(觀)하는 대상이 아니라 의심이 생명이다. 몰록 진의심이 돈발(頓發)하여 일념무심삼매(一念無心三昧)에 들게 되면 모든 바깥경계 뿐만 아니라 참구하는 나 자신까지도 없어지고, 온통 의심덩어리 뿐이게 되는 것이다. 대상도 주체도 없는 의심덩어리 그 자체다.

문 : 그런데 이것이 분별심(分別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화두일념이 지속되는데도 자꾸 '이것이 진짜 의정(疑情)이 아니지 않나?' 하는 의심이 일어 다시 반성하곤 하는데,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되는 것입니까?
답 : 혼침, 망상 없이 화두가 분명하면서 의심이 지속될 것 같으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문 : '의심하고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의심과 생각은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생각은 화두 전체를 떠올리는 것을 말하고, 의심은 그 내막의 뜻을 몰라서 그것을 알고자 간절히 의심하는 것이다.
   "달마 대사께서 서역에서 동토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데, 조주 선사께서 "뜰 앞에 잣나무니라" 하셨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데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라 한 화두 전체가 분명해야 하고, 분명한 그 가운데 '어째서 뜰 앞에 잣나무라 했는고?' 하는 의심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
   그 두 가지가 상반(相伴)되지 않으면 수레의 외바퀴와 같이 아무 활로가 없다. 제목이 분명하지 않고 의심만 지으면 나중에는 멍하게 되어 아무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생기가 없지. 마찬가지로  화두 제목만 있고 의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부에 힘이 없고  아무 진척이 없게 된다. 그래서 고인들께서도 의심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도 크다고 하셨다.
   그러니, 모두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에서 실답게 정진하여,  몰록 활연대오(豁然大悟)해서 한국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키게끔 한 번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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