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고산체 장노에게 답함


  전사(專使)가 와서 편지와 신향(信香)등을 받고 법을 열어 출세하여 석문(石門)에서 도를 설하여 쫓아온 바를 잊지 않고 악장로(岳長老)를 위하여 향을 잡아 양기종파(楊岐宗派)를 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미 이런 일을 맡았으면 꼿꼿하게 하여 철두철미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평소에 실제로 증득하고 깨달은 마음으로 단정히 방장실에 있는 것이 백이십근(百二十斤)의 짐을 지고 외나무다리 위를 지나가는 것과 같으니 다리를 헛디디고 손이 미끄러질 땐 자신의 목숨도 보존할 수 없는 처지인데 하물며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해 못을 뽑고 쐐기를 뽑아 다른 사람을 구하겠습니까? 고덕(古德)이 “이 일은 80먹은 노인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아이들의 장난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고덕이 “만약 한결같이 종지의 가르침만 들면 법당 앞의 풀이 한길이나 자라 마땅히 사람을 고용해서 절을 돌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암두(巖頭)스님은 매번 이르시기를 일어나기 전에 한번 화두를 들고 눈을 부릅뜨라고 하셨고 안국사(晏國師)의 석문(石門)을 넘지 말라는 구(句)와 목주(睦州)선사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은 너에게 30방을 때리겠다는 것이다와 분양무업(汾陽無業)선사의 망상하지 말라와 노조(魯祖)선사의 무릇 승려가 문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곧 몸을 돌려 벽을 마주하고 앉는다 등을 사람을 위할 때는 마땅히 이러한 법식에 어둡지 아니하여야 비로소 위로부터의 종지(宗旨)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위산(?山)스님이 앙산(仰山)스님에게 이르되 “한 곳에 종지를 세우려면 5가지의 인연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성취하게 된다.” 5가지의 인연이란 외호연(外護緣)과 단월연(檀越緣)과 납자연(衲子緣)과 토지연(土地緣)과 도연(道緣)입니다. 듣자니 어사대부(霜臺)인 조공(趙公)은 당신의 단월(檀越)이고 치정사업(致政司業)의 정공(鄭公)은 그대를 절에 들게 하였으니 두 사람은 천하의 (이름 있는) 선비입니다.

  이로 볼 것 같으면 당신에게는 5가지의 인연이 조금은 갖추어졌습니다.

  매번 납자들이 민중(?中)으로부터 올 때 마다 법석의 성대함을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단월이 귀의하고 사대부들이 외호하며 절에 머물러 지킴에 마장(魔障)이 없으며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이니 마땅히 젊고 힘이 있을 때 이 일을 격려해야 합니다.

  착수할 때는 마땅히 눈을 부릅뜨고 소홀히 함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

  근래에 한 종류의 장사치들이 곳곳에서 보잘것없는 선을 배워서 종종 종사가 소홀히 지나쳐 버리면 드디어 허공을 타고 메아리가 울리듯이 번갈아 서로 인가하여 주어 그릇 사람을 속이는데 이르러 바른 종풍으로 하여금 담박하게 하니 단전직지(單傳直指)의 가풍이 거의 없어지고 있으니 자세히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조(五祖)스님께서 백운(白雲)에 계실 때 일찍이 영원(靈源)화상에게 답하여 올 여름 모든 농장에 낱알을 수확하지 못함은 근심되지 않지만은 근심하는 것은 선방의 많은 납자들이 여름 한철에 한사람도 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를 뚫지 못하여 불법이 장차 멸할까 두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법을 관장하는 종사의 마음씀을 보십시오.

  또한 (그분들이) 언제 수입(收入)의 많음과 절의 크고 작음으로 경중(輕重)을 삼으며 쌀, 소금 같은 자질구레한 일로 급함을 삼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이미 출세하여 선지식이란 이름을 짊어졌으니 마땅히 한결같이 본분을 밝히는 일로 방문해 오는 이를 제접하고 창고에 있는 재물과 곡식은 인과를 아는 소임자에게 맡기고 부서를 나누어 그들로 하여금 맡게 하고 때때로 전체적인 것만 살피시고 (소임)스님들을 배치함에 있어 많게 하지 말아 일상의 공양을 항상 뒷사람들로 하여금 남게 하면 자연 힘을 소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납자가 방에 이르면 칼 씀을 반드시 긴밀하게 하고 진흙을 묻히고 물을 적시는 일은 행하지 마십시오.

  저 설봉공(雪峰空)선사를 근래 운거(雲居)의 운문암(雲門庵)에서 서로 만났는데 나는 그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이는 불법에 깊이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본분감추(本分鉗鎚)로 그에게 주었더니 뒷날 스스로 다른 곳에서 타파하여 대법(大法)을 이미 밝혀 지난번에 받아간 감추(鉗鎚)를 일시에 수용해서 바야흐로 내가 불법으로 인정을 받아들이지 아니함을 알았습니다.

  작년에 한 권의 어록을 보내왔으니 정법이 쇠퇴한 위급한 시기에도 임제종지(臨濟宗旨)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제 대중처소에 보내두고 납자들과 더불어 보게 하고 내가 그참에 붓을 들어 그 뒤에 글을 써서 특별히 격려하여 본분납자들로 하여금 장래에 설법하는 법식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처음에 그에게 진흙을 묻히고 물을 적셔 노파선을 설했던들 눈이 열린 후에 반드시 나를 욕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때문에 고인(古人)이 “나는 선사의 도(道)와 덕(德)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다만 선사가 나를 위해 설해주지 않는 것을 중히 여긴다 만약 나를 위해 설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날이 있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곧 이러한 도리입니다.

  조주(趙州)스님께서는 “만약 나로 하여금 너의 근기를 따라 사람을 제접하면 당연히 3승12분교(三乘十二分敎)로 그들을 제접해야 하지만 나의 분상(分上)에서는 본분사로 사람을 제접한다.

  만약 제접할 수 없다면 본래 배우는 자의 근성이 둔할 뿐이지 나의 일에는 상관이 없다”고 하셨으니 거듭 생각해 보십시오.

大慧普覺禪師書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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