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동감(同龕)거사에게 말씀 전합니다


  학사대부(學士大夫)들이 서로 만나 이치와 성품을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본에 가까이 하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지견(知見)을 넓히고 현묘한 도리를 해박하게 섭렵하여 하늘과 인간 사이를 꿰뚫고 3교(三敎)를 회통하여 유교로 통일해 가지고는 그것을 저술하여 후대에까지 명성을 드리우려 합니다. 보건대, 실천을 하면서 절개를 세우며 뒤로 물러나 남에게 귀 기울이며 어진 행업(行業)을 닦기는 하나 좀 얕은 데가 있습니다. 오직 두루두루 섭렵하여 얘기 밑천으로 삼고 남 이기기를 좋아함으로써 동료들을 굴복시켜 아견(我見)을 늘리는데, 모두가 도를 이루기 위한 바른 씨앗은 아닙니다.

  그들을 비록 박맹의 무식꾼들보다는 현명하다고는 하겠으나, 믿고 나아갈 바를 모르고 제멋대로 자기의 짧고 천박한 견문으로 남을 헐뜯는 마음을 내어 인과를 모르고 속세의 흐름 속에 떨어져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청결히 하여 괴로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 물러나 알음알이를 잊고 깨달아 실제의 경지를 밟아 6근ㆍ6진을 꿰뚫고 잔재주를 끊어 옛사람과 짝이 된 자들을 비교해 보면, 유마대사(維摩大士)와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와 같은 부류로서 그들은 도과(道果)를 거뜬히 증득하고 세간ㆍ출세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저 당나라 조정의  배상국(裵相國)ㆍ육긍대부(陸亘大夫)ㆍ진조상서(陳操尙書)ㆍ왕경상시(王敬尙侍)ㆍ우양양(于襄陽)ㆍ이습지(李習之)ㆍ정우(鄭愚)ㆍ위주(韋宙)의 경우는 마음을 다해 몸소 참구하여, 평생이 다하도록 쓰고 누림을 얻었습니다. 우리 종문에서 더욱 환하게 밝히고 출몰자재하게 지극히 심오한 데까지 궁구하였으니, 내한 양대년(內翰楊大年)과 도위 이부마(都尉李駙馬)는 방거사와 함께 나란히 달릴 만하였습니다.

  이는 커다란 역량을 갖추고 벼슬길에 있으면서 관직을 버리지 않고서도 세속의 밖에서 노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조의 본분소식을 제창하여 세상 사람들을 단련하면서, 동사섭(同事攝)을 해 나갔습니다. 가정 생활하는 가운데나 지방에 관직을 맡아 나가는 경우에도 대종사와 함께 안과 밖에서 불법을 보호하였습니다. 이 어찌 옛날에 영산(靈山)에서 수기를 받아 백겁천생토록 연마하겠다는 서원을 내었기에 이와 같이 기연을 드날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세엔 불법이 쇄미해지긴 했습니다만 벼슬하는 사람들 중에 깊이 신봉하는 자들이 극히 많습니다. 거의 옛 가풍이 있다 하겠으니 요컨대 앞의 세 부류와 서로 짝하려 해야 합니다. 만약 이 문제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상상(上上)의 큰 기틀[大機]과 반연을 맺어야지 중하(中下)의 체제와 법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범부를 초월하고 번뇌를 벗어나 완전한 해탈을 얻는 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결같이 오래하면서 어떤 경계나 악연을 만나더라도 그 자리에서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쇠바퀴[鐵輪]를 정수리 위에서 굴린다 해도 정혜(定慧)가 원명하여 끝내 잃지 않는도다”는 것입니다.

  이발습유(李渤拾遺)가 구강(九江) 땅으로 부임해 나와 적안(赤眼) 귀종(歸宗)스님과 만났는데, 한 번의 대면에 투합하여 깨우쳤습니다. 이발이 갑자기 물었습니다.

  “교(敎)에서는 말하기를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 하였는데,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공(公)을 이만권(李萬卷)이라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공의 몸을 살펴보니 다섯 자도 채 못되는데 만 권의 서적을 어느 곳에 두었소?”

  그러자 이발은 곧바로 그 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를 어찌 모양과 망정에 집착하여 알음알이를 지키는 자와 따질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요컨대 손가락을 통해 달을 보고, 그물과 덫을 잊고 물고기와 토끼를 챙기는 근기라야만 방편과 소굴을 지키지 않을 만합니다. 한 번 거량하여 그대로 귀결점을 안 뒤에 민첩하게 빠져나와 종횡무진으로 통달한 경지에 이르면 큰 수용(受用)이 환하게 나타납니다.

  한문공(韓文公)이 태전(太顚)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저 유(愈)는 공적인 사무가 바쁘오니 불법의 핵심에 대해 스님께 한 말씀 청합니다.”

  그러자 태전스님은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으므로 문공은 망연하였습니다. 이때 삼평(三平)스님이 뫼시고 서 있다가 즉시 선상(禪床)을 한 번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시랑(侍郞)이시여, 화상의 도는 먼저 정(定)으로 움직이고 뒤에는 지혜로 뽑습니다”라고 하자 문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선사의 불법은 높고도 준험하십니다. 저는 오히려 시자(侍者)의 가르침 속에서 깨우친 바가 있습니다.”

  영리한 근기는 한 번 튕겨 주면 바로 돌이켰습니다. 그들 스승과 제자를 살펴보았더니, 서로가 방편을 지어 이름붙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자리에서 발휘했던 것입니다.

  영리하고 빼어난 한문공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이른바 도끼를 휘두르는 자도 솜씨가 민첩하고, 도끼를 받는 자도 움쩍하지 않는 자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뒤에 둘이 함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간 것이니, 그렇지 못하면 한 바탕 허물을 이룰 뿐입니다.

  이렇게 보건대 어느 겨를에 매일같이 조사의 방에 들어가 아침마다 묻고 참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사람은 강을 사이에 두고 부채를 흔들면 대뜸 깨쳤던 것입니다. 지금 이처럼 종이와 먹으로 형용하는 것은 알면서도 고의로 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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