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혜공(慧空) 지객(知客)에게 주는 글


  여러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셨던 것과 조사가 서쪽에서 오셨던 그 본뜻을 집어내보면 결코 다른 일이 아니다. 오직 동체대비(同體大悲)와 무연자비(無緣慈悲)로 이 큰 인연을 보여 주시어 지혜로운 상근기에게 격식과 종지를 초월하여 단박에 알도록 했을 뿐이니, 이른바 교(敎) 밖에 따로 행하고 외길로 심인(心印)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만 대중 앞에서 연꽃을 들어보이자 가섭만이 유독 증득하고 자기도 모르는 결에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석존께서 법을 전해져서 달마가 양(梁)나라를 거쳐 위나라에 가 사람을 찾아서 소림사에서 오래 면벽하던 중 신심 깊은 이조(二祖) 한 사람을 얻었는데, 그는 눈에 서서 팔을 끊고 한마디 말끝에 마음을 편안히 하여 드디어는 의발을 전해 받았으니,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느냐. 위로부터 모든 성인 세상에 감응하니, 전하는 사람도 훌륭하고 받는 이의 근기도 강하여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많이 나왔다. 연원(淵源)이 깊으니 그 흐름도 짧지 않아서, 서천의 28대 조사와 동토의 6대 조사 이후로 시대마다 영특 신령한 고덕들이 걸출하게 이어졌다.

  행사(行思) 회양(誨讓) 마조(馬祖) 석두(石頭)스님의 경우는 세상에서 독보적이었다. 덕산은 금강경의 주석서를 태워버렸고, 임제스님은 선판(禪板)을 태운다 하였으며, 약교(藥嶠) 천황(天皇) 백장(百丈) 황벽(黃檗)과 5가(五家)의 종주(宗主)들은 각각 문화와 가풍을 수립했다. 이는 마치 하늘만한 그물을 던지고 만 리 되는 낚시를 드리운 것 같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였다.

  이들에게는 천만 인을 능가하는 기량이 있으니, 드나듬과 펴고 말아 들임, 잡고 놓아줌, 조용(照用)과 권실(權實)이 어찌 한 가지 길, 한 가지 지견만을 고수하여 일정한 틀을 남기고 알음알이를 세워, 죽은 물 속에 빠져 참다운 법이라는 것으로 사람을 얽어맸으랴. 그 때문에 온 천하에 사찰이 즐비하고 수백년이 지나도록 강종(綱宗)이 떨어지지 않았다. 명확하게 계승하여 근원근원 이어졌으니, 단순히 보고 들은 천박하고 고루한 견문으로 걸머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탁월한 식견과 빼어난 자태를 지니고 불조를 뛰어넘는 기량으로 행하여, 천지를 덮어 애초부터 소굴을 벗어나 아득히 수승하고 빼어남을 요한다. 우선 자기의 근본을 밝히고 본분종사에 의지하여, 개 돼지 같은 솜씨로 물고 늘어져야 한다. 통달한 종사는 맞고 거슬리는 경계에서 투철히 벗어나서, 분골쇄신하는 뜻과 지견을 갖추어 큰 것을 도모할지언정 자잘한 것을 도모하지 않고, 원대함을 도모할지언정 눈앞의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지극히 험난한 천신만고의 은산철벽 같은 곳에서 신명을 놓아버리고 저편으로 손을 놓아 이 일대사인연을 알아차려서 망정을 끊고 견해를 여의어 미친 업식(業識)을 쉬고 큰 해탈문을 열며, 자기의 생사대사를 깨달아 처음 발심했던 뜻에 보답해야 한다.

  6근,4대,5온,12처,18계,7대성을 허공에서 헛꽃[空華]이 어지럽게 일어났다 어지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아야 하리라. 오직 불가사의하게 불조가 증득한 확연히 사무치고 신령하게 밝으며, 넓고 텅 비어 고요한 금강의 정체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근본이 깊고 편안함이 지극하니, 밥 먹는 사이에도 한 털, 한 티끌, 한 기틀, 한 구절을 드는 것이 근본 속에서부터 발현하지 않음이 없다. 그렇다고 이를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 말한다면 벌써 어지럽게 이름만 더듬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 심성이니 현묘함이니 이사(理事)를 붙이겠느냐. 여기에 이르러선 활활 타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송이와도 같아서, 선과 도를 들으면 자취를 쓸어버리고 소리를 삼킨다 해도 오히려 극치는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나머지인 빛과 그림자, 모양과 소리, 산하대지, 노주와 등롱,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쇠칼을 쓰고 쇠고랑을 차는 따위야 말해서 무엇하리오. 듣지도 못하였느냐. 덕산은 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방망이로 때렸으며, 임제는 문에 들어가기만하면 대뜸 "할"하고 소리쳤으며, 목주(睦州)는 있는 그대로의 공안[現成公案]을 자세히 살피라고 했던 것들을. 그들은 이미 진흙탕물 속으로 들어가면서까지 노파심이 간절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한결같이 으뜸되는 가르침만을 제창하자면 법당 위에 모름지기 풀이 한 길은 우거졌으리라"고, 그러므로 그 나머지의 방편문은 부득이하여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위로부터 큰 선지식들이 자비를 드리워 쓰신 것으로서, 후세의 본보기로 만들어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침내는 때려 부술 수 없는 팔면으로 영롱한 곳에 도달하게끔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만 이익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이롭게 하면서 다함없는 법등(法燈)을 전하고 불조의 혜명을 이었던 것이다.

  당(唐)나라에서 5계(五季)시대를 지나 국초(宋 초기)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신망을 걸머지고 조사의 지위에 올라 용과 호랑이가 달리듯 남북으로 넘나들며 사람들에게서 못과 쐐기를 뽑아주고 결박을 풀어준 자들이 어찌 한정이 있었으랴. 근세에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홀로 벗어나 본분의 수단을 떨쳐 작가선지식의 용광로와 풀물을 열어준 사람을 찾아보면 참으로 많지가 않다. 이는 스승은 어정거리면 천박 고루하고 제자 또한 뿌리와 줄기가 깊고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쉽게 깨달을 것만 도모하여 아교나 칠처럼 꽉 막혀 조종(祖宗)의 위 없이 오묘한 도와 고원(高遠)한 큰 기틀을 거의 끊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후배들 중에 견줄 수 없이 빼어나 옛 사람과 짝이 될 만한 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 너와 나, 취함과 버림을 돌보지 않고 철석같은 마음으로 포기하지도 변하지도 않을 뜻을 갖추었다. 괴로움을 참고 담박한 음식을 먹으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을 향해 몸소 참구하였다. 그리하여 향기로운 자취를 계승하고 지난 세대의 고상한 가풍을 이어 인간세상의 밝은 촛불이 되고 어두운 거리의 일월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마음속으로 항상 갈망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분심을 내서 발심하려고 도모하였으니,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데 있다.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솜씨를 갖춘 종사를 교해(敎海)에서 선택하여 깨닫기를 도모한다면, 어찌 제방을 초월한 자기 본심에만 보답이 되겠느냐. 또한 불법의 큰 바다에서 한쪽 손을 내미는 것이 되리라. 하물며 나와 남의 구별이 끊기고 사랑과 증오를 떠난 이 문중에서는 다만 올바른 지견을 귀하게 여길 뿐이니, 어찌 누구 집안의 자식인가를 따지겠느냐. 똑같이 조계의 문하이니, 무슨 저쪽 종파니 이쪽 유파니 하는 것이 그 사이에 있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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