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걸상인(傑上人)에게 주는 글


  그대는 행각하고 참문(參問) 청익(請益)하여 이미 선지식에 의지하였고, 대총림(大叢林)에서 청아하고 고상한 대중에 참례한지가 오래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부모의 인연 때문에 꼭 잠깐 되돌아가지만 움직였다 하면 수백 리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러니 모름지기 자기의 역량을 따라 실천할 것을 잊지 말고, 가는 곳마다 티끌이 나지 못하게 해야 하리라. 더구나 이 하나의 일은, 선지식의 주변에 살 때는 있다가 고향에 거처할 때는 문득 없어진다고 하지 말아야 하리라. 이른바 잠시라도 도에 생각이 떠나면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이 도에 있을 때라 해도 그림을 본 뜨는 시늉이나 내서는 안 된다. 비록 평상(平常)이라 해도 단절 없이 빼어나게 정식(情識)을 끊어 함이 없고 하릴없고 무심한 사업을 이루어야 한다. 겉과 속이 툭 트여 경계가 없고 만법과도 서로 짝이 되지 않으며, 모든 성인과도 길을 함께 하지 않아야 한다.

  뿌리를 깊이 박고 줄기를 단단히 하여 다만 한가하게 길러가고 길러오면 철저히 깨닫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범부의 망정을 다하여 자기의 공부를 할 뿐, 외연을 관계하지 말며, 명예와 이익을 쫓아 아견(我見)을 일으켜 승부를 다투지도 말아라.

  그러므로 옛사람은 말하기를, "임운 등등하여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분들은 스스로 남들을 틔워주는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걸선인이 갑자기 찾아와 고향으로 떠나려 하면서 경책을 구하므로, 이 말을 적어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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