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돈수頓修(1) 단박에 닦음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신수 스님은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 대사는 소주성 동쪽 35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과 북이 있어 이로 인하여 남북이 서게 되었다.
  점漸과 돈頓이란 무엇인가? 법은 한 가지이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다. 견해가 더디면 ‘점漸’이라 하고, 견해가 빠르면 ‘돈頓’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 이름한 것이다.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말하되 ‘남능북수南能北秀’라 하니 근본 사유를 알지 못함이니라.

  신수 스님은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형남부는 지금의 호북성 강릉현을 말합니다. 여기에 신수 스님이 살았던 옥천사가 있습니다.

  혜능 대사는 소주성 동쪽 35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조계산은 소주에서 동쪽으로 삼십오 리 떨어진 곳에 있어요.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과 북이 있어 이로 인하여 남북이 서게 되었다.
  법은 하나입니다. 법이 둘이라면 불교가 두 개가 되지요. 사람이 남쪽·북쪽이 있는 것이지 ‘남능북수’라고 해서 법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점漸과 돈頓이란 무엇인가?
법은 한 가지이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다.
  돈오돈수, 돈오점수 법은 하나다. 견해가 빠르고 더딘 것이 있을 뿐 법은 하나라는 말이죠.

  견해가 더디면 ‘점漸’이라 하고, 견해가 빠르면 ‘돈頓’이다.
이것도 사실 손가락에서 얘기한 것이죠. 법에서 보면 이 말도 안 맞아요.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 이름한 것이다.
  견해가 더딘 사람을 ‘점수漸修’라 하고, 견해가 빠른 사람을 ‘돈수頓修’라고 하나 법에는 돈·점이 없습니다.

‘돈·점’도 방편으로 말한 것, 법은 하나다.

  앞에서 불성佛性 즉, 양변을 여읜 자리에는 돈·점이 없어요. 다만 사람이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어서 돈점이 갈립니다. 그렇다면 본래성불 자리에 영리하고 우둔한 것이 있느냐? 없어요.
  부처님 법을 믿는 사람이 상근기이고, 부처님 법을 안 믿는 사람은 하근기예요. 상·하근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요.
  법에도 돈·점이 없고 하나예요. 손가락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영리하고 둔한 것이 있을지라도, 달의 입장에서 보면 영리한 사람이나 둔한 사람이 지닌 자성 자리는 똑같습니다. 하나입니다. 또 빠르고 더딘 것도 없어요. 빠르다·느리다 하는 것은 전부 손가락, 방편에서 하는 말이지, 법에서 보면 돈·점도 없습니다.
  똥과 금덩어리가 하나입니다. 다만 쓰이는 데만 다를 뿐이죠. 쓰임이 다른데 하나라 하는 것은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라고 하는 것이고, 쓰임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근본 자리에서 보면, 돈·점을 나눈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찍이 신수 스님은 사람들이 혜능 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르친다고 말함을 들었다. 신수 스님은 제자 지성을 불러 말하였다.
  “너가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해 조계산에 가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다만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들은 대로 뜻을 기억하고 돌아와 나에게 말하여, 혜능 스님과 나의 견해 중에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알게 하라. 반드시 빨리 돌아와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게 하여라.”
  지성이 기쁜 마음으로 분부를 받들어 보름 만에 조계에 이르러 혜능 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을 듣고 그 말 끝〔言下〕에 크게 깨달아〔大悟〕 바로 본래 마음〔本心〕에 계합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 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다가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바로 본래 마음에 계합하오니,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혜능 대사께서 말하였다. “너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로구나!”
  지성이 말하였다. “말하지 않을 때는 그러하나, 말씀드렸으니 이미 아닙니다.”
  육조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라는 것도 이와 같다.”

  일찍이 신수 스님은 사람들이 혜능 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르친다고 말함을 들었다.
  혜능 스님이 법을 가르치는데 굉장히 빠르고 곧아 바로 확철대오한다는 말을 들었다.

  신수 스님은 제자 지성을 불러 말하였다.
“너가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해 조계산에 가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다만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들은 대로 뜻을 기억하고 돌아와 나에게 말하여, 혜능 스님과 나의 견해 중에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알게 하라. 반드시 빨리 돌아와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게 하여라.”
  혜능 스님의 법이 굉장히 빠르게 깨친다는 말을 듣고 신수 스님이 제자 중에 지성이라는 스님을 불러 조계산에 보내어 혜능 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억해 와서 일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혜능 스님이 법 쓰는 것과 당신이 법 쓰는 것 중에 누가 더 빠른지 그걸 한번 비교해 보겠다고 합니다. 보내면서 늦으면 나를 배신할지도 모르니 빨리 오라고 합니다.

  지성이 기쁜 마음으로 분부를 받들어 보름 만에 조계에 이르러 혜능 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을 듣고 그 말 끝〔言下〕에 크게 깨달아〔大悟〕 바로 본래 마음〔本心〕에 계합하였다.
  이것을 보면 혜능 스님의 법이 바르고 빨랐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신수 스님한테는 여러 해 동안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한 말씀을 듣고는 바로 깨칩니다. 이것을 ‘언하대오言下大悟’라 하여 선문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언하에 깨달아 본래 마음〔本心〕에 계합하였다’라고 할 때 이 본래 마음이 뭘까요? 본래 존재하는 그 존재 원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다. 닦아서 부처가 되는 게 아니고 본래 부처다. 선에서 ‘닦는다’ 할 때는 무언가 나쁜 것을 닦아 부처되는 게 아니라, 본래 부처 자리에 계합하는 거예요. 그걸 닦는다 그래요. 그래서 ‘계합契合’이라는 말도 쓰고, ‘상응相應한다’는 말도 씁니다. 여기에 이 말을 한 것은 육조 스님이 본래 성불을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종은 이 ‘본래 부처’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손가락은 허구이고 사실이 아니고 착각이다. 오직 달만이 현실이고 진리이고 진실이다. 앞에서 손가락 입장에서 닦는 것은 닦는 게 아니라 꿈 속에서 꿈 깨려고 노력하는 것을 비유했지요. 꿈 속에서 꿈을 탁 깨는 그 순간은 ‘몰록’이라는 말을 써요. 몰록 깨달았다. 10년, 20년을 닦아도, 1백 년을 닦아도 꿈 깨는 순간은 몰록이고 찰나간일 뿐이에요.

  그는 일어나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 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다가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바로 본래 마음에 계합하오니,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깨닫지 못했다면 이 말을 안했을 거예요. 깨닫고 보니까 염탐하러 온 것을 숨긴다는 것이 우습지요. 숨기고 말고 할 게 없어요.

  혜능 대사께서 말하였다. “너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로구나!”
  지성이 말하였다. “말하지 않을 때는 그러하나, 말씀드렸으니 이미 아닙니다.”
  육조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라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가 모르니까 ‘번뇌·보리’ 하는 것이고, 깨닫고 보면 보리 아닌 게 없습니다. 실토 안 할 때에는 염탐꾼이다 아니다 하지만, 실토했으니 염탐꾼이 따로 없지요.
  마찬가지로 ‘번뇌·보리’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모르니까 ‘번뇌·보리’를 나눠 놓고 말하지만, 깨닫고 보면 보리 아닌 게 없어요.
  보리菩提는 뭡니까? 부처 자리에서 일으키는 생각이 다 보리입니다. 다 지혜예요. 깨달은 뒤에 생각생각 일으키는 그것이 전부 지혜입니다. 그 자리에는 지혜, 보리가 있고, 거짓과 진리가 있는 그런 게 아니에요. 깨닫고 나면 그 생각생각이 전부 보리이고, 지혜입니다.
  그래서 나옹 스님 말씀처럼 그때부터는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方紫金光” 합니다. 육근에서 자색 광명이 나와요. 물론 자색 광명이 나온다고 무슨 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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