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근기根機(1)

  “선지식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法界)에 들어가고자 하고, 반야삼매般若三昧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행을 닦아라. 단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을 가지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간다.
  이런 사람의 공덕이 무량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설명하지 않겠다.
  이것이 최상승법이니, 큰 지혜와 상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을 내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閻浮提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는 것과 같고, 큰 바다에 비가 내리면 더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다.
  만약, 대승의 사람이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성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어 스스로 지혜로 비추어 보아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대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초목과 유정ㆍ무정을 다 윤택케 하고,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다.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선지식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고, 반야 삼매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행을 닦을 것이니
  ‘반야바라밀행’이란 반야가 양변을 여읜 것이고, 바라밀은 양변을 여읜 자리에서 일상생활하면서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닦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 때, 실체가 없어 무아다, 공이다, 이렇게 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주 반복하면 깊고 깊은 법계에 들어갈 수도 있고, 반야 삼매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봉사를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화두를 하면 훨씬 수행이 잘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설사 견성을 못하더라도 후회 안 해요. “아! 그래도 지금까지 수행한 보람이 있구나!” 그리고 내생來生에 대한 믿음도 훨씬 깊어지고, 또 다음 생에 틀림없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원력도 더 확고해질 것입니다.
  <서장書狀>에 나오는 소동파나 백낙천, 다 이런 분들이에요. 다음 생에서는 말 한 마디에 척척 깨닫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내생까지 얘기할 거 없고, 금생에서도 열심히 해서 깨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선지식도 밖으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무리 밖에서 선지식 찾더라도 자기 마음속에 선지식 못 보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제일주의식의 공부 풍토가
한국불교를 위기로 몰고 있다.


  지금 한국 불교가 극복해 가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반복하지만 마음이 어리석은 상태에서 자꾸 뭘 닦는다는 거예요. 어리석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닦겠어요. 안 닦아집니다. 먼저, 정견을 세워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선방 주변에서 보면 일본이나 외국 가서 공부한 우수한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 이제까지 학문을 했으니까, 실참실수를 해 봐야겠다고 해서 선방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십년을 넘기지 못해요.
  그래서 십년 지나 보니까 그 자리가 그 자리라고 해서 허송세월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 분들은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다가 진척이 없으면 자기 본래 배운 학문 쪽으로 가버리니까 오래 못해요. 그런데 자기가 그런 식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제대로 공부했다면 왜 중간 과정이 없겠어요. 지금 우리 풍토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선방만 그러느냐, 아닙니다. 지금 한국불교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풍토가 바로 안 잡힌다면 한국불교가 제대로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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