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참회懺悔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에게 모양 없는 참회(無相懺悔)를 해서 삼세의 죄장(三世罪障)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가 말하기를,
  “선지식아, 앞 생각(前念)과 뒷 생각(後念)과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어리석음과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惡行)을 단번에 끊어 자기 성품에서 없애면 이것이 바로 참회다.
  앞 생각(前念), 뒷 생각(後念),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아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矯誑心)을 없애 영원히 끊어 버리는 것을 자성참회自性懺悔라 한다.
  앞 생각(前念), 뒷 생각(後念),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질투(疸妬)에 물들지 않아 지난 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라. 자기 마음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다.<이상 세 번 합창>”

“선지식아, 무엇을 참회라 하는가?
  참懺이라 함은 몸이 다하도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고, 회悔는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惡業)을 항상 마음에서 여의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해도 이익이 없느니라. 나의 이 법문 가운데 영원히 끊어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회懺悔라 한다.”

참회란 양변을 여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흔히 “업장業障 녹이려고 기도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단경>을 보면, 업장 녹이는 참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옵니다. 진정한 참회는 바로 양변을 여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참회, 사홍서원, 삼신불 전부 같은 뜻입니다.
  지금 보고 듣고 하는 존재원리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 강의도 부득이 반복합니다. 참회도 양변을 여읜 자리가 진참회眞懺悔다. 그러니까 업장 녹인다는 말은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에게 모양 없는 참회(無相懺悔)를 해서 삼세의 죄장(三世罪障)을 없애게 하리라.”
  여기에 “모양 없다(無相)”는 말이 굉장히 의미가 있잖아요. 흔히 부처님한테 업장기도를 하면서 ‘부처님한테 참회한다’, ‘큰스님한테 참회한다’ 합니다만, 사실은 참회할 것도 없고 참회할 대상도 없어요. “모양 없는 참회”라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대사가 말하기를, “선지식아, 앞 생각(前念)과 뒷 생각(後念)과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어리석음과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惡行)을 단번에 끊어 자기 성품에서 없애면 이것이 바로 참회다.

  이 어리석고 미혹함(愚迷)이 뭐예요? 어리석고 미혹하면 물드는 거예요. 너다-나다에 물들어 걸리고 지배받는 겁니다. 우리는 너다-나다는 그놈한테 지배받아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이리 상처받고 저리 상처받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변에 물들어 악행도 저지릅니다만, 그것을 단번에 끊어 자기 마음속에 선하다-악하다, 있다-없다, 너다-나다 하는 것을 없애면 그것이 참회다. 참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변을 여의라”는 말을 질리도록 합니다만, 그게 저나 어느 개인의 말이 아닙니다. <단경>에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쓰여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계속 하는 겁니다.

  앞 생각(前念), 뒷 생각(後念),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아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矯誑心)을 없애도록 하라. 이를 영원히 끊으면 자성참회自性懺悔가 된다.
  거짓과 속이는 마음(矯誑心)이 나오는 데요. 내가 있으면 많이 속이지요. 안 착한데도 착한 척 하고 ... 또,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속입니까? 남한테 속는 것은 놔두고, 내가 나를 속이는 것도 엄청나게 많아요. 그것은 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없으면 속이고 속고 할 필요가 없지요.

  앞 생각(前念), 뒷 생각(後念),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질투(疸妬)에 물들지 않아 지난 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라. 자기 마음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다. <이상 세 번 합창>”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만 가지 허물이 나옵니다. ‘내가 없다’는 것을 알면 어두운 밤에 전깃불 하나 켜도 밝아지듯, 모든 것이 일시에 없어지는 거예요. 점진적으로 이것 없애고, 저것 남겨놓고, 이것 남겨놓고 저것도 없애고 하는 게 아니고 단번에 전부 없어져요.
  그러니까 ‘나’라는 뿌리를 끊으면 줄기 잎은 일시에 시들어 죽어버리는 것과 같아요.


내가 없는데 ‘있다’고 한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참회하는 것이다.

  “선지식아, 무엇을 참회라 하는가?
참懺이라 함은 몸이 다하도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고, 회悔는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몸이 다하도록 악을 짓지 않는다는 말인데, 일부러 짓지 않는 게 아니고 저절로 짓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안 짓느냐? 바로 양변을 여의면 짓지 않아요. 영원히 안 지어요. 세세생생 짓지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아는 회悔란” 이전의 잘못된 질투하고 시기하고 사람 속인 그걸 아는 게 아니고, 내가 없는데 ‘있다’고 생각했던 잘못을 아는 겁니다. 우리가 질투하고 누구 미워하는 그것은 별거 아니에요. 그까짓 거 천 번, 만 번 한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없는데 ‘있다’고 한 것, 양변을 인정한 이것이 참회입니다.

  "나쁜 죄업(惡業)을 항상 마음에서 여의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해도 이익이 없느니라."
  이 나쁜 죄업이 뭡니까? 마음에서 여의지 않으면, 부처님 앞에서 아무리 입으로 말한들 이익이 없어요. 언행일치가 안 돼요. 그러면 나쁜 죄업을 없애야 하는데, 이 없애는 것은 전깃불 하나 켜면 됩니다. 전깃불 켜면 단번에 다 없어져요.

  "나의 이 법문 가운데 영원히 끊어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회懺悔라 한다."
  진짜 참회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 견성하는 것이 참회예요. 견성하는 게 사홍서원이고, 견성하는 것이 삼신불이 하는 것과 똑같아요. 앞에서 나온 무념, 좌선도 참회하는 것, 견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전부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자성自性 자리, 부처도 세우지 않고 중생도 세우지 않는 그 자리,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그 자리, 그 자리를 깨달으면 그것이 참회이고, 삼신불을 이해하는 것이고, 좌선하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이고, 또 무념을 이해하는 것이고, 전부 다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다 들어 있어요. 팔만 가지 생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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