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천목 중봉본 선사 1) 시중

   형제들, 입만 열면 곧 내가 선화(禪和)라 하나
   혹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이 선인고?" 하면,
   어름 어름 하다가 마침내 입이 흡사 목두대(扁擔) 2) 같이 되고 마니
   이 어찌 딱한 일이 아니며 굴욕이 아니랴!

   버젓이 불조의 밥은 처먹고 본분사는 까맣게 알지 못하면서,
   다투어 말귀나 세속 지식을 가지고 조금도 기탄 없이 큰 소리로 떠들며,
   그러고도 온전히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또 어떤 자는 포단에 앉아 "부모가 낳기 전 면목" 은 구명하려 하지 않고
   부질없이 품팔이 방아 3) 나 찧으면서 복이 되기를 바라며 업장을 참회한다 하니
   참으로 도와는 10만 8천리로구나!

   혹 마음을 한 곳으로 굳히고 생각을 거두어서,
   사(事)는 잡아 공(空)으로 돌리며, 생각이 겨우 일기만 하면 곧 늘려 막는다면,
   이러한 견해는 공에 떨어진 외도며 흔히 돌아오지 않은 죽은 사람이다.

   혹 어떤 자는, 망녕되이 능히 성내고 기뻐하며 보고 듣는 물건을 가져
   명백히 알아 마친 것으로 삼고 일생 공부 다 해마쳤다 하니,
   내 잠깐 그대에게 묻겠다.

   "문득 죽음이 닥쳐와 불구덩이 속의 한줌 재가 되면
   저 능히 성내고 기뻐하고 보고 듣는 물건이 어느 곳에 있느냐!"

   이와 같이 공부를 짓는 것을 "약홍 은선(藥汞銀禪)" 4) 이라 하는 것이니
   이 은(銀)은 원래 참 은이 아니므로
   한 번 불에 달이면 곧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혹 묻기를 "너 평시에 어떻게 공부를 짓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어떤 스님이 이르시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를 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며

   또는 "나로 하여금 다만 이러 이러하게 알라 하시오나
   금일에야 비로소 이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았아오니,
   청하옵건데 화상께서는 화두를 일러 주옵소서" 한다.
   
   내 말하기를 "고인의 공안에 어찌 잘못이 있으랴.
   너의 눈이 본래 바르건만 스승으로 인하여 그릇되었구나!" 하니
   거듭 화두 이르기를 청하여 마지 않기에 내 이르기를

   "너 '개는 불성이 없다' 는 화두를 참구하라.
   만약 홀연히 칠통을 타파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산승 손에 방망이를 맞으라"
   하였느니라. 

《평》

   천여(天如) 이하는 모두 원말(元末)과 명초(明初)의 존숙(尊宿)인데 저 걸봉(傑峰), 고졸(古拙), 초석(楚石)같은 분은 즉 원명 양대를 지낸 분이다. 초석은 묘희(妙喜-大慧)의 5세손인데 그 견지는 해가 빛나고 달이 밝은 것과 같으며, 그 기변은 우뢰와 같이 맹렬하고 바람과 같이 빨라서 근원을 바로 끊고 5) 곁가지를 쳐버리는 것이 참으로 묘희노인에 부족함이 없느니라.
   
   천여는 금일에 이르도록 그 아름다움을 짝할 사람이 없으니 그의 말은 모두가 향상(向上)의 극칙사만을 들어 말하였으므로 초학인으로 하여금 공부짓기를 가르친것은 극히 드물어 여기에는 그 하나 둘을 얻어 위와 같이 적는다.

▒ 용어정리 ▒

[1] 초석범기(楚石梵琦) :
   (1296-1270) 남악하 20세, 법을 경산(徑山) 원수단(元수端)선사에 이었다. 명주(明州) 상산(象山)에서 출생. 속성은 주(朱)씨. 그의 모 장씨가 꿈에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회임하였고, 낳아서 아직 감보 속에 있을 때 어떤 스님이 와서 아기의 이마를 만지면서 "이것이 불일(佛日)이니 후일에 능히 어둠을 파할 것이라" 하였다 하여, 어려서 이름은 담요(曇耀)라고 하였다.
   7세에 독서하니 한번 읽고 대의를 통했고, 9세에 출가하고 능엄경을 보다가 깨친 바가 있었다. 그 후 원수단 선사에 참예하여 계합하지 못하고 하루는 성루의 북소리를 듣고 홀연 땀을 비오듯 흘리더니, 마침내 깨치고 말하기를
   "이제야 경산의 콧뿌리를 손에 잡았다" 하고, 게송을 짓기를

"활활 타는 화로 속에 한 점 눈을 버리고 나니,
이것이 황하(黃河)의 유월 얼음이라" 하였다.
   다시 경산으로 단화상을 찾으니 단은 한 번 보고 "서래밀의(西來密意)를 네가 알았구나!" 하고 인가하였다. 그후 출세하여 대보사(大寶寺)를 창건하였는데, 거기에는 천불성상과 25 장(丈)의 7층부도, 그리고 만불각(萬佛閣)등 그 웅려하기가 천궁을 옮겨논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때에 나라(元)에서 불일보조혜변(佛日普照慧辯) 선사의 호를 드렸으니, 앞서의 예언이 적중하였다.

   임종계에

"진성이 뚜렷이 밝아 본래로 생멸 없으니,
목마(木馬)가 밤에 울고, 서쪽에서 해가 뜬다
(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方日出)."

   하고 곁에 있던 몽당(夢堂)화상에게
   "나는 이제 가렵니다."
   "가면 어디로 가시오?"
   "서방(西方)으로 가지."
   "아! 서방에만 불이 있고 동방에는 불이 없소!" 하니,
   사 큰 목소리로 한 "할" 하고 그만 갔다.

   명태조 3년이다. 향수75세. 저서로 육회어록(育會語錄), 정토시(淨土詩), 상생게(上生偈), 북유집(北遊集), 봉산집(鳳山集), 서재집(西齋集), 화천태삼성집(和天台三聖集) 등을 남겼다.

[2] 목두대 :
   목두대는 배가 부르고 양쪽 끝이 가느르니, 이것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하는 모양에 비한 것이다.

[3] 품팔이 방아 :
   진실한 뜻은 알지 못하고 "예불" 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꾸벅 꾸벅 방아를 찧으나 그것이 자기의 방아가 아니고 품삯을 받고 찧는 남의 방아라는 것이다. 오대(五臺) 무상(無相)선사 시중에
   "너희들은 흙덩이 부처(泥佛)만 보면, 흡사 방아를 찧는 것과 같이 하고 일찌기 그 뜻은 없구나!" 하고 있다.

[4] 약홍은선 :
   공부는 모름지기 실다워야 하니 반드시 명안종사의 감변(堪辯)을 거쳐야 한다. 고래로 스승없이 깨치기는 만중희유라고 하고 있다. 여기 약홍은선이란 실지가 없는 거짓 공부란 말인데, 수은을 홍(汞)이라 한다. 이것은 금이나 은을 제련할 때 불에 달리면 금이나 은은 달리면 달릴수록 더욱 분명하여지나 수은이면 단번에 흘러 버리는 것이니, 이것을 명안종사의 감변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 실없는 공부에 비한 것이다.

[5] 근원을 끊고 :
   증도가에 "근원을 바로 끊음을 불이 인가하시는 바요, 가지를 더듬고 잎을 따는 것은 나로선 못하는 일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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