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주 향산 무문총선사 1) 보설
산승이 처음 독옹(獨翁) 화상을 뵈었더니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님" 2) 을 참구하라고 이르셨는데, 후에 운봉(雲峰) 월산(月山)등 6인의 도반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고 서로 탁마하다가, 회서(淮西)의 교 무능(敎無能) 화상을 뵈우니 "무" 자를 들라 하시므로, 장로(長瀘)에 이르러 도반과 서로 짝을 맺고 연마하였다.
후에 회상(淮上)의 경형(敬兄)을 만났더니 묻기를
"너 지난 6,7년 동안에 견지가 어떠하냐?" 하시는데, 내가 대답하기를
"매일 단지 이 심중에 한물건도 없습니다." 하니, 경이
"너 그 한 소견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시는데, 내 생각에 알듯말듯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니, 경이 나의 공부가 성발이 없음을 알고
"너 정중(靜中)공부는 그만하나 동중(動中)공부가 아직 멀었구나!" 하신다.
내 이 말을 듣고 놀래어
"필경 이 대사를 밝히려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말씀이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천로자(川老子) 3) 가 이르기를
'적실한 뜻 4) 을 알고져 하거든 북두(北斗)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마치고 곧 가버리셨는데, 이 말을 듣고는 곧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고서, 5,7일간을 "無" 자는 들지 아니하고 혹 넘어지면서라도 다만
"적실한 뜻을 알고져 할진대 북두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 를 참구하였다.
하루는 마침 정두료(淨頭寮) 5) 에서 대중과 같이 한 나무에 걸터 앉아 있는데, 오직 의정이 풀리지 아니하더니 한참 동안 있다가 갑자기 심중이 탕연히 비고 가볍고 맑아지며 모든 정상(情想)이 찢어져 없어지는 것이 흡사 가죽을 벗기는 거와 같았다. 그때는 눈 앞의 사람도 일체 보이지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 반시 가량 있다가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더라.
이윽고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를 깨치고, 경형을 찾아서 문답하고 송을 짓는데 6)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그러나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있어서는 아직 헌출하지를 못하여 후에 향암산(香庵山)에 들어가 여름을 지내는데 모기가 심하여 두손을 가만히 둘 수 없기에 생각하기를
"고인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었는데 나는 어찌 모기를 겁내는가!"
하고,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어금니를 꽉 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만 "無" 자를 들고 참고 또 참았더니 불각 중에 심신이 고요하여지며 마치 한채 집 사방벽이 툭! 무너진 듯하고 몸이 허공과 같아서 한 물건도 생각에 걸림이 없더라.
진시(辰時)에 앉아 미시(未時)에 정(定)에서 나오니 이에 불법이 사람을 속임이 아니고 자기의 공부가 미치지 못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견해는 명백하나, 아직 미세하고 은밀한 망상이 다하지 아니하므로, 광주산(光州山)에 들어가 6년 동안 정을 익히고, 다시 육안산 (陸安山)에 머물기를 6년, 광주산에 또다시 3년을 머물고 바야흐로 빼어남을 얻은 것이다.
《평》
고인은 이와같이 부지런히 힘들었으며 이와 같이 오래오래 닦고서야 바야흐로 상응 7) 함을 얻었는데, 지금 사람은 총명과 생각으로 헤아려 찰나(刹那)에 알아듣고 그리고는 오히려 스스로 돈오(頓悟) 8) 에 부치려 하니, 어찌 그릇치지 아니하랴!
▒ 용어정리 ▒
[1] 무문총(無聞聰) :
남악하 23세, 법을 철산경(鐵山境)선사에 이었다. 사의 선자송을 소개한다.
"잡아 들으니 심히 분명하고 묘하구나,
청풍은 솔솔 불어 가슴 속에 사무치네.
이 사이 소식이 별것이 없으니,
스스로 온통 환희가 넘친다."
[2] 마음도 아니고(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
한 중이 남전(南泉) 스님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모든 성인이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 설하지 않은 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떠한 법이 아직 설하지 않은 법입니까?"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
[3] 천노자 :
야부실제도천(治父實際道川) 선사다. 남악하 16세. 법을 정인성(淨因成)선사에 이었다. 곤산(崑山)에서 출생. 속성은 적(狄)씨. 처음 현(縣)의 궁급(弓級)을 하고 있었을 때 동제겸(東齊謙)이 도속을 위한 법회에 참예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좌선을 힘쓰다가 하루는 직무상의 과오로 곤장을 맞다가 홀연 대오하였다. 드디어 직무를 사퇴하고 겸스님에 의지하여 출가하였는데, 겸은 사의 이름을 고치면서 말하기를
"이제부터 네 이름 적삼(狄三)을 도천(道川)으로 고친다.
천(川)은 즉 삼(三)이라 네가 능히 굳게 척량골을 세워,
이 일을 판단하면 도가 내의 물과 같이 불어 흐를 것이고,
그러지 않고 마음을 놓고 누어 지내면 도로 옛 삼(三)이 된다." 하였다.
사 명심하고 더욱 정신에 힘쓰고 뒤에 천봉(天封)에 이르러 만암(만庵) 선사를 만나 서로 기봉이 삼투하여 인가를 받았고, 다시 돌아와 동재(東齋)에서 교화하고, 곧 이어 회서(淮西)에 가서 개당(開堂)하였다. 지금 제방에 크게 성행하고 있는 천로금강경(川老 金剛經)-금강경야부송)은 사가 동재에 있을 때 학인에게 가리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4] 적실한 뜻 :
금강경야부송의 한 구절이다.
"촉천의 고운 비단, 꽃 수(繡) 놓아 더욱 곱네,
적실한 뜻 알고져 할진댄,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蜀川十樣錦 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南看" 하는 것이다.
[5] 정두료(淨頭寮) :
총림의 변소 소제하는 소임이 있는 곳.
[6] 송을 짓다 :
경(敬)이 부채를 들어 보이면서 "자! 일러라. 빨리 일러라" 하니 송을 짓기를,
"아! 뚜렷함이여. 뉘라 이를 알려는고,
직하에 시방을 끊고, 찬 빛 사무쳐야지
圓圓一片 要見人人 坐斷十方 寒光수電" 하였다.
[7] 상응(相應) :
"어떠한 것이 일념상응입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남양충(南陽忠)국사는
"생각(憶)도 지혜(智)도 모두 잊으면 즉시 상응이라" 하고 있다.
[8] 돈오(頓悟) :
공부를 하여 깨치는 데도 당인의 근기를 따라 심천이 있으니, 차츰차츰 차서를 밟아 닦아가서 대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대번에 크게 깨치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점수(漸修) 후자를 돈오(頓悟)라고 들한다.
대개 이치로 말하면 깨치면 곧 원만자족한 본래의 자기를 아는 것이니 다시 닦아 증할 법도 털어 없앨 습기도 없는 것이다. 만약 오후에 다시 증할 법이 있거나 털어 없앨 습기가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깨침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니, 모름지기 용진하여 대철 대오를 기약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대개 말하기를 돈오면 곧 불이라 견해는 명백하나 이치 그대로 사사여일(事事如一)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니, 현실에 처해서 자재하게 되려면 다시 더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치인즉 몰록 깨닫는지라 깨달음을 따라 다 안다 하거니와,
사(事)는 몰록 제해지는 것이 아니니 차제를 인연하여 없어진다." 하고,
"얼음은 못(池)이 온전히 물인줄은 아나 햇빛을 빌어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불인 것을 깨쳤더라도 법력을 가자하여 닦아야 한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닦는 것을 오후진수(悟後進修)또는 목우행(牧牛行- 소를 먹인다)이라 하는데 돈오점수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