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철산경선사 1) 보설

   산승이 13세에 불법 있음을 알고, 18세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석상(石霜)에 갔는데 상암주(詳庵主)가 항상 코 끝의 흰 것 2) 을 관하라 하기에, 이 법을 익혔더니 얼마 아니하여 청정한 경계를 얻었었다.
   
   그후 한 사람이 설암(雪巖)화상 회상에서 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설암 화상의 좌선잠(坐禪箴)을 베끼어 두고 보니 나의 공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알고 드디어 설암화상에게 참예하여 가르침을 따라 공부하였는데 오직 "無" 자를 참구하였다.
   
   4일째 되는 밤에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나니 십분 상쾌하기에 이어 선실에 돌아와 사람들과 말도 끊고 오로지 좌선만 힘썼다. 후에 묘고봉(妙高峰) 화상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12시 중에 끊일 사이를 두지 말지니
   사경(四更)에 일어나거든 곧 화두를 들어 눈앞에 분명하게 잡아 두라.
   혹 졸음이 오거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되,
   땅으로 내려올 때도 화두를 들고 걸어갈 때도 화두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도 발우를 들 때도 수저를 놓을 때도
   또한 대중일에 참예할 때도 항상 화두를 여의지 말며
   밤이고 낮이고 이와 같이 지어가면 자연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아무도 발명하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기에, 이어 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지어가니 과연 타성일편이 되었다.
   3월 20일, 암화상 상당에 이르시기를

   "형제들아, 포단 위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는구나!
   모름지기 땅으로 내려와 한 바퀴 거닐고 냉수로 관수하고
   두 눈을 씻고 다시 포단 위에 앉아 척량골을 바로 세우고
   만길 되는 절벽 위에 앉은 듯이 생각하고 다만 화두만 들어라.
   이와 같이 공을 들이면 결정코 7일이면 깨치리라.
   이것은 바로 산승이 40년 전에 이미 시험한 방법이다."

   하셨는데,내 그때 그 말씀대로 지으니 곧 공부가 심상치 않음을 알겠더라.
   제2일에는 두 눈을 감고저 하여도 감아지지 않았으며, 제3일에는 몸이 마치 허공을 가는 듯 하였고, 제4일째는 일찌기 세간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고, 그날밤 난간에 의지하여 잠시 서 있으니 마치 잠든 듯이 아주 아는 것이 없으매 화두를 점검하니 또한 분명 한지라, 몸을 돌려 포단에 앉으니 문득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흡사 두골(頭骨)을 쪼개는 것과 같으며, 또 한 만길 되는 샘 밑에서 치켜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 듯도 하여 그때의 환희를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암화상에게 이 일을 사뢰니 "아직 멀었다. 더 지어 가라" 하셨는데, 내가 법어 3) 를 청하니 법어 끝에 이르시기를
   "불조의 향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하셨다. 이 법어를 받아가지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찌하여 한 방망이가 아직도 모자란다 하실까?" 하기도 하고 또한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여도 또한 의심이 있는 듯하여 마침내 결단을 짓지 못하고 매일 포단 위에 주저앉아 좌선하기를 반년이 되더니, 하루는 두통이 나서 약을 달이다가 각적비(覺赤鼻) 4) 를 만났더니
   "나타태자(那咤太子) 5) 가 뼈를 발라서 아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린" 말을 꺼냈는데, 전 날에 오지객(悟知客)이 이 말을 물을 때에 대답하지 못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몽산(蒙山) 화상을 뵈오니 물으시기를
   "참선은 어느 곳에 이르러서 공(功)을 마치는 곳이냐?" 하시는데, 마침내 말문이 막히니 그때에 화상은 나에게 다시 정력(定力)공부를 지어 망상 습기를 씻어 없애라고 하시고 매양 입실할 때마다 다만 "아직 멀었다." 고만 하셨다.
   
   하루는 해거름에서 5경이 다할 때까지 정력으로 밀어대니 곧 지극히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정에서 나와 화상에게 이 경계를 말하니 화상 물으시기를,
   "어떠한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하시는데, 내가 대답하려 하자 갑자기 문을 닫아 버리시니 이로부터 공부가 날로 묘처(妙處)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대개 너무 일찌기 설암화상 회하를 떠난 까닭에 세밑공부를 짓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다행히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다. 원래 공부는 긴절(緊切)하게 지으며 시시로 깨침이 있고 거름마다 진취가 있는 것이라, 하루는 벽에 붙여 놓은 삼조(三祖) 신심명(信心銘)을 보다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을 것이요. 비춤에 따라가면 종(宗)을 잊는다."
   
   하였음을 보고 다시 한층 껍질(欠)을 벗어났었다.

   화상 말씀이
   "이 일은 흡사 구슬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고 밝으면 밝을 수록 더욱 맑아지나니
   한 껍질 벗기고 또 벗기는 것이 저 몇생 공부하느니보다 낫느니라."
   하시고, 다만 번번히
   "아직 흠이 있다" 고만 하시었다.
   
   하루는 정중에게 홀연 "흠(欠)" 자를 깨치니 신심이 활연하여 골수에 사무쳐, 마치 적설이 순시에 녹아 없어짐과 같았으니, 준일(俊逸)을 참을 수 없어 땅에 뛰어 내려와 화상의 멱살을 잡고,

   "내게 무엇이 모자라오!"
   하니 화상이 뺨을 세번 치시는데, 내가 삼매(三昧)하니 화상 말씀이
   "철산아! 이 소식이 몇 년만이냐 이제야 마쳤구나!" 하셨다.

   잠시라도 화두를 잊으면 죽은 사람과 같은 것이니 온갖 경계가 핍박하여 오더라도 다만 화두를 가져 이에 저당하며, 시시로 화두를 점검하여 동중(動中)이나 정중에 득력(得力)과 부득력을 살펴라.
   
   정중에 있을 때 화두를 망각하지 말아야 하니,
   화두를 망각하면 곧 사정(邪定)이 되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문자 상에서 알아 얻어려고 하지 말며,
   사소한 견처를 가지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을 마라.
   다만 어리석은 듯 숙맥인 듯이 하여 불법(佛法)도 세법(世法)도 통털어
   한 뭉치를 만들면 평상의 행동거지가 다못 심상할 뿐
   오직 옛 행리처만을 고칠 뿐이니라.

   고인도 이르시기를

   "대도는 본래로 말에 속한 것이 아니니
   현묘(玄妙)를 말하련 즉 천지로 현격하리,
   반드시 능소(能所) 6) 를 뛰어나야사
   배고프면 밥 먹고 곧 하면 쉬리." 하였던 것이다. 

▒ 용어정리 ▒

[1] 철산경(鐵山璟) :
   남악하 22세. 법을 몽산이(蒙山異)선사에 이었다.

[2] 코 끝의 흰 것 :
   관법의 하나인데, 생각을 지어 마음을 어느 한 곳에 모아서 마음이 흩어지거나 혼침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의 경계를 지키고 닦아가는 공부 법인데 이 관법은 옛부터 여러 가지가 있다.
   세존 당시의 성문 제자들은 대개 이런 법을 공부하였다. 능엄경에는 <손다 라난타>가 "내가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따라 도에 들어와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매를 닦는데 항상 마음이 흩어지고 흔들리므로 무루(無漏)를 얻기를 구하였더니, 세존께서는 나와 <구제라>에게 코 끝의 흰 것을 관하도록 하셨다." 하고 있음을 본다.

[3] 법어 : 여기의 법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허공을 한 손 아래 가루를 만들으니
무쇠나무 꽃은 피어 구슬가지에 흩어지네
불조의 항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虛空一수粉졸時 花開鐵樹散璟枝
紹降佛祖向上事 腦後以前欠一槌

[4] 각적비. 오지객 :
   둘 다 사람 이름인데, 절에서는 흔히 이름 윗자를 부르지 않고 아래 자에다 무슨 칭호를 붙여서 부른다. 적비는 코가 남달리 붉어 얻은 이름인 듯, 지객은 소임명.

[5] 나타태자 :
   나타태자는 뼈를 발라서 어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리고 나서, 다시 신변을 이르켜 연화좌 위에 본신을 나타내어 부모를 위하여 설법하였다.

[6] 능소(能所) :
   주(主)와 빈(貧) 또는 주관과 객관과 같은 말로 표시되는 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 같은 대대(待對)가 있게 되면 절대인 참도리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능소를 뛰어넘는 것이 공부의 중요한 마루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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