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천목 고봉묘선사 1) 시중

   이 일은 오직 당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하기만 하면 곧 진의(眞疑)가 날 것이니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며 쫓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여
   항상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분명히 편전하게 되리니
   이때가 공부에는 득력하는 시절이라.

   이러한 때에 정념을 확고히 잡고, 부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중에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부를 잊지 아니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을 내어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 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어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 2) 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저 경계를 여겨 주거나(認正) 착심(著心)을 내면,
   곧 저의 올가미에 얽힘이 되어서,
   저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으로 마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사(魔事)를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 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 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선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에게 참예하니,
   
   "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 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화상을 뵈오니, "無" 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한 이르시기를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는 매일 올라와 한마디 일러라" 하시더니, 그후 차서 있음을 보시고는 짓는 곳은 묻지 아니하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느냐?" 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쫓아내셨다.
   
   후에 경산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밤 꿈 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실에서 보았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이 돈발하여 동서로 남북으로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6일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풍경(諷經)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 3) 을 보니, 끝 두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6천, 온갖 조화 부린 것이, 원래가 단지 바로 이놈이니라."
   
   하였음을 보고 홀연 일전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 을 타파하고, 즉시 혼담이 날아가 버린 듯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백20근 짐을 벗어버린 것에 비하랴! 그때는 정히 24세요, 3년한이 다 차던 해였다.

   그후 화상께서 물으시기를,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다시 물으시기를,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을 때, 너의 주인공 4) 이 어느 곳에 있느냐?" 하시는데, 이에는 가이 대답할 말도 없고 내어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하시기를
   "너 이제부터는 불도 법도 배울 것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던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일각(一覺)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 하라 하시었다.

   그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세코 이 도리 5) 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 하고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서 깨어 정히 이 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동숙하던 도우가 잠결에 목침을 밀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렸다가 풀려 나온 듯하고 불조의 심난한 공안과 고금의 차별 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 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평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 생각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하였느니라. 

《평》

   앞에 보이신 공부를 지어가는 대문이 지극히 친절하고 요긴하니, 공부인은 마땅히 깊이 명심해 두라. 또 사의 경우를 말씀하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라" 한 이것은 발명 이후의 일이니 그릇 알지 않도록 하라.

▒ 용어정리 ▒

[1] 고봉원묘(高峰原妙) :
   (1238-1295) 남악하 22세. 설암흠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서(徐)씨. 소주(蘇州) 오강현(吳江縣)에서 출생. 용공(用功) 득법 경위는 본문에 상세하거니와, 그후(1279)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峯)에 들어가서 저 유명한 사관(死關)을 짓고 들어 앉았다. 사는 이곳에서 16년 동안을 문턱을 넘지않고 마침내 이곳에서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학도를 가르치기 빈 날이 없었으며, 승속간에 계를 받은 사람이 기만명이 넘었다. 원나라 원종(元宗) 원년, 대중에게 설법하고 그 자리에서 시적하였다. 향수 57 세. 지금 제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선요(禪要)가 바로 사의 어록이다.

[2] 선악경계 :
   공부 중에 나타나는 온갖 선악경계가 공부인을 망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을 경계하신 불조의 말씀은 실로 간곡하다. 본래 한 물건 없는 이 가운데 무슨 경계나 형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견 망각이다. 대개 경계가 벌어지는 그 원인은 공부가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정밀하지 못한데 있으니, 터럭끝 만큼이라도 밖으로 구하는 생각이 있거나(馳求心) 의정이 불분명(혼침,산란,망념)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성성히 들면 있던 경계도 즉시 사라지는데 무슨 경계가 있을리 없다.
   혹 생각이 바깥경계로 흩어지고 잡념이 있거든 곧 화두를 잡아 긴절(緊切)히 들라. 이 화두는 불꽃과도 같아서 일체망념 경계나 혼침산란의 불나비가 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벌어지거든 환관(幻觀)으로 대치하고, 그래도 경계가 멸하지 않거든 이것은 선근으로 인한 좋은 경계이니 걱정하지 마라" 하는 것을 보나 공부인은 어떠한 경계이든 ㅡ 혼침, 산란 등 일체병통과 선악경계 중에 오직 화두로 당적함이 요긴하다. 공부를 하고저 하거든 반드시 경계를 대치할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이 서 있어야 한다.

[3] 진찬(眞讚) :
   덕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지은 글인데, 여기 오조진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을 가져 상 취하니 모두가 환몽 되고
진을 가져 진 구하니 더욱 더 멀어지네
공안이 현전하니 무슨 일이 안될손가
백년이라 삼만육천 온갖 조화 부린 것이
원래가 다못 바로 이놈 일러라

以相取相 都成幻夢
以眞求眞 轉見不親
見成公案 事無不辨
百年三萬六千
日反履元來是這漢

[4] 주인공(主人公) :
   주인공이란 자신과 만유의 근원적 한물건을 의미하는 것인데,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본질 이전의 진심(眞心)을 가리킨 말이다. 종문에서는 이밖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 혹 자기(自己), 무저발(無底鉢), 몰현금(沒絃琴), 이우(泥牛), 목마(木馬), 심인 (心印), 심월(心月), 심주(心珠)등 가지가지로 부르기도 한다.
   종문에서는 필경 이 주인공을 바로 아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주인공 다운 지혜와 덕성과 역량을 자재 구사하여 주인공의 국토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구경으로 삼는 것이다.
   대주(臺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스님은 단구(丹丘)의 서암에 있을 때 반석 위에 나와서 종일토록 우두커니 앉아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네!" 하고 대답하고 "정신차려라. 너 뒤에 남에게 속지마라!" 하였다.

[5] 이 도리 한 소식 :
   이 말은 일착자(一著子)를 옮긴 말인데, 일착자는 바둑 둘 때의 "한수" 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산원(浮山遠)선사가 마침 문충공(文忠公)이 손과 바둑두는 데에 이르렀다. 사가 곁에 가니 공이 곧 바둑을 거두고 사에게 바둑을 인하여 설법하여 줄 것을 청하니, 사 곧 북을 치게 하고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만약 이 일을 논할진댄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상사하라.
   어찌 한 까닭이랴.
   적수와 지음(知音)이 서로 기틀을 당하여 사양치 않으니...(中略)...
   일러라 일러!
   흑백(黑白)이 나뉘기 전에 한 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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