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원주 설암흠선사 1) 보설
때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돌리면 곧 내생인데,
어찌하여 신력이 강건한 동안에 철저히 깨치지 못하며
명백하게 밝혀내지 않느냐!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이 명산대택(名山大澤) 신룡세계(神龍世界) 조사법굴(祖師法窟)에
승당이 명정(明淨)하고 죽반이 정결하며 탕화(湯火)가 온편하니...
만약 이곳에서도 철저히 타파하지 못하고 명백히 밝혀 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희들의 자포자기라,
스스로 퇴타를 달게 여겨 우치한 자가 되는 것 뿐이다.
만약 아직도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널리 선지식을 찾아 묻지 않느냐!
대중은 대개 오참(五參) 2) 마다 곡록상(曲菉床) 위의 노장이
가지가지로 간곡히 일름을 만날 터인데
어찌하여 귀뿌리에 깊이 간직하여 두고 반복하여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 하고 생각하지 않느냐!
산승이 5세에 출가하여 상인(上人) 3) 시하에 있을 때, 하루는 화상이 손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문득 이 일 있음을 믿게 되어 곧 좌선을 시작하였다. 16세에 중이 되고 18세에 행각하여, 쌍림원(雙林遠)화상 회하에 있으면서 백사를 제쳐 놓고 정진하는데 온종일 뜰 밖을 나서지 않았으며 설사 중료(衆寮)에 들어가 후가(後架) 4) 에 이르더라도 차수하고 좌우도 돌보지 아니하였으며 눈앞에 보이는 바가 3척에 지나지 않았었다.
처음에 "무" 자를 간(看)하는데, 문득 한생각 일어나는 곳을 뒤쳐 살펴보니 저 한생각은 즉시 얼음과 같이 냉냉하며 밝고 고요하여 전혀 동요가 없었으니 이때는 하루를 지내기가 눈 깜짝할 사이 같았으며 종일토록 종이나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냈었다.
19세에 영은(靈隱)에서 지내는데 처주(處州)화상의 하서에 이르시기를,
"흠선(欽禪)아, 너의 공부는 죽은 불이라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느니라.
동정이상(動靜異相)으로 항상 두쪼각을 내는구나!
참선은 모름지기 의정을 내어야 하니
적은 의정에 적은 깨침이 있고
큰 의정에 큰 깨침이 있는 것이니라"
하셨기에 화상의 말씀을 듣고 곧 화두를 간시궐(乾屎獗) 5) 로 바꾸고 한결같이 이리도 의심하고 저리도 의심하여 이리도 들어보고 저리도 들어보았으나 도리어 혼산에 시달려서 잠시도 공부가 순일하지 못하므로 자리를 정자(淨慈)로 옮겨 지냈는데, 거기서는 7인의 도반과 짝을 맺고 좌선하는데 와구(臥具)는 아주 치워놓고 아예 눕지를 않았다.
그때에 따로 수상좌(修上佐)가 있었는데, 매일 포단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철장대(鐵杖子)와 같고, 걸어다닐 때도 두눈을 크게 뜨고 두팔을 축 늘어 트려서 역시 그 모양이 철장대 같으며, 친근하여 이야기를 하고저 하여도 할 수 없더라.
두해 동안을 눕지 않고 지냈더니, 피곤하고 지쳐서 드디어 한 번 누음에 마침내 내쳐 모두를 다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 달이 지난 후 종전을 정돈하고 다시 마음을 거두니 비로소 정신이 새로웠으니, 원래 이 일을 발명하는데는 잠도 아니 잘 수는 없더라. 그래서 밤중에 이르러 한숨 깊이 자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지내는 중 하루는 수상좌를 만나 친근할 수 있었기에 묻기를,
"거년에는 상좌와 말하고저 하여도 항상 나를 피하니 웬일이었습니까?" 하니
"진정한 공부인은 손톱 깎을 겨를도 없다는 것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이야기 하고 있으랴?" 한다. 내가 다시 묻기를
"내 지금도 혼산(昏散)을 쳐 없애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네가 아직도 정신이 맹렬하지 못한 때문이다. 모름지기 높이 포단을 돋구고 척량골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힘을 다합쳐 온 몸뚱이 채로 높이 한 개의 화두를 만들면, 다시 어드메에 혼산을 찾아볼 수 있으랴!" 한다.
그래서 수상좌가 이른대로 지으니 과연 불각중에 신심을 모두 잊고 청정하기 3주야- 그동안 잠시간도 눈을 부치지 않았는데, 제3일째 되는 오후 삼문 6) 아래에서 화두인 체로 가다가 문득 수상좌를 만났다. 수가 묻기를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냐?"
"도를 판단하오."
"너는 무엇을 가지고 도라 하는 거냐?" 하는데,
내 마침내 대답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하여 곧 선실에 돌아가 좌선하고저 하는데 또 수좌를 만났다. 말하기를
"너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고만 하라."
이 한마디를 듣고 곧 자리에 돌아와 겨우 포단에 앉았는데 홀연 눈앞이 활짝 열리니 마치 땅이 툭! 꺼진 것과 같은데, 이 경지는 남에게 들어 보일 수도 없고 세간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도 없었으니, 곧 단(單) 7) 에서 내려와 수상좌를 찾았더니, 수 내말을 듣고 "좋다 좋다" 하고 손을 잡고 문 밖에 있는 버드나무가 심긴 뚝 위를 한바퀴 돌며 천지간을 우러러보니, 삼라만상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귀에 들리는 것이며 기왕에 싫어하고 버리던 것이며 무명 번뇌 등이 온통 원래 자기의 묘하고 밝은 참성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계가 반달이 넘도록 동하는 상이 없었는데 아까울새라! 이 때에 명안(明眼) 종사(宗師)를 만나지 못하여 애석하게도 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견처(見處)를 벗지 못하면 정지견을 장애한다고 하는 것이니, 매양 잠들 때는 두 조각이 되었고 공안에 의로(義路)가 있는 것은 곧 알 수 있으나 의로가 끊어져서 은산철벽(銀山鐵壁) 8) 과 같은 것은 아주 알 수 없었다.
비록 무준(無準)선사 9) 회하에서 다년 입실 10) 청법하였으나, 한마디도 이 심중의 의심을 건드리고 집어내는 말씀이 없었고, 경교나 어록을 찾아도 또한 이 병을 풀 한마디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여 가슴 속에 뭉텅이를 넣어둔 채 10년이 지났는데,
천목(天目)에서 지낼 때 하루는 법당에 올라 가다가 눈을 들어 한 큰 잣나무를 쳐다보자 번득 성발(省發)하니 기왕에 얻었던 경계도 가슴 속에 걸렸던 뭉텅이도 산산이 흩어져서 마치 어두운 방에 있다가 햇빛으로 나온것만 같았다.
이로부터 생(生)도 의심하지 않으며 사(死)도 의심하지 않으며, 불도 의심하지 않으며 조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에 경산(徑山) 노인의 입직처를 보니 족히 30방을 주기 알맞더라.
▒ 용어정리 ▒
[1] 설암법흠(雪巖法欽) :
남악하 21세. 경산(徑山) 사범무준(師範無準) 선사의 법을 이었다.
[2] 오참(五參) :
옛 총림에서는 초5일, 10일, 25일의 설법을 5참이라 했다.
[3] 상인(上人) :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밖으로 수승한 행을 겸하여 사람의 위에 가기 때문에 상인이라 하는데, 대덕 대화상의 존칭으로 쓴다.
[4] 후가(後架) :
총림에서 선당(禪堂) 뒤에 있는 대중이 세수하는 곳을 후가라고 하는데 동사(東司-변소)에도 있다.
[5] 간시궐(乾屎獗) :
"마른 똥막대기" 라는 말인데 조사공안의 하나다.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묻기를
"삼신(三身) 중 어떤 몸이 법을 설합니까?" 하니,
"요(尿)" 라 하였다. 또 묻기를
"어떤 것이 석가신(釋伽身)입니까?" 하니,
"마른 똥막대기다" 하였다.
[6] 삼문(三門) :
절에 들어가는데는 세 문을 지나간다. 이것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을 의미하는 것이니 공문(空門), 무상문(無上門),무작문(無作門)을 상징한다. 본래 절은 계를 가지고 도를 닦아 열반에 이르기를 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또한 대웅세존 부처님을 모신 대궁전이기도 하므로 삼해탈문을 문으로 삼는다.
[7] 단(單) : 선실의 각자의 자리.
[8] 은산철벽 :
공부의 한 경계인데, 의단이 치성하여 온통 의정뿐이어서 의정이 극(克)하여 마침내 다시 더 생각을 어찌할 수 없는 ㅡ 마치 길을 가다가 코끝과 등 뒤에 하늘에 치닿은 듯이 철벽을 당한 것과 같은 경지를 말하는데, 이 경지는 무슨 말로 형용하는 것이 모두가 거짓이니 친히 맛보아야 한다.
백운단(白雲端)선사 시중에 이르기를,
"고인은 일언반구를 받아 듣고 혹 알아듣지 못할 때는 철벽(鐵壁)에 맛닿은 것과 같았다. 하루 아침 홀연히 이를 뚫고 나면 비로소 자기가 즉시 철벽임을 아는 것이다. 자! 일러라 이제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 하시고, 이어 말씀하되
"철벽 철벽" 하였다.
[9] 무준(無準) :
경산(徑山) 무준사범(無準師範). 바로 설암흠선사의 법사다. 와룡조선(臥龍祖先)선사의 법을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독서하는데, 눈이 한번 지나가면 다 외웠다고 하는데, 얼마 후에 성도(成都) 정법사(正法寺) 익요(益堯) 스님에게 참선을 배웠다.
스님이 묻기를
"선이 무엇이며 앉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답 못하고 주야로 체구하여 한 번은 변소에서 똥누면서 화두를 들어 마침내 깨쳤다.
그 영은(靈隱)으로 파암(破庵)스님을 찾아갔는데 한 납자가 파암에게 묻기를
"잔나비가 마구 붙잡으려고 허대니 어떡합니까?" 하니, 파암이
"붙잡아서 무엇하느냐! 바람이 물 위에 불면 자연히 무늬(紋)가 일어나느니라" 하였는데,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언하에 대오하였다.
뒤에 경산에 있으면서 절 40리 밖 길가에 큰 집을 지어 만년정속이라 하고, 방을 백개나 갖춰 놓고 오고가는 운수(雲水)를 쉬게 하였다.
말년에 대중을 모아 놓고
"나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대중들과 이말 저말 할 수 없게되었다. 이제 내가 특히 힘을 내어 여기 나온 것은, 이제까지 말하지 못한 것을 남김없이 다 털어놓고저 하는 것이다."
하고는, 몸을 일으켜 옷을 활활 털더니
"이것이 얼마나 되느냐?"
하고 방장에 돌아와서 얼마 후에 시적하였다.
남송의 영종(寧宗)과 이종(理宗)의 두터운 귀의를 받았는데 사호는 불감(佛鑑)선사다.
[10] 입실(入室) :
방장(方丈) 화상 앞에 나아가 문답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가(師家-스승)는 학자를 시험하고 다뤄보아 아직 공부가 미진한 것을 채찍하고, 허황하여 실이 없는 것은 부수고, 치우친 것은 바로 잡는다. 이 입실 감변(勘辯)이야말로 종사를 만들어 내는 풀무요 대장간이니 고래로 종사의 묘하고 치밀한 방망이질 밑에서 공부인의 푸른 눈알은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