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황룡 사심신 선사 1) 소참 2)
제상좌들이여,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불법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이몸을 금생에 제도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대중들이여, 참선을 하고저 하거든 모름지기 모든 것을 놓아 버려라. 3)
무엇을 놓아 버릴고 하면 이 사대오온 4) 의 심신을 놓아 버리며,
무량겁으로 익혀온 허다한 업식을 놓아 버리라는 것이니,
그리하여 자기의 발밑 5) 을 향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일고?" 하고 추궁하고 추궁하면
홀연 마음 빛이 활짝 밝아 시방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가이 마음에 맞고 손에도 어울려
능히 대지(大地)를 변하여 황금을 만들고
큰 내를 저어서 소락(酉+禾酪)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니,
이 어찌 평생이 유쾌하고 시원하지 않으랴.
부디 책자상으로 글귀를 더듬어 선을 찾고 도를 구하는 것을 삼가라.
선은 결코 책자상에 있는 것이 아니니,
설사 일대장교(一大藏敎)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다 외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한가로운 말뿐이라 죽음에 임하여는 아무런 응처도 없는 것이다.
《평》
이러한 말을 듣고 교법을 훼방하지 마라.
이것은 말이나 문자에만 국집하고 실지 수행을 힘쓰지 않는 것을 경계한 것이요,
글 한 자도 모르는 자를 위하여 붉은 깃대 6) 를 세운 것은 아니다.
▒ 용어정리 ▒
[1] 황룡 사심오신(黃龍死心悟新) :
(1044-1115) 남악하 4세, 황룡조심(黃龍祖心)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인종때 소주(韶州) 곡강(曲江)에서 났다. 속성은 왕씨.
28세에 출가하여 제방을 행각하다가 황룡보각(黃龍寶覺) 선사에게 갔더니 사의 변론이 장한 것을 보고 "이 재주대로 둔다면 마치 말로 음식을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배가 부르겠느냐?" 하였는데, 사가 과연 공부에 진취가 없으므로 하루는 보각스님에게 나아가서 "오신은 이제 활도 부러지고 화살도 다 했습니다. 원컨데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안락처를 가르쳐 주십시요" 하였다.
보각은 "먼지 하나가 하늘을 덮고 띠끌 하나가 땅을 덮는다. 안락처는 상좌의 그 허다한 골동 살림살이를 가장 꺼리는 것이니, 당장 무량겁래의 온갖 마음을 죽여 없애버려라. 그러면 가히 안락처를 얻을 것이다." 하였다.
이후 사의 공부가 한층 더 간절하여 주야로 정진하였는데 하루는 선실에서 좌선 중에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의 지팡이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신 벗는 것도 잊고 방장실에 뛰어들어가 보각에게 자랑하기를 "천하 사람들은 모두가 배워 얻었지만 이 오신은 깨쳐 얻었습니다." 하니 보각은 "부처를 고르는데 장원으로 뽑히니 어찌 무슨 말이 당하랴!" 고 칭찬하였다. 이후로 자호를 사심수(死心수-마음이 죽은 사람)라 하고 방에 패 붙이기를 사심실(死心室)이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말후구(末後句)입니까?" 물으니, 게송으로 답하기를
"말후일구는 마음길 끊어야지, 육근문 공했으니 만법이 생멸 없네,
근원을 사무쳤거니 해탈 구해 무엇하리,
평생을 욕질하기 즐겨하니 이것이 단지 길이 쾌락함인저.
末後一句子 直須心路絶 六根門旣空 萬法無生滅
於此微其源 不須求解脫 生平愛罵人 只爲長快活" 하였다.
송 휘종(徽宗) 정화(政和) 5년 평상시대로 병 없이 앉아서 입적, 향수 72세.
[2] 소참(小參) :
총림에서 새벽상당을 조참(早參)이라하고, 저녁 해거름의 염송을 만참(晩參)이라하고, 그밖의 설법을 소참이라 한다.
[3] 놓아 버려라 :
방하착(放下着). 이 "놓아 버려라."는 말은 종문 중에서 많이 쓰인다. 마음에 있는 소득심(所得心) 번뇌망상 일체를 쉬라는 의미를 가진 것인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번은 흑씨범지(黑氏梵志)가 신력으로 좋은 오동나무 꽃을 나무채 뽑아서 좌우 손에 한 그루씩 들고 와서 세존께 공양하니,
세존이 "선인아, 놓아라." 하시었다.
범지는 왼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다시 "놓아라." 하시니,
이번에는 바른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또 "놓아라." 하시니,
범지가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내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사온데 다시 무엇을 놓아라 하시나이까?"
"선인아, 내 너에게 그 꽃을 놓아라 함이 아니니라. 너 마땅히 밖으로 육진(六塵)과 안으로 육근(六根)과 중간의 육식(六識)을 일시에 놓아버려 다시 더 가이 버릴 것이 없게 되면, 이곳이 곧 네가 생사에서 벗어나는 곳이니라." 하셨는데, 범지는 언하에 대오하였다.
[4] 사대오온(四大五溫), 사대환신(四大幻身) :
사대는 이 몸과 자연계의 기본 구성요소 4종이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오온은 오음(五陰)이라고도 하니 다섯가지의 모아 쌓인 것이라는 뜻으로 색, 수, 상, 행, 식(色.受.想.行.識)이다.
색은 물질이니 우리의 육신과 환경의 전체를 말함이요, 수란 우리의 환경을 받는 감각이요, 상은 접촉할 대상을 분별한 생각이니 곧 표상(表象)이다. 행은 대상에서 얻은 감각에서 좋으니, 나쁘니, 기쁘거나, 성내거나 하는 등 단순한 감각에서 취사분별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니, 모든 정식(情識)작용을 의미하고 특히 의지나 의욕도 이 속에 든다. 식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음의 주체니, 순수관념(純粹觀念)이다. 이것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사대오온이 이 육체와 정신과 세계의 전체다.
그러나 이들 사대오온 이라는 것은 중생의 망견으로 인하여 실다운 것으로 착각할 뿐이지 실상인즉 인연따라 일어나는 환(幻)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 몸을 4대환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이 몸도 세계도 생각도 중생도 모두가 환일 바엔 그 무엇이 환이 아닌 것일까?
[5] 발밑(脚下) :
온건착실한 입각처를 말한다.
[6] 붉은 깃대 :
특별히 표한 것이라는 뜻.
한나라 한신(韓信)이 조(趙)를 칠 때 날쌘 기병 2천명을 뽑아서 각각 붉은 깃대를 갖게 하고 이르기를, "내가 싸우다가 달아나면 적은 성을 비우고 나를 쫓을 것이니 그때 성을 들이쳐 조나라 기를 뽑고 이 붉은 기를 쫓아라" 하였다. 붉은 깃대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