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주심 선사 1) 시중
너희가 다만 이 도리를 궁구하되 혹 20년 30년을 참구하여도
만약 계합하지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끊어 가라.
노승은 40년을 잡된 마음을 쓰지 않았느니라.
다만 하루 두 때의 죽반(粥飯)시는 제하니, 이때는 잡용심을 하는 때니라.
▒ 용어정리 ▒
[1] 조주(趙州) :
(778-897) 남악하 4세.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다. 법명은 종심(從心), 속성은 확씨, 산동성조주부에서 출생. 어려서 출가하여 계는 받지 않고 있다가 한번은 남전스님에게 갔는데 남전스님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네가 스승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네! 스님이 계십니다" 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남전에게 절하면서,
"엄동설한에 화상 존체 만복하십니까?" 하고 문안하니, 남전이 기특히 여겨 입실을 허락하였다.
하루는 묻기를 "어떠한 것이 도입니까?" 하니,
남전스님이 "평상심이 도니라"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 하니,
"도라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이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기(無記)니 참 도는 허공과도 같아서 탕연히 비고 통한 것이다." 하는 데서 곧 깨쳤다.
숭악(嵩嶽) 유리단(瑠璃壇)에가서 계를 받고 이내 남전 회상에 돌아와 지내다가 그후 제방을 유력하고 80세에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이곳에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의 이름이 천하에 떨쳤는데 지금의 조주 무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者), 청주포삼(靑州布衫)등 허다한 공안이 법기에서 나왔다.
한번은 설법하기를,
"손에 잡은 밝은 구슬과 같아야 호인이 비치고,
어떤 사람이 오면 장육금신을 가져 한 풀잎을 삼아 쓰기도 한다.
불(佛)은 번뇌요 번뇌는 곧 불이라." 하니,
한 중이 나와 말하였다.
"불은, 이것이 누구의 번뇌입니까?"
"일체인의 번뇌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벗어나서 무엇하려느냐!" 하고 마당을 쓸었다.
한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 안에 안 계시더냐?"
"법당의 부처님은 흙으로 뭉쳐 깎아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 안에 계시지!"
"학인은 미혹해서 모르겠사오니 알도록 가르쳐 주십시요."
"네가 아침 죽을 먹었느냐?"
"네! 먹었습니다."
"가서 바루를 씻어라!"
이에 그중이 홀연히 깨쳤다.
한 중이 와서 문안하니 스님이 물었다.
"여기 온 적이 있던가?"
"아니, 처음입니다."
"차 한잔 들게!"
또 한 중이 왔다.
"여기 와 본적이 있던가?"
"네! 벌써부터 자주 옵니다."
"차 한잔 들게!"
원주가 와서 묻기를,
"화상께서는 어째서 처음 온 사람에게도 일향차 한잔 들라 하시고 자주 오는 사람에게도 차 한잔 들라 하십니까?" 하니,
"원주!"하고 불렀다.
원주가 "네!"하니,
"차 한잔 들게!"하였다.
이것이 조주 끽다거(喫茶去)기연이다.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4년, 1백20세로 입적, 시호는 진제대사(眞際大師)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