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었다.
   "어떤 경계를 대할 때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같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말하지 않으니, 공(空)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색(色)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시비와 염정도 사람을 얽어맬 마음이 없다. 단지 사람 스스로가 허망한 마을을 내어 얽매이고 집착하여 몇 가지로 이해와 지견을 지어내고 몇 가지로 애욕과 두려움을 낼 뿐이다. 모든 법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한 생각 망상이 전도되어 모습을 가짐으로써 있게 되었음을 깨달아 마음과 경계가 본래 서로 닿을 수 없음을 알면 그 자리 그대로가 해탈이고 낱낱이 모든 법이 어디나 그대로 적멸도량이다.

   또 본래 성품은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어서 본래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아니며, 공도 유도 선도 악도 아니다. 단 이것이 모든 염법(染法)에 어울려주면 그것을 인간·천상·이승(二乘)의 경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더럽거나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속박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유위 무위·속박 해탈 등 모든 헤아림이 없어 생사를 일으켜도 그 마음이 자재하면 마침내 허망한 허깨비인 5온(蘊) 18계(界) 등 티끌이나 나고 죽는 온갖 문(12人)과 합하지 않고 아득히 벗어나 기대지 않는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머뭄에 걸림없어 문 열리듯 생사에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괴로움과 즐거움, 마음에 맞고 안맞는 갖가지 일이 닥쳐오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명리나 의식을 염두에 둔다거나 공덕과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된다. 세간 어느 법에도 걸림 없으며 가까이 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똑같이 여기며, 거친 옷으로 추위를 막고 맛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나 귀머거리·벙어리같이 되어야 약간이라도 비슷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 속으로 널리 지해(知解)를 배우고 복과 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모두 생사이다. 이치로는 이익이 된다 해도 도리어 지해 경계의 바람에 휘말려 생사 바닷 속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이치는 구할 것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그렇다고 구함 없는 데에 집착하면 다시 구하는 것과 같아지며, 무위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같아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 아닌 데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법 아님이 아닌 데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얻으신 이 법은 실재(實在)도 아니며 헛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일생동안 목석 같은 마음으로 5음 18계와 갖가지 처(人), 5욕 8풍에 휘말리거나 빠져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생사의 인(因)이 끊긴다. 자유롭게 가고 머물며 모든 유위인과(有爲因果)나 유루(有漏)에 매이지 않는다. 뒷날 다시 스스로 얽매이지 않는 이것으로 인(因)을 삼고 동사섭(同事攝)으로 이익케 하며,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대하며,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줄 것이니, 그것을 '병에 따라 약을 쓴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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