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 仰山錄
徑山沙門 語風圓信 無地地主人 郭凝之 編輯
1. 앙산(仰山:803∼887)스님의 휘(諱)는 혜적(慧寂)이며 소주(韶州) 회화(懷化) 땅 섭씨(葉氏)의 아들로, 아홉 살에 광주(廣州) 화안사(和安寺)의 통(通)스님에게 출가하셨다.
열 네 살에 부모가 집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따르지 않으셨다. 이윽고 손가락 두 개를 자르고 부모 앞에 꿇어앉아 정법(正法)을 닦아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하니 부모가 허락하셨다.
다시 통(通)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아직 구족계(具足戒)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행각을 떠나셨다. 처음에 탐원(耽源)스님을 배알하여 오묘한 이치를 알았고, 그 후 위산 영우(山靈祐:751∼853)스님을 찾아뵙고서 깨쳤다.
탐원스님께서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혜충(慧忠)스님께서 당시에 육대조사(六代祖師)의 원상(圓相) 97개를 모두 전해받아다가 나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뒤 30년이 되면 남방에서 한 사미(沙邇)가 찾아와 이 가르침을 크게 일으키리니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이제 이 원상(圓相)을 그대에게 줄 터이니 잘 받들어 지니거라.”
하고는 그 그림을 가져다 건네주셨는데 스님께서는 한 번 보고는 바로 불태워 버리셨다.
탐원스님께서 하루는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준 여러 원상들은 깊숙히 잘 간직해야 하네.”
“그때 보고 나서 바로 태워 버렸습니다.”
“우리 불법은 혜충스님과 여러 조사, 그리고 큰 성인만을 제외하고는 알 사람이 없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 원상을 불살랐는가?”
“저는 한 번 보고 그 뜻을 다 알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저 활용할 뿐 그림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네만, 그대라면 모르겠지만 뒷사람은 믿음이 미치지 못할걸세.”
“스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다시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개를 그려서 바쳤는데 조금도 잘못된 곳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탐원스님은 “과연 그렇구나” 하셨다.
탐원스님께서 상당(上堂)하시자 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와 이 ○ 모양을 만들어 손으로 들어 받치고는 차수(叉手)를 하고 섰다. 탐원스님께서 양손을 맞대서 주먹을 쥐어 보이자 스님은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여인처럼 절을 하였다. 탐원스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시자 스님은 바로 절을 올렸다.
앙산스님이 누더기를 빨고 있는데 탐원스님께서 물으셨다.
“이럴 때는 어찌하는가?”
“이럴 때를 어디서 보셨습니까?”
뒷날 위산스님을 찾아뵈었더니 스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어디 있느냐?”
스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 서자 위산스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니 스님이 여쭈었다.
“어디가 참된 부처가 계시는 곳입니까?”
“생각이 있는 동시에 없기도 한 묘한 경계로 끝없이 타오르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고, 생각이 다하여서 본래자리로 되돌아가면 성품[性]과 형상[相]이 항상하고 사(事)와 이(理)가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스님은 이 말씀 끝에 단박 깨달으셨다.
이로부터 위산스님을 시봉하였는데 다해서 15년을 모셨다.
2. 스님이 마당을 쓰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티끌은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허공은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티끌을 쓸어버릴 수 없다는 것인가?”
스님이 땅을 한 번 쓸자 위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그러면 무엇이 허공이 스스로 생기지 않는 도리인가?”
스님이 자신의 몸을 가리키고, 다시 위산스님을 가리키자 위산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티끌도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허공도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이 두 길을 떠나면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스님은 또 한 번 땅을 쓸고 다시 자신을 가리키고 위산스님을 가리켰다.
3. 위산스님께서 하루는 밭을 가리키시며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이 언덕밭은 저 쪽은 높고 이 쪽은 낮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이 쪽이 높고, 저 쪽이 낮은걸요.”
“믿지 못하겠거든 중간에 서서 양쪽을 살펴보아라.”
“중간에 설 필요도 없으며, 또한 양쪽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정 그렇다면 물을 놓고 수평을 잡아라. 물로는 사물의 수평을 잴 수 있다.”
“물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는 그저 높은 곳은 높은대로, 낮은 곳은 낮은대로 땅을 고르시면 됩니다.”
이쯤되자 위산스님은 더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4. 시주(施主)가 위산스님께 비단을 보내오자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시주에게서 이러한 공양을 받으시고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위산스님께서 선상(禪滅)을 두드리시자 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대중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쓰십니까?”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즉, 위산스님께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속가의 제자가 비단 세 필을 가져왔기에 나는 종(鍾)을 주고 비단과 바꾸었다. 때문에 세상 사람과 함께 복을 받는다.”
“속가의 제자는 비단이 있어 종과 바꾸었습니다만, 스님께서는 무슨 물건으로 그에게 보답하시렵니까?”
그러자 위산스님은 주장자로 선상을 세 번 치시더니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으로 보답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무엇에 쓰려는지요?”
위산스님께서 또 선상을 세 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것'을 무엇에 쓸까 의심하느냐?”
“저는 `이것'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인공[大家]이 아닙니까?”
“그대는 이미 주인공[大家]을 알아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나에게 물건으로 보답하기를 바라느냐?”
“그것은 다만, 스님께서 주인공[大家]을 파악했으면서도 종으로 답례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人事]을 하시는 것이 이상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대는 보지도 못하였느냐, 달마스님이 인도 땅에서 이곳으로 오셨을 적에도 역시 주인공[大家]을 가지고 와서 자질구레한 일[人事]을 하셨던 것을. 그대들은 모두 달마스님의 징표[信物:방편]를 받은 자들이니라.”
5. 스님은 위산에 있으면서 직세(直歲:물건을 짓거나 수리할 때 공사를 책임지는 직책) 소임을 보았다. 일을 하고 돌아오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밭에서 옵니다.”
“밭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던가?”
스님이 삽을 꽂고 차수을 하고 서 있으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남산에서 띠풀을 베는 사람이 여러 명 있더구나.”
그러자 스님은 삽을 뽑아 들고 가버렸다.
* * *
현사 사비(玄沙師備:835∼908)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보았다면 즉시 삽을 걷어차서 넘어뜨렸으리라.”
어떤 스님이 경청 도부(鏡淸道:864∼937)스님에게 물었다.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
“사면을 내리는 천자의 칙명을 개가 물고 가니 제후가 길을 피한다.”
“그러면 현사스님이 `걷어차서 넘어뜨리겠다'라고 한 뜻은 무엇인가요?”
“배[船]를 어찌할 수 없어 표주박을 부숴버렸다.”
“그러면 또 `남산에서 띠풀을 벤다'한 뜻은 무엇인지요?”
“이정(李紛:571∼649, 唐初의 공신)이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陳)을 쳤느니라.”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말하였다.
“말해 보아라. 경청스님의 이러한 설명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설두 중현(雪重顯:980∼1052)스님은 말하였다.
“제방에선 모두 `삽을 꽂은 화두가 특별하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사악하다. 내가 보기에는, 앙산스님이 위산스님의 한 마디 질문에 노끈으로 자신을 결박하여 거의 죽게 된 꼴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몽둥이 한 대를 맞았을 뿐이다. 여러분은 따로 아는 것이 있느냐?”
6. 스님이 위산에서 소를 칠 때, 천태(天泰)스님을 넘어뜨리자 그 스님이 물었다.
“한 털끝에 나타난 사자는 묻지 않겠다. 백억 털끝에 백억의 사자가 나타나면 이럴 때는 어떠한가?”
그 말이 끝나자 스님은 바로 소를 타고 되돌아와 위산스님을 모시고 서서, 앞의 말을 모두 말씀드렸다. 이때에 천태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스님은 말하였다.
“바로 저 스님입니다.”
위산스님께서 그 스님에게 물으셨다.
“백억의 털끝에서 백억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그대가 말하였소?”
천태스님은 말하였다.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앙산)이 천태스님에게 말하였다.
“나타날 때는 털 앞으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털 뒤로 나타나는가?”
“나타날 때는 앞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위산스님께서 크게 웃으시자,
스님(앙산)은 “사자의 허리가 꺾어졌습니다.” 하고는 내려가 버렸다.
7. 스님이 위산스님을 따라 산을 유람하다가 위산스님께서 둥근 반석 위에 앉게 되어 그 옆에서 모시고 서 있는데, 갑자기 까마귀가 홍시 한 개를 물어다가 앞에 떨어뜨렸다. 위산스님께서 홍시를 주워 스님에게 주자 얼른 받아서는 깨끗이 씻어 다시 건네드리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어디서 났느냐?”
“스님의 도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너에게도 몫이 없을 수 없지.”
위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반쪽을 쪼개어 스님에게 주셨다.
* * *
현사스님은 말하였다.
“못난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한 방 얻어맞고 지금까지 일어나질 못하는구나.”
8.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갑자기 너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꾸하겠느냐?”
“동사(東寺)의 사숙(師叔)이 계시면 저는 적막하기까지는 않을 겁니다.”
“그대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죄를 한 번 용서해 준다.”
“사느냐 죽느냐가 다만 이 한마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대의 견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만,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다.”
“누군데요?”
위산스님께서는 노주(露柱:법당 앞 큰 돌기둥)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것이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자 위산스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느냐?”
“흰 쥐는 변해도 은대(銀臺)는 변치 않습니다.”
9. 스님이 위산스님께 여쭈었다.
“눈앞에 나타나는 대용(大用)을 스님께서는 분명히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은 법좌에서 내려오시더니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스님이 뒤를 따라 들어가자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조금 전에 내게 무어라 물었지?”
스님이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답한 말을 기억하고 있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말해 보아라."
그러자 스님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는데,
위산스님이 “틀렸어” 하자 머리를 홱 돌리고는 말하였다.
“지한(香嚴智閑:?∼898) 사제가 오면, 제가 대꾸를 못했다고 전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10. 스님이 위산의 앞 언덕받이에서 소를 치고 있던 중에 한 스님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오래지 않아 바로 내려오자 그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위산스님의 회상에 머물지 않는가?”
“인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연인지 나에게 말해 보아라.”
“위산스님께서는 저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진(歸眞:진리의 자리로 돌아간다)이라고 대답했더니, 돌아가 진리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꾸를 못했습니다.”
“스님, 다시 돌아가서 큰스님에게 `제가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라고 하라. 큰스님께서 어떻게 말하겠느냐라고 물으시거든 다만 `눈 속·귀 속·콧구멍 속입니다' 라고 말하라.”
그 스님이 돌아가서 일러준대로 하였더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헛된 거짓말 하는 놈아, 그 대답은 5백명의 선지식(善知識)을 거느리는 정안종사의 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