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스님께서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방장실 앞을 지나가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백장선사(先師)께서 보셨더라면 그대는 모름지기 뼈아픈 방망이를 맞아야 했으리라."
"지금은 어떻습니까?"
"입 닥쳐라!"
"이 은혜는 보답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대가 재주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오늘은 백장스승을 직접 뵙고 왔습니다."
"어디에서 보았느냐?"
"보았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진짜 작가(作家:선지식)로다."
22.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지금의 일은 우선 그만두고,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차수를 하고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것은 지금의 일이네. 옛날의 일은 어떤가?"
앙산스님이 뒤로 물러가 서자 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이겼느냐 내가 너를 이겼느냐?"
그러자 앙산스님은 절을 올렸다.
* 장산 근(蔣山懃)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옛날과 지금을 잘 드러내긴 하였으나 호떡의 꿀은 위산이 빨아먹었는데야 어찌하랴. 모래를 짜서 기름을 찾았다 하리라.
그렇기는 하나 말해 보라. 앙산이 차수했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만약 이것을 알 수 있다면 행각하는 일을 끝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라면 내가 여러분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나를 저버린 것이다."
23.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스님을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손을 들며 말씀하셨다.
"요즈음 이같은 자는 적고, 이같지 않은 자는 많구나."
향엄스님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 서자 앙산스님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서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인연은 30년 뒤에 가서 황금을 땅에 던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앙산스님이 "역시 스님께서 법을 펴셔야 하겠습니다" 하였고, 향엄스님은 "지금도 적지는 않군요" 하였는데, 스님은 "입 닥쳐라!" 하셨다.
* 남당 원정(南堂元靜:1065∼1135)스님은 말하였다.
코끼리왕은 기지개를 켜고
사자는 포효하네
땅에 웅크리고 허공에 도사려
별을 옮겨 북두와 바꾸었네
앉아서 혀끝을 끊으니
개같은 입 닥쳐라
한번 땅에 던져 황금소리 내니
구비구비한 황하는 바닥까지 맑았어라.
24. 스님께서 앉아 있는데 앙산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이 양손을 맞대어 들어보이자 앙산스님은 여인처럼 절을 하니,
스님께서는
"그렇네. 그래" 하셨다.
25. 스님께서 방장실 안에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들어오니 이렇게 물으셨다.
"혜적아, 요즈음 종문(宗門)의 법통계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의심합니다."
"그대는 어떤가?"
"저는 그저 피곤하면 잠을 자고, 기운 있으면 좌선을 합니다.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정도 되기가 이렵지."
"제 생각은 그럴 뿐이니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그대 혼자로는 말할 수 없지."
"예로부터 모든 성인이 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대의 이같은 대꾸를 비웃을 것이다."
"비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와 동참하겠습니다."
"생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선상(禪滅)을 한 바퀴 돌자, 스님은 "고금을 깨 부숴버렸군" 하셨다.
* 장산 근스님은 말하였다.
"거문고를 튕겨 이별을 노래하고, 낙엽이 지니 가을인 줄 알겠더라. 예나 지금이나 척척 들어맞는다.
조도와 현로(鳥道 玄路:새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과 아주 그윽한 거리. 깨달은 이치를 비유)는 이들 스승과 제자가 직접 다녔다 할 만하겠지만 만약 가시덤불 속에 있다면 아직 깨닫지 못했다 하리라.
그 증거로써 앙산이 선상을 한 바퀴 돌자 위산이 `고금을 깨 부숴버렸군'이라 말한 것을 들 수 있다. 눈 밝은 납승(衲僧)이었다면 조금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26.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현재·미래에 부처마다 같은 길이며 사람마다 모두 해탈의 길을 얻었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무엇이 사람마다 얻은 해탈의 길입니까?" 하니, 스님께서 향엄스님을 되돌아보며 "혜적이 지금 바로 묻고 있는데, 왜 그것을 말해주지 않느냐?" 하셨다.
향엄스님이 "과거 · 현재 · 미래를 말하라면 저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니, 스님이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려는가?" 하고 묻자, 향엄스님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스님은 다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한이 이처럼 대꾸했는데, 혜적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앙산스님도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가버리자, 스님은 `껄껄' 하고 크게 웃으시며 "물과 우유가 섞이 듯 하는군" 하셨다.
27. 스님께서 하루는 한 발로 서 계시면서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이것에 실려 있지만 이것을 철저히 알지 못하겠다."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당시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도 이와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한마디 더 해 보거라."
"추울 때에 그것에 버선을 신긴다고 말해도 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실려 있지 않았는데 그대는 벌써 철저히 알아버렸네."
"그렇다면 어찌 다시 대답하라 하십니까?"
"말해 보게나."
"정말 그렇습니다."
"옳지, 옳지."
28.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을 그대는 알겠는가?"
"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생 · 주 · 이 · 멸이 전혀 없습니다."
"그대는 어찌 법을 버릴 수 있는가?"
"스님께서 조금 전에 무엇을 질문하셨습니까?"
"생 · 주 · 이 · 멸이라고 말했지."
"도리어 스님께서 법을 버리셨군요."
29.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오묘하고 청정하고 맑은 마음[妙淨明心]을 그대는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입니다."
"그대는 겨우 그것만 알았느냐?"
"스님께서는 조금 전에 무얼 물으셨습니까?"
"오묘하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에 대해 물었네."
"겨우 스님께서는 그것만 알았습니까?"
"그렇지. 그래."
30. 석상(石霜)스님의 회상에 있던 두 선객이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여기에는 선(禪)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하였다.
나중에 앙산스님이 대중 운력으로 땔감을 운반하다가 두 선객이 쉬는 것을 보고서 장작개비 하나를 들고는 물었다.
"자, 말할 수 있겠소?"
둘 다 대꾸가 없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선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리고는 스님께 돌아와서 말씀드렸다.
"오늘 두 선객이 저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했길래 그대에게 간파당하였는가?"
앙산스님이 앞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혜적은 다시 나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군."
*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말하였다.
"어디가 위산이 앙산을 간파해 버린 곳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