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느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허다한 사람들이 대기(大機)만을 얻었을 뿐, 대용(大用)을 얻지는 못했다."
   
   앙산스님이 이 말을 산 아래 암주(庵主)에게 이야기하고 이어서 물었다.
   "스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럼 위산스님이 하셨던 대로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앙산스님이 다시 말하려 하자 암주는 느닷없이 앙산스님을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앙산스님이 되돌아와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껄껄' 하고 크게 웃으셨다.

12. 스님께서 차잎을 따시다가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종일토록 차잎을 따는데 그대의 소리만 들릴 뿐 그대의 모습은 보이질 않으니 본래 모습을 드러내라."
   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작용만을 얻었을 뿐 본체는 얻지 못하였군."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찌 하시겠습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한참을 있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선 본체만을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질 못하셨습니다."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스님의 방망이는 제가 맞습니다만 저의 방망이는 누가 맞습니까?"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 수산 성념(首山省念:926∼993)스님은 말하였다.
   "종사(宗師)라면 모름지기 법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어야만 한다. 당시에 위산스님이 아니었다면 울타리나 벽을 더듬는 꼴을 보았을 것이다."
   
   낭야 혜각(慧覺)스님은 말하였다.
   "5경(五更:새벽 3∼5시)이 되어 일찍 일어난 줄 알았더니 벌써 밤에 떠난 사람이 있었군."
   또 말하였다.
   "위산스님이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모두 죽을 뻔했을 것이다."
   
   백운 수단(百雲守端: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부자가 서로 만나 의기(意氣)가 투합하고 안팎으로 쪼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동시에 기봉이 마주쳤다. 그렇긴 해도 필경 어떻게 말해야만 체용(體用)이 모두 완전할 수 있을까?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방망이 30대를 때린 것은 자식을 기를 인연이었다 하겠다."
   
   장산 근(蔣山懃)스님이 말하였다.
   "장공(張公)이 잠깐 이공(李公)의 친구되어 이공에게 벌주(罰酒) 한 잔 대접하려다가 도리어 이공에게 벌주 한 잔 당했으니 이야말로 솜씨 중에 솜씨로구나."
   
   옥천 종련(玉泉宗璉)스님은 말하였다.
   "설사 체용이 둘 다 완전하다 해도 애초부터 빗나가 버렸는데야 어찌하랴. 빗나가버린 것은 우선 그만두고라도 그에게 30대의 방망이를 때린 것은 또 어떠한가? 석 잔 술로 도련님의 얼굴을 화장하고, 한 송이 꽃을 미인의 머리에 꽂는다네."

13. 스님께서 막 앉으려 하시는데 앙산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혜적(慧寂)아! 5음(五陰)의 경계에 들어가지 말고서 얼른 한마디 해 보라."
   "저는 아직 신심도 확고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믿음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믿지 않음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다만 혜적일 뿐 다시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성성문(定性聲聞:부처될 가망이 없는 고정적인 성문)이로구나."
   "혜적은 부처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14.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열반경』 40권에서 어느 정도가 부처님 말씀이며 어느 정도가 마군의 말이겠느냐?"
   "모조리 마군의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대를 어찌해 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앙산스님이 물었다.
   "혜적의 지난 한 때의 처신[行履:무종의 폐불로 강제환속당했던 일]은 어찌 됩니까?"
   "그대의 바른 안목이 중요할 뿐, 그때 그 일은 말하지 않겠다."

15. 앙산스님이 빨래를 밟다가 불쑥 스님께 여쭈었다.
   "바로 이러할 때에 스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바로 이러할 때에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스님은 본체는 있어도 작용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말 없이 잠자코 계시다가 불쑥 물으셨다.
   "그대는 이러할 때 어찌하겠느냐?"
   "바로 이러할 때 스님께서는 이것을 보셨습니까?"
   "그대는 작용은 있어도 본체는 없구나."
   
   스님께서 그 뒤에 갑자기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지난 봄에 한 말은 완전하질 못했으니 지금 다시 말해 보아라."
   "바로 이런 때에 간절한 호소는 금물입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꾀가 제법 늘었구나."

16. 스님께서 물병을 앙산스님에게 건네주려다가 앙산스님이 받으려 하자 손을 얼른 웅크리면서 말씀하셨다.
   "무엇이냐?"
   "스님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나에게서 받으려 했는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인의(仁義)의 도리에서 보건대, 스님의 물병을 받아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겠습니다."
   스님은 그제서야 물병을 앙산스님에게 건네 주셨다.

17. 스님이 앙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잣나무를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잣나무입니다."
   스님은 다시 밭에서 김매는 농부에게 물었는데 농부 역시 "잣나무입니다" 하자,
   "밭에서 김매는 농부도 뒷날 5백명 정도의 대중은 거느리겠구나" 하셨다.
   
   *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차라리 `김매는 어르신네여, 나는 그대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리라. 말해 보라. 대원(大圓:위산스님의 시호)이 옳은지 내가 옳은지를.
   만일 어떤 사람이 분별할 수 있다면 그대가 법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겠지만, 만약 분별하지 못한다면 불법이 치연하게 생멸하리라."
   
   신정 홍인(神鼎洪:?∼901)스님은 말하였다.
   "의도가 김매는 데 있었겠느냐? 앙산의 경계에 있었겠느냐? 아니면 모두 아닌가?
   여러 상좌(上座)들이여, 일체 법이 분분하나 다시는 일삼을 필요가 없다. 그들 사제간의 대화는 같은 길을 가는 자만이 알 것이다."

18.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밭에서 돌아옵니다."
   "벼는 잘 베었느냐?"
   앙산스님이 벼 베는 시늉을 하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가 가지고 온 벼는 푸르던가 누렇던가,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던가?"
   "스님 등 뒤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았는가?"
   앙산스님은 벼이삭을 꺼내 들면서 말하였다.
   "스님께서 이것을 물으셨겠습니까?"
   "거위왕이 우유만을 가리는 것과 같구나."

19. 위산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날씨가 추운가, 사람이 추운가?"
   "모든 사람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바로 말하지 않느냐?"
   "이제까지 굽어 있지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20.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해마다 있는 일이다. 해 그림자가 옮기며 세월이 가는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차수(叉手)하고 서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가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향엄(香嚴:?∼898)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이 말에 조금이나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바짝 앞으로 나아가 묻자 향엄스님도 역시 앞으로 나아가 차수하고 서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운이 좋아서 혜적이가 모르는 것을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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