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문수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칼을 든 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
"500명의 보살들이 전생을 아는 지혜를 얻어서 지난 과거 생의 업장을 볼 수 있었다. 500이란 너의 오음으로 된 몸이니라. 이 숙명을 보는 장애 때문에 부처가 되기를 구하고 보살, 열반을 구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문수보살이 지혜로써 헤아리는 칼을 가지고 부처를 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렸다. 그래서 '아주 잘 베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칼입니까?"
"헤아리는 마음이 칼이다."
"헤아리는 마음이 이미 칼이라고 한다면 부처를 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린 것인데, 그렇다면 능히 베는 그 마음은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너의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보는 것이 있다고 분별하는 마음을 베느니라."
"부처를 봄이 있다느니 혹은 부처를 구함이 있다느니 하는 마음을 내는 경우에는 분별이 없는 지혜의 칼로써 베는 것이지만, 그 지혜의 칼이 있는 것은 어찌 해야 합니까?"
"분별 없는 지혜로써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를 베어 버리면, 분별 없는 지혜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지혜로써 지혜를 자르지 말며, 칼로써 칼을 자르지 마소서."
"칼이 스스로 칼을 베어서 칼과 칼이 서로 베어지면, 칼 또한 얻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혜가 스스로 지혜를 베어서, 지혜와 지혜가 서로 베어지면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미와 자식이 함께 죽는 것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