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설법하셨다. 해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육신은 늙어감에 따라 차츰 쇠약해지고 있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이 가장 아끼던 제자 사리풋타[舍利弗]가 마가다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 앓다가 죽었다. 곁에서 간호하던 어린 춘다는 죽은 사리풋다의 유물인 바리때와 가사를 가지고 부처님께 왔다. 부처님의 얼굴을 본 춘다는 이제까지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흐느끼면서 사리풋타의 죽음을 부처님께 알려 드렸다.

   “부처님, 여기 사리풋타의 바리때와 가사가 있습니다.”

   곁에서 춘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난다도 같이 울었다. 사리풋타는 부처님의 많은 제가 가운데서도 지혜가 으뜸인 수제자였다. 이같은 제자가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부처님의 슬픔도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부처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난다와 춘다의 슬픔을 달래 주셨다.

   “너희들은 내가 항상 하던 말을 잊었느냐? 가까운 사람과는 언젠가 이별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을 따라 변해간다. 아난다, 저기 큰 나무가 있구나. 저 무성한 가지 중에서 하나쯤은 먼저 시들어 떨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 그와 같이 사리풋타도 먼저 간 것이다.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너희들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법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아라.”

   사리풋타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목갈라나[目連]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목갈라나도 사리풋타 못지 않게 부처님 교단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노년에 이르러 유능한 두 제자를 잃었다는 사실은 부처님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슬픔을 가져다 주었다. 부처님은 두 제자가 없는 모임에 참석할 때면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보이지 않는 모임은 어쩐지 텅 빈 것만 같구나.”

   부처님이라고 해서 아끼던 제자의 죽음에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슬픔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부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느껴 왔던 것이다. 부처님은 사리풋타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는 춘다와 아난다에게 했던 말씀을 그 후로도 여러 수행자들의 모임에서 가끔 되풀이하셨다.

   만년에 이르러 부처님의 주변에 몇 가지 비극이 벌어졌다. 아버지 슛도다니왕의 죽음과 가장 아끼던 두 제자의 죽음, 그리고 친척인 데바닷타의 배반, 이런 것들이 부처님의 심경을 더욱 아프게 했다. 게다가 또 하나의 큰 비극이 일어났다.

   카필라를 노려 오던 코살라가 마침내 쳐들어오고 있었다.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듣고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한길가 고목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군사를 이끌고 그 앞을 지나가려던 코살라의 젊은 왕 비루다카는 얼른 말에서 내려 부처님께 절한 다음 물었다.

   “부처님, 우거진 나무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친족이 없는 것은 여기 그늘이 없는 나무와 같은 법이오.”

   이 한마디를 들은 젊은 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군대를 돌려 코살라로 돌아갔다. 비루다카는 얼마 후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늘이 없는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왕은 다시 되돌아섰다. 세 번째 진군이 카필라를 향했을 때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세상에 진 빚은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비루다카왕은 서슴지 않고 카필라를 공격했다. 살생을 엄격히 금하고 있던 사캬족은 전쟁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할 저항도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