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밧타에 들어가 밥을 빈 다음 성밖에 있는 숲길을 지나다가 소치는 사람과 밭을 가는 농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길을 가는 부처님을 보자 가는 길을 만류했다.
   “부처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 길에는 앙굴리말라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닙니다. 제발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거듭거듭 만류하였으나 부처님은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소.”
   라고 말씀하시면서 길을 떠났다. 얼마 안 가서 앙굴리말라가 갑자기 칼을 치켜들고 나타나 부처님께로 달려왔다. 부처님은 태연하게 걸어가셨다. 앙굴리말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이상하게도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사문아, 거기 섰거라!”
   하고 그는 소리쳤다.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말라를 바라보셨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대하자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엾이 여겨 여기에 왔다.”
 
   이 말을 듣자 앙굴리말라는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훨훨 타 오르던 불길을 꺼버린 듯하였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요.”

   그는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에 가서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었다. 이튿날 앙굴리말라는 바리때를 들고 거리로 밥을 빌러 나갔다.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거리로 밥을 빌러 나갔다.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거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밥을 빌고자 찾아간 집의 부인은 해산하기 위해 산실에 들었다가 그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란 끝에 해산을 못하고 말았다. 그 집 사람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받은 앙굴리말라는 빈 바리때를 들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도와주기를 호소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너는 곧 그 집에 가서 여인에게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 아직 산 목숨을 죽인 일이 없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편안히 해산할 것입니다’라고 하여라.”
   앙굴리말라는 놀라서 말했다.
   “부처님, 저는 아흔아홉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도(道)에 들어오기 전은 전생이다. 세상에 난 뒤라는 말은 도를 깨친 뒤를 말한다.”

   그는 곧 그 집에 가서 부처님이 시킨 대로 했더니 부인은 편안히 해산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원한이 있던 사람들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 나와 그를 치고 때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기원정사로 돌아온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원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아힘사카[不害]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 어리석은 탓으로 많은 생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씻어도 씻기지 않는 피묻은 손가락을 모았기 때문에 앙굴리말라[指?]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소나 말을 다루려면 채찍을 쓰고 코끼리를 길들이려면 갈구리를 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채찍도 갈구리도 쓰지 않으시고 흉악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악의 갚음을 받았고, 바른 법을 들어 청정한 지혜의 눈을 떴으며, 참는 마음을 닦아 다시는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살기도 원치 않고 죽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때가 오기를 기다려 열반에 들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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