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아래서 지혜의 눈을 뜬 부처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마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출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부처님을 믿는 신도가 되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다음 아라한(阿羅漢)의 지위에 오른 제자가 오십여 명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 수행자들, 나는 인간을 얽어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대들도 인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아가라.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는 말아라. 한결같이 훌륭한 법문을 중생들에게 들려 주고 언제나 깨끗한 수행자의 생활을 하여라. 이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도 많으니 그들이 훌륭한 법문을 듣게 되면 곧 깨달아 아라한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펴 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하는 교화 활동이 시작 되었다. 제자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씀하였다.

   “수행자들이여, 출가한 사람으로서 법을 펼 때 남에게 존경받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법에 의하여 먹고 살려 하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와 같은 자다. 또 너희가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벌써 법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갉아먹고 사는 아귀가 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해야 한다.”

   부처님 자신은 바라나시를 떠나 마가다로 향했다. 길을 가던 도중, 길가에서 깊이 들어간 숲속의 한 나무 아래서 잠시 좌선을 하고 계셨다. 이때 한떼의 젊은이들이 숲속 여기저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고 그들이 물었다.

   “한 여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연인즉, 그들은 이 근처에 사는 지체 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삼십 명이 저마다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이를 왔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독신자만은 기생을 데리고 왔었는데, 다들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기생은 여러 사람의 옷과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그 여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놀이에만 팔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여인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다들 거기 앉거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이치에 맞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이해하였다. 삼십명의 청년은 설법을 들은 뒤 그 자리에서 출가하였다.

   부처님은 스스로 ‘길을 가리키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혜롭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나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씀하였다. 부처님의 설법은 언제나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달랐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알고 나서 그 증세에 따라 알맞게 치료해주듯이, 찾아와 묻는 사람들의 형편을 보고 그에게 맞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법하셨다.

   부처님이 시밧티[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였다. 삼대 독자를 잃었버린 한 과부는 비탄에 빠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와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였다.
   “부처님, 저는 유복자를 잃고 살아갈 용기마저 잃었습니다. 저에게 이 슬픔에서 벗어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가만히 듣고 계시던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엾은 아주머니,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소. 지금 곧 가서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을 일곱 군데 찾아내어 쌀 한 움큼씩만 얻어 오시오. 그러면 내가 그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겠소.”
 
   과부는 바삐 마을로 쌀을 얻으러 나갔다. 며칠이 지난 뒤 그 과부는 한 움큼의 쌀도 얻지 못한 해 맥이 빠져 부처님께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물으셨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었습니까?”
   그제야 과부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부처님을 쳐다보는 과부의 얼굴에는 어느 새 슬픔의 그림자가 지워져 있었다.

   그 무렵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우루벨라 마을에는 카샤파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맏형은 오백 명, 둘째는 삼백 명, 세째는 이백 명의 제자들을 각각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명망은 매우 높았다. 그들은 불의 신 아그니를 섬기고 있으므로 불을 무엇보다도 신성한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 바라문 삼 형제도 한번 부처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듣더니 지금껏 그들이 섬겨 오던 불의 신을 버리고 당장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삼 형제와 함께 그들을 스승으로 받들던 천 명의 제자들까지 부처님께 귀의했다. 이렇게 되자 마가다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이 그대로 부처님의 교단이 된 셈이다.

   이제 부처님께서는 천 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리고 라자라하로 가시게 되었다. 라자라하는 예전에 부처님이 카필라를 떠나 출가의 길에 올랐을 때 들른 적이 있던 곳이고, 또 자신의 성도(成道)를 기다리는 빔비사라왕이 있는 곳이다. 라자라하로 가는 도중 일행은 산을 넘게 되었다. 산 위에 올라섰을 때 부처님은 천명의 제자들을 향해 설법을 하셨다.

   “보라, 모든 것은 지금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눈이 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고 있다. 그 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고 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해 타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리라. 애착이 없어지면 그는 영원한 안락을 누릴 것이다.”

   이 설법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지금까지 불을 섬겨 오던 그들에게 주는 감명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들은 지금까지 타는 불을 섬겨 왔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탐욕과 노여움의 불은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카샤파 형제와 천 명의 제자들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부처님과 그 일행이 라자가하로 오신다는 소문은 빔비사라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왕은 곧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영접하려고 성 밖으로 나갔다. 부처님의 모습을 보자 왕은 부처님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다시 만나게 된 인연에 감회가 깊었다. 왕과 신하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인가를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빔비사라왕은 갑자기 자기 눈이 열리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왕은 그 자리에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아직 태자로 있을 때 나에게는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왕위에 오르는 것, 둘째는 나의 영토에 부처님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일, 셋째는 내가 그 부처님을 섬기는 일, 넷째는 부처님께서 내게 설법해 주는 것, 다섯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이 나라에 오셨으니 이제는 그 다섯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이때부터 빔비사라왕은 한평생 부처님을 섬기는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라자가하성 밖에 있는 대숲을 부처님과 그의 교단에 바쳤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가하의 한 부자가 대숲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다음 이곳에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자청했다. 이때까지 부처님의 교단은 비와 햇볕을 피할 만한 집이 없었기 때문에 더러는 곤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화려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집을 지어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이렇게 하여 지은 것이 죽림정사(竹林精舍)이고, 이 집은 부처님의 교단이 가지게 된 최초의 절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교단은 나날이 번창해서 날이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왕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대숲에 있는 절로 찾아왔다. 그리고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게 되면 누구나 신도가 되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제자가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편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 오셔서 설법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라자가하 시민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모두 출가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아들이 출가한 집에서는 부모들이 ‘부처님이 우리 아들을 빼앗아 갔다’고 원망했다. 게다가 산자야 종파의 제자였던 사리풋타(舍利弗)와 목갈라나(目連) 같은 유명한 수행자가 이백오십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를 보고 비꼬았다.

   “마가다의 서울 라자가하에 한 위대한 사문이 나타났다. 앞서는 산자야의 제자들은 유혹하더니 이번에는 또 누구를 유혹하려는가?”

    한 제자로부터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같은 비난의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또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대답해 주어라. 여래는 법에 의하여 사람을 인도할 따름이다. 바른 법에 귀의하는 것을 시기하는 자는 누구인가. 바른 법을 시기하는 자는 모두가 바르지 못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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