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균주 황벽운선사 1) 시중

   대중들아, 너희들이 만약에 미리 칠통 2) 을 철저히 타파하여 놓지 않으면 납월 30일 3) 을 당하여는 정녕 열뇌(熱惱)하고 황란(惶亂)할 것이 분명하니라.
   
   어떤 외도들은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저러고 있다" 하며 냉소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묻노니, 홀연 죽음이 닥치면 너는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느냐. 모름지기 평상시에 힘을 얻어 놓아야 급할 때에 다소 힘을 더는 것이니, 마땅히 목마르기를 기다려 샘을 파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죽음이 박도하여서는 이미 수족이 미치지 못하니 앞길이 망망하여 어지러이 갈팡질팡 할 뿐이니, 가이 딱하고 딱하도다.
   
   평시에 다만 구두선(口頭禪) 4) 만 익혀서 선(禪)을 설하고 도(道)를 말하며 불을 꾸짖고 조사를 욕하여 제법 모두 해마친 듯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무 용처 없으니, 평시에 남은 속여왔으나 어찌 이때에 당하여 자기마저 속이랴.
   
   형제들아, 권하노니 신체가 강건한 동안에 이일을 분명히 판단해 두라. 대개 이 문제 5) 는 풀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목숨을 떼어 놓고 힘써 공부 하려고는 아니하고, 다만 어렵고 어렵다고만 하니 만약 진정한 대장부라면 어찌 이와 같으랴. 모름지기 저 공안(公案) 6) 을 간(看)하되,

   승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답하되 "무(無)!" 하였으니,
   
   다만 26시중에 이 "무(無)" 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저 "무" 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 7) 이 되면 어느듯 홀연히 마음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달마 8) 가 서쪽에서 왔다는 것도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것이오,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 9) 도 오히려 한바탕 허물이라 할 것이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천성(千聖)도 오히려 입을 떼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염라노자(閻羅老子) 10) 를 말할까 보냐.
   
   대중들아, 이 사이에 기특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생각 하지마라. 매사에 일이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하느니라. 11)

《평》
   
   이것이 후대에 화두를 가져 공부하게 된 시초가 된다. 그러나 반드시 "무(無)" 자 만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니 혹은 "만법귀일(萬法歸一)" 12) 혹은 "수미산 (須彌山)" 13) 혹은 "사요소요(死了燒了)" 14) 혹은 "참구염불(參究念佛)" 15) 도 좋으니, 한개의 화두만을 지켜서 오직 크게 깨치기만 기약하라. 비록 의심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깨침인즉 둘이 없는 것이다. 

▒ 용어정리 ▒

[1] 황벽(黃檗)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 곳을 유력하였는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 그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가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 뿐이지 딴 것이 있습니까?' 하니, 화상이 불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느냐?' 하시기에
   내가 불자를 도로 선상에 놓고 자리에 앉으려 하니
   화상이 벽력 같은 '할'을 하셨는데 그때 내가 사흘이나 귀가 먹고 눈이 캄캄 하더라."
   황벽이 이 말을 듣고 불각 중에 토설(吐舌)하고 대오하였다.
   
   하루는 백장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밑에 가서 버섯을 따옵니다."
   "범을 안 만났더냐?"
   황벽이 "으흥!" 하고 범이 물려는 형세를 지으니
   백장이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는 것을 황벽이 덤벼들어 한번 쥐어박았다.
   백장도 한 차례 쥐어박고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날 백장스님이 상당설법에서 말하기를,
   "대웅산 아래 큰 범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 내가 오늘 한번 물렸다." 하였다.

   그후 백장의 법을 받아 가지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형적을 숨기고 지냈다.
   한번은 용흥사(龍興寺)에 와서 쓰레질이나 하면서 머물고 있었는데 홍주자사(洪州刺史) 배휴(裵休)가 왔다. 배휴는 법당 벽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요?"
   안내하는 스님이
   "고승의 상(像)입니다." 하니,
   "형상인즉 볼 만하나 고승은 어데 있소?" 하였다.
   스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니,
   배휴가 "이 절에 선승(禪僧)이 없소?" 하고 물었다.
   "근자에 한 중이 와 있는데 선승같이 보입니다."
   배휴는 그 중을 불러오라 하였는데, 그가 바로 황벽이다.
   
   배휴는 다시 앞서의 말로 물으니,
   황벽이 즉시에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배휴는 엉겁결에 "네!"하니,
   "어느 곳에 있는고?" 하는 데서 배휴가 활연 계합하였다.
   배휴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를 드리고 사제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였다.

   그 후 배휴의 청으로 완능(宛陵)의 개원사(開元寺) 홍주 대안사(大安寺)에 있으면서 크게 교화하니, 법중이 항상 천여명이 넘었다. 법을 이은 제자가 12 인이 있는데 그중에 임제(臨濟)스님이 있다. 지금 여러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완릉록(宛陵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는 선사법어를 배휴가 기록한 것이다.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선사다.

[2] 칠통(漆桶) :
   어두운 중생심을 가리키는 말. 본래 밝은 이 마음이 미혹, 착각, 전도하여 이른바 무명이 덮여 어둑하기가 옷(칠)을 담은 통 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통은 무명(無明)과 같은 말로 쓰인다.

[3] 납월 30일 :
   임종시, 숨질 때

[4] 구두선 :
   입에 붙은 선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다이 공부하고 실다이 깨칠 따름이요,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도 당한 것이 아닌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을 구두선이니 구두삼매니 한다.

[5] 문제 :
   여기서는 관렬자(關렬子)의 번역인데, 관렬자란 올개미, 함정, 혹은 장치의 뜻을 가진 중국고어다. 여기서는 조사 공안을 말하고 있다.

[6] 공안 :
   화두라고도 하며 도를 판단하는 법어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 본래 관청의 "공변된 문서" 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써 "공정하여 범치 못할 법령" 이라는 것이다. 대개 공부하는데 있어 올바르게 깨치는데는 불조의 바른 이치를 직절(直截) 설하신 조사의 말씀이나 몸짓이나 그밖에 모든 방법은 그것이 다 깨치는데 있어 바른 법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이 공안을 요달하여야 한다. 고래로 조사공안은 천7백칙이 된다고 하나 어찌 조사 공안을 수로 헤아리랴!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실린 불조사의 수효가 천7백1인데 이 수효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

[7] 타성일편 :
   화두가 순숙하여 끊일 사이가 없어져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어 언제나 화두가 현전하는 경지. 오직 화두를 들고 간절히 꾸준히 그리고 힘차게 밀고 나가면 이 경지가 된다. 참으로 공부인의 득력 시절은 이때부터다.

[8] 달마(達磨) :
   (?~528)범어로 보오디 다르마. 선종의 중국 초조로 세존 가섭 아난으로 전하여 내려오는 불조법통의 제28대 조사가 된다. 남인도 향지국 제3왕자로 본명은 "보리다라" 라 하였다.
   반야다라 존자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을 섬기다가 반야다라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행하던 소승선관의 육종(六宗)을 굴복시켜 전인도에 그 이름을 떨치고 60여년을 교화하였다.
   반야다라가 법을 전할 때 "내가 죽은 후 67년이 되면 네가 동방으로 가서 대법을 선양하라. 부디 속히 가려고 서두르지를 마라. 남방에는 유위공업(有爲功業)이나 좋아하고 불리(佛理)는 보지 못하니 그곳에는 머물지 마라. 동토에는 보리를 이룰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셨는데, 사조카 이견왕(異見王)을 교화하고는 마침내 바다길로 중국을 향하여 3년만에 양(梁)나라 보통(普通)1년(서기520) 9월 광주(廣州)에 이르러, 10월에 금릉(金陵)으로 가서 무제(武帝)와 만났다.

   무제가 묻기를,
   "화상은 서천에서 무슨 교법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한가지의 교법도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짐이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중을 득도시켰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조그마한 공덕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인천(人天)의 작은 복이니 유루(有漏)공덕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 뚜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 일(有爲之事)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가는 도리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는 이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하였다. 달마는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 숭산(嵩山)으로 갔다. 사(師)가 떠난 뒤에 무제는 지공대사에게 "그분이 바로 관음보살이라" 는 말을 듣고 급히 뒤쫓아 모셔 오라고 하였으나, 지공대사는 온나라 사람이 다가도 오지 않을거라고 말렸다. 그뒤 사(師)는 소림사(少林寺) 석굴에 9년동안 면벽하고 있었으므로 세상에서는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이락(伊洛)에 있던 신광(神光)이 도를 구하여 소림굴 밖에 이르렀다. 신광은 박학군람(博學群覽)하고 불·유·선의 깊은 이치를 통달한 이름난 달승(達僧)이었다. 물론 달마는 면벽단좌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신광은 "옛 사람은 도를 구하기 위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내며, 피를 뽑아 굶주림에 먹이고, 머리를 풀어 진흙을 덮었으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에게 먹였는데 나는 또한 무엇하는 거냐!" 하고 마침내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9일밤, 무릎을 넘는 눈속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날이 밝아 해가 높이 떴을때야 달마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달마가 신광을 돌아 보고
   "네가 밤새 눈 속에 서 있어 무엇을 구하는 것이냐?"
   신광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말하였다.
   "원하옵건데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주십시요."
   "제불(諸佛)의 무상묘도(無上妙道)는 광겁으로 정근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참을 수 없는 것을 능히 참아야 하는 것인데, 너는 어째서 소지소덕(小智小德)과 경만심(輕慢心)으로 대법을 바라보고 헛고생이나 하는 것이냐!"

   신광은 즉시에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허물을 통절히 뉘우쳤다. 그리고 즉시에 칼을 빼어 왼쪽 팔을 탁! 치니 팔은 동강 잘라졌다. 이 순간 홀연히 눈 속에서 파초가 솟아올라 그 팔을 바쳤다고 한다.
   달마 이것을 보고 "제불의 최초구법이 모두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네가 또한 이러하니 가히 도를 구할 만하다." 하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고치게 하였다.

   혜가가 "제불의 법인(法印)을 얻게 하여 주십시요." 하자
   달마는 "제불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그 당시 혜가는 과연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으나 마음 속에 차지하고 보채고 있는 인간 불안은 어떠한 지식이나 배운 것으로도 해결은 커녕 더욱 더하여 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지혜총명과 박학강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 속 "한 물건" 의 해결을 구하고자 물었다.
   
   "화상이시여, 저의 마음이 아직 편안치 않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요."
   "좋다,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로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마쳤다."
   
   위(魏)나라 효명(孝明)황제가 사의 이적을 듣고 크게 경앙하여 세번이나 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예물도 세차례나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막지 못하고 마납의(摩衲衣) 가사(袈裟) 두벌, 금발우(金鉢) 은수병(銀水甁)과 비단만은 받았다. 소림사에서 9년동안 있다가 하루는 문인을 불러서
   "이제는 내게 때가 왔다. 너희들은 각기 소득을 말해보라." 하시니 이미 사의 세연이 다하여 온 것이다.
   그때 도부(道副)가 나와서
   "문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니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하고,
   다음에 비구니 총지(總持)가 나와서
   "제가 본바로는 아란이 아촉불국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하니,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하고,
   도육(道育)은
   "사대(四大)는 본래 공했고 오온(五溫)도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니오니 제가 본 바로는 한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하였는데,
   혜가는 나와서 다만 예배하고 물러가 제자리에 서니,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迦葉)존자에게 전하신 후 전전히 전하여 내려와 지금 나에게 와 있다. 이를 이제 너에게 부치니 잘 호지하라. 그리고 가사를 너에게 전하니 법의 신(信)으로 삼고 그 뜻을 잘 알아 두어라. 의발은 내가 죽은지 2백년 뒤에는 전하지 마라. 그때는 법이 천하에 퍼져 도에 밝은 자는 많고, 도를 행하는 자는 적으며, 이치를 말하는 자는 많고 이치를 통한 자는 적을 것이며, 비밀한 이치에 계합하고 도를 통한 자가 천만인이 넘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이 법을 천양하되 깨치지 못한 자를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그들이 한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본래로 도를 얻은 자와 같은 것이다." 하고
   게송으로 이르기를,

   "내가 이땅에 온것은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니,
   한 꽃이 다섯잎이 피면 결과가 자연히 이뤄지리라
   (吾本來玄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하고,
   또 이르기를,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4권이 있으니 이를 너에게 부친다. 경은 곧 여래심지(如來心地)의 요문이니 여러 중생을 가르쳐 깨달아 들어가게 하라." 하였다.

   그 당시 광통율사(光統律師), 보리류지(菩提流支) 3장등 집상(執相) 학자들은 사를 시기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번째는 법은 이미 전했고 때는 왔다 생각하고 그대로 두어 마침내 앉으신 채 입적하니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위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永安)원년 10월 5일이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총령(蔥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로 신 한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짝만 남기고 전신 탈거하였더라고 한다.

   사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혈맥론(血脈論), 파상론(破相論), 사행론(四行論), 오성론(五性論), 심경송(心經誦), 안심법문(安心法門)등이 있어 지금의 종문교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달마전에는 이설이 있다.

[9] 세존이 꽃을 들다(拈花微笑) :
   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한번은 대법천 왕이 꽃비를 분분히 내려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은 그중 금색파리와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는데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 을 가섭에게 전한다." 하였다. 이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써, 이밖에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설법하실 적에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은 것과, 열반에 드신 뒤 가섭에게 곽밖으로 두발을 내어 보인 것을 합하여 종문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10] 염라노자 :
   이른바 '염라대왕' 이다. 범어로 '야마라야지' 이니 박(縛)·차지(遮止)·정식(靜息)·가포외(可怖畏)라 번역된다. 귀신세계의 수령으로 사후에 유명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범부가 죽어서 보(報)를 받아갈 때 염라왕이 이를 판단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지어가는 사람은 설사 깨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광명을 발하는 사람이라, 이런 어두운 문이 상관 없는 것이다.

[11] 일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한다 :
   "세상사 어려울 것 없으니 오직 마음만 있으면 된다." 는 말과 같다.

[12] 만법귀일(萬法歸一)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조주의 기연이다.

[13] 수미산 :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허물이 있습니까?" 하는데
   "수미산!" 하였다.

[14] 사요소요(死了燒了) :
   "죽어서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니 너의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는가?"
   하는 말인데, 철산경이 항상 이 말로 찾아오는 납자를 다루었다.

[15] 참구염불(參究念佛) :
   염불하면서 "이 염불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의심을 지어가는 공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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