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聖地)에서 범인(凡因)을 익혀 부처님은 중생 속에 들어가 동류로 이끌어 주시니, 그들 아귀와 함께 사지 마디마디를 불에 태우며 반야바라밀을 설명하여 발심(發心)하게 한다. 만일 오로지 성인의 경지에 있기만 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그들에게 가서 말해주겠는가.

   부처님은 모든 부류에 들어가 중생들에게 배와 뗏목이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무한한 수고로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부처님은 괴로운 곳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괴로움을 받지만, 가고 머뭄이 자유로와 중생과 같지는 않다.

   부처님은 헛되게 괴로움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괴롭지 않다 한다면 이 말은 틀린 것이다. 쓸데없는 말하지 말라.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다느니 자재하지 못하다느니 하고 잘못 말들 한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부처님은 유위(有爲)다 무위(無爲)다 하지 못하며, 감히 부처님은 자유롭다 자유롭지 않다 하지 못한다. 찬탄하는 약방문(藥方文)을 제외하고는 추한 양 갈래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에서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불보리를 한 쪽에 봉안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하였고, 또'부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허물이 없다'라고도 하였다.

   무루(無漏) 우유가 유루(有漏)병을 치료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 소는 고원에 있지도 않고 하습지에 있지도 않아서 이 우유로 약을 만들 만하다. 여기서 고원은 부처를 비유한 것이고 하습지는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여래실지법신(如來實智法身)에게는 이 병이 없다'한 것과도 같다. 막힘없는 말솜씨로 자유롭게 날면서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면 그것을 쓰라린 생로병사의 아픔이라 한다. 이것이 버섯국을 가만히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며, 가만히 밝은 자취를 숨긴 것이다.

   밝음과 어둠을 모두 버리고, 갖느니 갖지 않느니 하지를 말라. 또한 갖지 않다는 것마저 없애라. 그는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왕궁에서 태어나 야소다라를 받아들이고 여덟 가지 모습으로 성도하였다(八相成道)한 것은 성문외도가 망상으로 헤아린 것이니, '잡다하게 먹는 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순타(純陀: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가 말하기를, '나는 여래께서 결코 받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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