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귀·코·혀·몸·의식에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제7(第七地)에 전변해 들어간다'고 한다. 7지(七地)보살은 칠지에서 물러나지 않고 위로 3지(三地)를 올라(向上)간다.

   보살의 심지(心地)는 명백(明白)하여 쉽게 오염되어 불이라고 말만해도 바로 탄다. 색계(色界)에서 올라가면 보시가 병이고 간탐( 貪)이 약이며, 색계에서 내려가면 간탐이 병이고 보시가 약이 된다.

   유작계(有作戒)란 세간법을 끊는 것이며, 다만 몸과 손으로 조작하지 않아 허물이 없으면 이를 무작계(無作戒)라 하며, 또는 무표계(無表界), 무루계(無漏戒)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움찔했다(擧心動念)하면 모조리 파계(破戒)라 하는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고 혹하지 않는 데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그것을 '빠짐없이 배우고 부지런히 생각(護念)하며 널리 유포한다'고 한다.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어미(母)라 하고, 깨닫고 나서를 자식(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음을 어미 자식이 동시에 없어짐이라 한다. 이렇게 선에도 매이지 않고 악에도 매이지 않으며, 부처에 얽매이지도 않고 중생에게 매이지도 않는다. 테두리(量數)에도 마찬가지며, 나아가서는 아무런 테두리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한량을 뛰어넘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앎(知解)이나 설명(義句)에 탐착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소락( 酪)을 많이 먹이기만 할 뿐 소화가 되고 안 되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 말은 10지(十地)에 비유된다. 즉 인간·천상에게 존대받는 번뇌,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 선정과 복락을 누리는 번뇌, 자유롭게 신통으로 날며 숨고 나타나면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정토(淨土)에 두루 다니며 법을 듣지 못하는 번뇌, 자비희사(慈悲喜捨)와 인연(因緣)을 닦는 번뇌, 공(空)과 평등한 중도(中道)를 닦는 번뇌, 3명(三明)·6통(六通)·4무애(四無碍)를 닦는 번뇌, 대승심을 닦아 사홍서원을 발하는 번뇌, 초지, 2지, 3지, 4지에서 분명히 이해하는 번뇌, 5지, 6지, 7지에서의 모든 지견(知見)번뇌, 8지, 9지, 10지에서 이제(二諦)를 동시에 관조하는 번뇌와 나아가서는 불과(佛果)를 닦는다. 백만 아승지겁 동안 행하는 모든 번뇌까지 설명이나 앎을 탐할 뿐 도리어 얽어매는 번뇌임을 모른다. 그러므로 '강을 보아야만 향상(香象)을 띄울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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