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또 물었다.
   "'말을 하면 표적이 되어 화살을 부른다'하니, 말을 하여 표적이 되고 나면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심에 매인 점이 똑같다면 무엇으로 승속을 구별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화살을 쏘아 도중에 딱 부딪치듯 해야만 한다. 만일 어긋난다면 반드시 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골짜기에서 메아리를 찾는다면 여러 겁 동안 찾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메아리는 입가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잘못은 찾아와서 묻는 데에 있다. 귀결점을 묻는다면 도리어 화살을 맞을 것이니, 역시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비가 아니다' 한 말씀과 같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玄妙)한 종지를 모르고 망념(妄念)을 가라앉히느라 헛수고하는구나' 하셨다. 또 '보이는 것(物) 보는 것(見)이라 오인한다면 마치 기와 부스러기를 가진 것과 같으니 무엇에 쓰겠으며,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르랴'하고 하셨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다 아니다 하면 둘 다 잘못이니, 이 한 가지 예로 모든 것을 견주어 보라."

10. 또 물었다.
   "번뇌와 32상이 본래 없다는데,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부처님 쪽의 일이다. 본래 번뇌가 있었다거나 지금 32상이 있다는 것은 범부의 생각일 뿐이다."

11. 또 물었다.
   "끝없는 몸을 가진 보살(無邊身菩薩)이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한다 하니 어째서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있다 없다는 견해를 냈기 때문에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등의 모든 견해가 전혀 없고 그 견해 없음마저도 없다면 이것을 '정수리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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