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생사애증에 미련을 두지 말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오직 생사애증의 그물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하니 그렇게 되면 선악의 업장에 끄달려 자유가 없는 형편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되었을 때 설사 그대들이 몸과 마음을 허공처럼 닦을 수 있고, 또한 마음이 맑아서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알음알이를 벗어나지 못한 경계이다. 옛 사람은 이것을 두고 ‘급류가 거침없이 흐르는 데도 알지 못하고 허망하게도 고요하게 여기는 경계’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알음알이가 끊어지지 않았으면 비록 심신을 허공처럼 닦는다 하더라도 악업에 끌려간다. 또한 마음이 맑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 경지가 바로 알음알이의 경계이니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간추려 말하자면, 큰 도리를 참구해서 깨치지 못했으면 다 허망하다는 뜻이다.

32. 도안(道眼)을 갖추기 전에는 윤회를 벗지 못한다.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모두 또다른 윤회를 낳게 하여 여전히 윤회를 떠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신 것이다. 그러니 삼승(성문, 연각, 보살)의 노력이 실로 엄청난 줄은 알겠으나 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완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위의 몇 줄 법어의 내용을 검토해 보자면, 모두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경지에 대한 설명이다. 성문, 연각, 보살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6바라밀과 온갖 수행을 다 한다 해도 이것은 모두 생멸법(生滅法)이다. 이들은 실제 도리를 보고서 잠시 기뻐하지만 道와는 아무 관계없는 것이다.

33. 쉬라고만 가르치는 외도

   경산사 대혜스님이 말씀하셨다.
   “요즘 이런 외도가 있다. 즉 자기 안목은 밝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죽은 갈단(이리같이 생긴 힘센 괴물, 여기서 죽은 갈단은 기력없음을 비유함)처럼 쉬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쉰다면, 천불이 세상에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은 더욱 번민에 싸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의정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면 미세한 번뇌가 끊어지지 않으니, 미세한 번뇌가 끊어지지 않았다면 쉬어 보았자 되지도 않는다. 이 쉰다는 말이 바로 생사의 근본이니, 비록 백천 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이다.

34. 주관이 객관을 관조하는 망념

   대혜스님이 말씀하셨다.
   “다음과 같이 납자들을 지도하는 부류가 있다. ‘어떠한 연을 만나든지 주인공을 잃지 말며 생각을 잊고 묵묵히 관조하라’고.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나가다보면 그 결과는 마음 속의 번민만 더해갈 뿐 끝마칠 기약은 없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미 잃지 않으려는 마음과 비추어보려는 대상이 있다면 주관과 객관이 대립한 것이니 망념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약 망념을 가지고 참구한다면 문득 자기 마음에서 자재할 수가 없게 된다. 오직 제자리에서 생사를 끊어버려 주관과 객관이 일지않게 해야 마음 속에 꽉 막혔던 응어리가 물통 밑바닥이 빠져나가듯 쑥 빠질 것이다.

35. 고요함과 상대되는 또렷함은 참구가 아니다

   대혜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납자들을 지도하는 무리가 있다. ‘이 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저 다만 쉬어라. 이렇게 쉬어질 수 있으면 미혹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때 도달한 경지는 깜깜하게 인식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고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경지이다’ 라고. 이런 사람들은 납자들에게 독을 주고 그들의 눈을 애꾸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큰일 날 일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비록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그것은 고요함과 상대되는 상태일 뿐 참구는 아니다. 만약 참구를 하려면 바로 생사대사를 파헤쳐 밝혀내고자 해야 하는데 이미 그렇지 못하니, 해독스럽지 않겠는가.

36. 생사심을 타파하라

   대혜스님이 말씀하셨다.
   “오래 참구했거나 먼저 깨쳤거나를 막론하고 참으로 고요한 경지에 도달하려면 모름지기 생사심을 깨뜨려서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참선하는 데는 생사심이 깨어지면 저절로 고요해진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의정이 일어나면 그것이 뭉쳐서 한 곳에 엉켜 있게 되고, 그 의정이 깨어지고 나면 생사심도 깨어진다. 이런 자리에서는 요동하는 모습을 찾을래야 정말로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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