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오온신 속에 소소영영한 주인공이 있다는 망상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렷하고도 신령스런 마음바탕이 있어서, 보고 듣고 하면서 오온의 육신 속에서 주인공이 된다’ 라고.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선지식이 된 이는 크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 까닭을 알겠는가?
   내 그대들에게 물어보겠다. 만일 또렷하고도 신령스런 마음바탕이 그대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하여 잠이 든 상태에서는 그 소소영영한 상태가 안되는가? 잠이 든 상태에서 소소영영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어째서 깨어 있을 때에서야 다시 알아보는가?
   이런 것을 ‘도적을 아들인 줄 안다’ 고 한다. 이는 생사의 근원이니 망상이 인연이 되어 생긴 상태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는 정신을 농락하는 인간들이다. 깜박 잠이 든 상태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죽는 마당에 가서 어떻게 자재안락한 경지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은 일생 동안 소란만 피우다 갈 뿐이니, 어찌 다른 사람만 웃겨줄 뿐이겠는가. 스스로도 웃을 일이다.

22. 오온신에서 주인공을 찾고자 한다면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오온으로 된 이 몸에서 주인공을 찾고자 한다면 자신의 비밀금강체를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옛 스님도 말씀하시기를 '원만하게 성취된 정변지가 모래알 같이 수많은 세상에 두루 깔려 있다.' 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비밀금강체가 바로 원만하게 성취된 정변지이니, 이것이 모래알 같이 수많은 세계에 두루 깔려 있다.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건대, 모름지기 온몸으로 부딪쳐 들어가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23. 고정된 방법은 불도가 아니다.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불도는 탁 트여 있어서 정해진 길이 없으니, 아무 방법도 쓰지 않아야 해탈에 이르는 방편이며 어떠한 마음도 내지 않아야 도인의 마음이다. 또한 불법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있지 않으므로 흥망성쇠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라도 세웠다 하면 진(眞)에 어긋나니, 인위조작에 속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만약 이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실오라기 만한 노력도 들이지 않고 선 자리에서 곧 부처가 된다. 아니, 부처가 된다는 이말에서 된다는 것조차 오히려 군더더기다.

24. 동(動)이나 정(靜)에 치우치지 말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움직이면 생사의 본원이 일어나게 되고, 조용하면 혼침한 경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고 동과 정을 모두 쓸어 없애면 단견[공무(空無)]에 떨어지며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면 얼굴만 훤칠한 알맹이 없는 불성이 되리라.”

   나는 이렇게 평한다.
   납자들이 흔히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나, 조용함이 오래되면 다시 움직일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반드시 눈썹을 치켜세우고 동정(動靜)의 소굴을 깨버려야만 비로소 도인의 공부가 되는 것이다.

25. 무심과 중도의 수행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바깥의 티끌 경계를 마주해서는 죽은 나무나 꺼진 재처럼 되었다가 마음을 써야 할 때 가서는 중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거울이 모든 물체를 비추지만 자기 빛을 잃지 않고, 새가 공중을 날면서도 하늘 바탕을 더럽히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평한다.
   ‘죽은 나무나 꺼진 재처럼 하라’ 함은 무심하라는 말이고, ‘중도를 잃지 말라’ 함은 사물에 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무 감각 없이 꺼진 재처럼 되어버린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자기 빛을 잃지 않는다’거나 ‘하늘 바탕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깥 경계는 경계일 뿐이니 그것이 나를 어쩌겠는가.’ 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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