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법신에 대한 두 가지 병통

   운문스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통과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의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사방 깜깜한데 앞에 무엇인가가 있는 경우와, 또 모든 것이 공(空)임을 철저히 알고도 암암리에 어떤 것이 있는 듯하다고 보는 경우가 다 그 원인이다.
   또한 법신에도 두 가지의 병통이 있다. 하나는 법신을 깨닫고서 법집을 떨어버리지 못하고 ‘나는 법신을 깨달았노라’ 하는 견해가 아직 남아 법신 쪽에 눌러 앉는 경우이다. 한편 법신을 깨닫고서 그것을 놓아버려서도 안되니 자세히 검토해보아 어떤 기미라도 있으면 병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 병은 오로지 알음알이에서 살길을 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한 번도 앉은 그 자리에서 번뇌망상을 끊지 못하여 법신을 깨닫지도 못했으며,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 숨을 토해내지도 못해 보았으니 만일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망념이 생겨나게 되면 마귀, 도깨비가 자기 속에 들어앉게 되는 꼴이다.

17. 지혜와 근기가 뛰어나야 한다.

   현사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를 배우려는 모든 보살은 모름지기 공부할 만한 근기와 지혜가 뛰어나야만 될 수 있다. 만일 지혜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이곳 번뇌의 사바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근기가 뛰어나다’ 함은, 한 가지를 들으면 천 가지를 알아듣고 무량한 법문을 깨치는 이를 말한다. 앞서 ‘벗어난다’ 는 말은 처음부터 방편으로 하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본래부터 얽매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8. 둔한 근기는 절실히 노력하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근기가 둔한 사람이라면 다만 밤낮으로 애써 공부하여 고단함도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마치 부모 상을 당했을 때처럼 해야 한다. 이렇게 다급하고 절실하게 일생을 공부하다가 보면 문득 선지식의 도움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참구해야 무엇인가가 구체적으로 되어나가는데, 하물며 지금 같아서야 누가 이러한 공부를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온 누리 사람이 다 이 공부를 감당해낼 수가 있다. 오직 무지하고 선근을 갖추지 않은 사람을 빼고는. 설사 석가 부처님이 빛을 놓아 대지를 뒤흔드는 위엄을 보이신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어찌 하겠는가.

19. 남의 말을 외우려 하지 말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납자들은 오직 말을 외우는 데 힘써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다라니를 외는 것과 같아서 제자리 걸음으로 전진하려는 격이다. 이렇게 입 속에서는 어린애 반벙어리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어떤 사람에게 붙잡혀서 질문이라도 받게 되면 꼼짝없이 피할 곳이 없다. 그리하여 발칵 성을 내면서, ‘그대는 나더러 지금 선문답을 하라는 말인가?’ 라고 하니, 이런 사람에게는 공부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러울 뿐이다.  알겠느냐!”

   나는 이렇게 평한다.
   남의 말이나 외우는 일은 ‘잡독이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 고 하니, 그것이 바른 견해를 막기 때문이다. 보통 세간에서 글을 읽는다 하는 사람도 글 자체를 외우는 경우가 많으나 그 내용을 소화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출세간법을 참구하려는 납자가 남이 흘린 침이나 받아먹어서야 되겠는가.

20. 거짓 몸짓으로 법을 보여주는 잘못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선상(禪床)에 앉아 있으면서 선지식이라 불리우는 어떤 화상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법을 물으면, 몸을 흔들고 손을 움직이며 눈을 깜박거리고 혓바닥을 내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쏘아보곤 한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런 무리들은 온몸이 마이며 온몸 그대로가 병통이니, 죽을 때까지도 시끄러운 속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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