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들지 말라

   참선할 때는 도리를 따져서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되니, 오직 딱딱하게 참구해 나아가야 비로소 의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든다면 이것은 무미건조한 껍데기일 뿐이니, 그 결과는 비단 자기의 생사대사를 확철대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정을 일으키는 일조차 못할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릇 속에 담긴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나, 사실 그 속에 담긴 것은 그가 지목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아닌 것을 옳다 하고 있으니 의정이 생겨날 수가 없다. 비단 의정이 생겨나지 않을 뿐 아니라 저것을 이것이라 하고 이것을 저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착각하고 있다면 그릇을 열고 한번 몸소 그 속을 보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도 그 속에 담긴 것을 가려내지 못할 것이다.

42.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도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도(道)” 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고 오직 이 도리를 밝혀 내고야 말겠다는 뜻을 굳게 세워야 한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바로 도라는 생각에 빠지면 일생동안 그저 “아무 일 없는 놈” 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가사 속의 생사대사는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음과 같아서 확실하게 찾았으면 비로소 일이 끝나지만 확실히 찾지도 못한 채 무사안일에 몸을 맡겨 찾아보려는 의지조차 없다면 설사 잃은 물건이 나타나드라도 빤히 보면서도 잘못 알고 지나쳐 버리게 되니 이것은 그에게 찾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43. 단번에 깨치려고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번갯불 부싯돌[電光石火]처럼 반짝이는 사이에 깨치겠다는 마음을 먹어선 안된다. 비록 빛이 문앞에 번득거릴 때 반짝하고 보이는 것이 있었든 없었든간에 거기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단 말인가? 요는 착실히 실천해 가면서 직접 자기 눈으로 한번 확인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것이다. 만약 진득하게 하여 뜻대로 되어 간다면 맑은 하늘 밝은 해 아래 잃었던 부모를 만난 듯 하리니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44. 사유와 판단을 주의하라
    
   화두를 들 때에는 의식 속에서 알음알이를 내어서는 안된다. 따져보고 판단하는 등의 일은 공부를 조금도 제대로 되지 못하게 하고 의정을 일으킬 수도 없게 한다. 그러므로 '알음알이' 라는 네 글자는 바른 믿음과 바른 수행을 장애하고 아울러 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납자들은 그것을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의 원수 집안처럼 대해야 한다.

45. 화두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화두를 들 때에는 화두 표면상에 나타난 의미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만약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런 납자를 이른바 '얼굴만 멀쩡한 바보' 라고 하니, 마음을 참구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오직 모름지기 의정을 일으키고 철저하게 아무 곳도 고개 끄덕일 곳이 없게끔 해야 한다. 또 아무데도 고개 끄덕일 곳 없는 사람도 공중누각이 이리 저리로 다 뚫린 것처럼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을 자식으로 알고 하인을 신랑인 줄로 착각하는 꼴이 된다. 옛 큰스님께서도 "당나귀 안장자루를 아버지 턱뼈라고 부르지 말아라" 하셨으니 바로 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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