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알음알이를 공부로 오인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공부로 오인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혹 눈썹을 치켜 뜨고 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굴리는 것에 무엇인가 있다고 여겨서 알음알이를 붙들고 참선에 임한다면 외도의 노예조차도 되기 힘들 것이다.

32. 마음 갈 곳이 없도록 하라.

   참선하는 데에는 어디에고 마음 쓸 곳이 없어야 한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도를 묻고 대답한 기연을 생각하는데 마음을 쏟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동산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갖가지 묘한 경계를 체험하고도 근본종지(宗旨)를 잃어버려서  본말(本末)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근기(根機)가 되면  함께 도를 이야기 할 자격이 없다.”
   만일 도를 깨달았으면 하나하나가 모두 삼매여서 자기 마음 속에서 흘러 나오게 되니 이러한 깨달음은 사유(思惟)를 조작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정도가 아니다.

33. 공부가 향상되지 않음을 두려워 말라

   공부가 향상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향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공부이다. 옛 스님께서도 "아무 방편도 쓰지 않음이 해탈에 이르는 문이고, 아무 생각도 없음이 깨달은 이의 생각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에 들어가는 모든 방법을 몸소 체득하는 일이니, 공부가 향상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버리면 설사 백천 겁을 태어나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34. 다급한 마음으로 생사(生死)문제에 매달려라.

   의정(疑情)이 막 일어나서 놓을래야 놓을 수 없게 되면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생사(生死)문제를 늘 염두에 두고 마치 호랑이에게 쫓기는듯 다급한 마음이여야 한다. 만약 죽어라고 달려서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래도 어정거릴 것인가?

35. 여러 공안은 천착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하나의 공안에만 마음을 쏟아야지 여러 공안에다가 알음알이를 지어서는 안된다. 비록 많은 공안을 이해하였다고 생각하더라도 결코 깨달은 것은 아니다.
   [법화경]에서는 "이 법은 사량분별로는 깨달을 수 없다" 라고 하였고, [원각경]에서도 "알음알이로 원만하게 깨달은 여래의 경지를 헤아려 보려는 것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동산 스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알음알이로 묘한 깨달음을 배우려 함은 서쪽으로 가려 하면서 동쪽으로 발을 내딛는 짓과 마찬가지이다."
   공안을 참구하는 모든 납자들은 살아서 피가 흐르는 자라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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