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구경에 무명을 얻으십니까?"
   "무명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얻으신 자리이니라. 그러므로 연기법이 바로 도량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한 티끌 한 빛깔이 그대로가 가이 없는 진리의 성품이니라. 발을 들었다 놓는 것이 모두 도량을 여의지 않나니, 도량이란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다만 이 얻은 바 없는 자리를 도량에 앉아 있음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이란 밝음입니까, 어두움입니까?"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움도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서로 바뀌어서 갈아드는 법이니라. 그렇다고 무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밝지 않음이 곧 본래의 밝음이어서,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느니라. 이 한마디 말이 온천하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사리불과 같아서, 모두 함께 헤아려 사량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허공을 벗어나 너희들이 언어 문자로는 따져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과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갑자기 어떤 보살이 출현하여, 한 번 걸터앉으매 모든 삼천대천 세계를 걸터앉아버린다 해도,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본래의 이치를 가지고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겠느냐?"
   "말씀대로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가지만, 방편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무명의 참 성품이니,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니라. 또 방편에 여러 문이 있다는 뜻은, 성문들은 무명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보며, 연각들은 다만 무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보고 무명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여 생각마다 적멸을 증득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종일 생겨나나 그 남이 없음을 보시고, 또 그것이 종일 없어지지만 그 없어짐이 없는 것임을 보아서,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이 곧 대승의 최고 과(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과(果)가 가득 차면 깨달음이 원만하고,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나서, 한발짝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발짝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도다'고 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부르는 것은 이(理)의 측면에도 구족하시고, 사(事)의 측면에도 구족하시며, 나아가 중생에도 구족하시고 나고 죽음에도 구족하시며, 모든 것에 다 구족하시니 구족하시므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생각생각에 부처는 배우려 하면서 중생을 싫어하니, 만약 중생을 싫어하면 이것이야말로 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똥치는 그릇을 들고 희론의 똥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 옛부터 알음알이로 배워서 알려는 마음과 도를 보려는 마음을 없애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마음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면 희론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똥을 내다버린다고 하느니라.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마음을 내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또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절로 큰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분별을 결코 내지 않아서 일체를 모두 분별치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 조계의 문하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옛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을 조금은 행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때문에 행함 없음[無行]이 나의 법문(法門)이니라. 오로지 한 마음의 문일 따름이니, 모든 사람이 이 문에 이르러서는, 모두 감히 들어오지는 못하나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다만 얻은 사람이 적을 뿐이니, 얻은 자는 곧 부처이니라. 편히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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