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변(勘辨)

선어록/임제록 2009. 10. 30. 18:05

감변(勘辨)

1. 호랑이 수염을 뽑다

   황벽스님께서 부엌에 들어갔을 때, 공양주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대중 스님들이 먹을 쌀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얼마를 먹느냐?”
   “두 섬 닷 말을 먹습니다.”
   “너무 많지 않느냐?”
   “오히려 적을까 싶습니다.”
   그러자 황벽스님이 공양주를 때렸다. 공양주가 이 일을 임제스님에게 말씀드리니, 임제스님이
   “내가 그대를 위해 이 늙은이를 점검해 보리라.”하였다. 그리고는 곧 바로 가서 황벽스님을 뵈오니 황벽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먼저 하였다. 임제스님이 황벽스님께
   “공양주가 알지 못하니 스님께서 대신 한 말씀 하십시오. 너무 많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일 한 번 더 먹는다고 왜 말하지 못하느냐?”
   “무엇 때문에 내일을 말씀하십니까? 지금 잡수십시오.”하고 곧 황벽스님을 손바닥으로 쳤다. 황벽스님께서
   “이 미친놈이 또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는구나.” 하셨다. 그러자 임제스님이 “할!”하시고 나가 버렸다.
   
2. 도적에게 집을 맡기는 격이다

   뒷날 위산스님(771-853)께서 앙산스님(803-887)에게 물었다.
   “이 두 존숙들의 참뜻이 무엇이겠는가?”
   “화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식을 길러봐야 부모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대는 어떻게 보는가?”
   “도적을 집에 두었다가 집안을 망쳐놓은 것과 흡사합니다.”

3. 스님 셋을 후려치다

   임제스님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는가?” 라고 물었다.
   그 스님이 “할!”을 하였다.
   임제스님이 허리를 공손히 굽히며 앉게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이 머뭇거리므로 그대로 후려쳤다.
   임제스님이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곧 불자를 세우시니,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 임제스님은 그대로 후려쳤다.
   또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불자를 세우시니, 그 스님이 본 체도 하지 않았는데 임제스님이 이번에도 후려쳤다.

4. 나를 위해 그만 두시오

   임제스님이 보화스님에게 말했다.
   “내가 남방에 있으면서 황벽스님의 편지를 전하려고 위산에 도착했을 때 그대가 먼저 이곳에 와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소.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와서 그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제 황벽의 종지를 세우고자 하니 그대는 반드시 나를 위해서 도와주시오”
   보화 스님은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뒤에 극부 스님이 오자 임제스님은 보화 스님에게 한 말과 똑같이 말했다. 극부 스님 역시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삼일 후에 보화 스님은 다시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스님이 지난 날 무슨 말을 했지요?”
   임제스님은 주장자를 들고서 곧 내리쳤다.
   또 삼일 후에 극부스님이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물었다.
   “스님은 전날 보화스님을 주장자로 내리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임제스님은 역시 주장자로 내리쳤다.
   
5. 너무 과격하다

   임제 스님이 하루는 보화스님과 함께 시주의 집에서 재를 올리는데 참석하였다. 보화 스님에게 물었다.
   “터럭 하나가 온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 한 알에 수미산을 담는다 하는데 이것은 신통묘용인가? 아니면 근본 바탕이 그렇기 때문인가?”
   그러자 보화 스님이 공양을 차린 상을 걷어차 엎어버렸다.
   임제 스님이 “너무 과격하구나!” 하니
   보화 스님께서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길래 과격하다 점잖다 하십니까?” 하였다.
   
   임제스님이 다음날 또 보화스님과 함께 재에 참석하여 물었다.
   “오늘 공양이 왜 어제하고 같은가?”
   보화스님이 전날과 마찬가지로 공양 상을 발로 차 엎어버렸다.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옳다면 옳은 일이지만 너무 과격하다.” 하였다.
   보화스님이
   “이 눈 먼 사람아! 불법에 대해 무슨 과격하다 점잖다 하는가?” 하였다.
   임제스님이 혀를 내둘렀다.
   
6. 범부인가 성인인가

   임제스님이 하루는 하양 장로와 목탑 장로와 함께 승당에 있는 화로 가에서 불을 쬐고 있다가 보화 스님의 이야기를 하였다.
   “보화가 매일 길거리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는데 도대체 그가 범부인가요, 성인인가요?”
   말이 끝나기도 전이 보화 스님이 들어오자 임제 스님이 보화 스님에게 바로 물었다.
   “그대는 범부인가, 성인인가?”
   “그대가 먼저 말씀해 보시오, 내가 범부입니까? 성인입니까?”
   임제 스님이 “할!”을 하니 보화스님이 손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하양은 새색시이고, 목탑은 노파선인데, 임제는 어린 종이다. 그러나 각각 한 개의 눈을 갖추었다.” 하였다.
   임제 스님이
   “야 이 도적놈아!” 하자
   보화스님이
   “도적을 도적질한 놈아!” 하면서 나가 버렸다.

7. 당나귀 한 마리

   하루는 보화스님이 승당 앞에서 생야채를 먹고 있는 모습을  임제스님이 보시고,
   “꼭 한 마리의 당나귀 같구나.” 하셨다. 보화스님이 곧 바로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니
   임제스님이
   “야, 이 도적놈아!” 하였다.
   보화스님이
   “도적을 도적질한 놈아!” 하면서 나가 버렸다.

8. 나는 처음부터 그를 의심하였다

   보화 스님은 항상 거리에서 요령을 흔들며 말하였다.
   “밝음으로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두움으로 오면 어두움으로 치며, 사방 팔면으로 오면 회오리바람처럼 치고, 허공으로 오면 도리깨질로 연거푸 친다.”
   임제 스님이 시자를 보내며
   “보화 스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바로 멱살을 움켜잡고 ‘아무 것도 오지 않을 때는 어찌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라.” 하였다.
   그대로 하자 보화 스님은 시자를 밀쳐 버리면서,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느니라.”고 하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리니 임제 스님이 말씀하였다.
   “나는 벌써부터 그를 의심해 왔다.”

9. 한 노스님을 점검하다

   어떤 한 노스님이 임제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도 나누기 전에
   “절을 해야겠습니까. 절을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임제 스님이 곧 “할!”을 하므로 그 노스님이 곧바로 절을 하였다.
   임제 스님이 “정말 좀도둑이로다.” 하였다.
   그러자 노스님이 “도둑을 도둑질하는 놈.” 하고 나가 버렸다.
   임제 스님이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10. 수좌를 점검하다

   임제 스님이 옆에서 모시고 있는 수좌에게 물었다.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예, 허물이 있습니다.”
   “손님 쪽에 있는가? 주인 쪽에 있는가?”
   “두 쪽에 다 있습니다.”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수좌가 그냥 나가버리니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뒤에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남전 스님에게 말씀드리니 남전 스님께서
   “관군들의 말끼리 서로 차고 밟는 격이다.” 하였다.

11.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임제 스님이 군부대에 재가 있어서 초대를 받아 갔을 때다. 문 앞에서 군인을 만나자 천막 기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이 범부인가? 성인인가?”
   군인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기둥을 두드리며
   “설사 잘 대답했더라도 다만 한낱 나무토막일 뿐이다.”
   하고는 곧 들어가버렸다.

12. 원주와 별좌를 점검하다

   임제 스님이 원주에게 물었다.
   “어딜 갔다 오느냐?”
   “시내에 쌀을 사러 갔다 옵니다.”
   “그래 다 사왔느냐?”
   “예, 다 사왔습니다.”
   임제 스님이 지팡이로 원주의 앞에다 한 획을 그으면서
   “그래, 이것도 살 수 있느냐?” 하였다.
   원주가 곧 “할!”을 하므로 임제스님이 그대로 후려 갈겼다.

   별좌가 오자 임제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별좌가 “원주가 큰스님의 뜻을 몰랐습니다.”하였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떠냐?” 하시니 별좌가 절을 하였다.
   임제스님은 그에게도 역시 후려쳤다.

13. 강사를 점검하다

   어떤 강사스님이 있어서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임제 스님이
   “강사스님은 무슨 경론을 강의하는가?” 라고 물으니
   “저는 아는 것이 모자랍니다. 그저 백법론을 조금 익혔을 뿐입니다.” 하였다.
   임제 스님이
   “한 사람은 삼승 십이분교에 통달하였고, 한 사람은 삼승 십이분교에 통달하지 못하였다면 같은가? 다른가?” 하시니
   강사스님이
   “통달했다면 같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면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낙보 스님이 시자로 있었는데 임제 스님의 뒤에 서 있다가
   “강사스님께서는 여기가 어디라고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십니까?” 하였다.
   임제 스님이 시자를 돌아보시며
   “그래 너는 어떻다고 보느냐?” 라고 물으니, 시자가 곧 “할!”을 하였다.
   임제 스님이 강사스님을 보내고 돌아와서 낙보 스님에게
   “조금 전에 나에게 ‘할’을 하였느냐?” 라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하니 그대로 후려쳤다.

14. 덕산스님을 점검하다

   임제 스님은 제2대 덕산스님이 대중에게 법문을 하면서
   “대답을 해도 30방, 대답을 못해도 30방이다.”라고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시자로 있던 낙보 스님을 보내면서,
   “대답을 했는데 어찌하여 몽둥이 30방입니까? 라고 물어보아라. 그가 만약 너를 때리면 그 몽둥이를 잡아 던져버려라. 그리고 그가 어찌 하는가를 보아라.”라고 시켰다.
   낙보 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여 시킨 대로 물으니,
   덕산 스님이 곧 후려치므로 몽둥이를 붙잡고 던져버리니
   덕산스님이 곧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낙보 스님이 돌아와 임제 스님께 그대로 말씀드리니,
   “나는 이전부터 그 자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는 덕산을 보았는가?”
   낙보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스님이 곧 후려쳐버렸다.

15. 왕상시를 점검하다

   하루는 왕상시가 방문하여 승당 앞에서 임제 스님을 뵙고 여쭈었다.
   “이 승당에 계시는 스님들은 경을 보십니까?”
   “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배우십니까?”
   “선도 배우지 않습니다.”
   “경도 보지 않고 선도 배우지 않는다면 결국 무얼 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게합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하나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를 일개 속인으로만 여겼느니라.”

16. 행산스님을 점검하다

   임제 스님이 행산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넓은 땅의 흰 소입니까?”
   “음매에, 음매에!” 하자,
   “벙어리냐?” 하셨다.
   “장로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니
   “이놈의 축생아!” 하셨다.

17. 낙보스님을 점검하다

   임제 스님이 낙보 스님에게 물었다.
   “예로부터 한 사람은 방을 쓰고 한 사람은 할을 썼는데 누가 친절한가?”
   “둘 다 친절하지 못합니다.”
   “그럼 친절한 것은 어떤 것인가?”
   낙보스님이 “할!”을 하자 임제스님이 후려쳤다.

18. 어떤 스님을 점검하다

   임제스님이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그 스님이 아무런 대꾸가 없으므로
   “알겠는가?” 하시니
   “모르겠습니다.” 하므로
   “곤륜산을 쪼갤 수 없으니 그대에게 돈이나 두어 푼 주겠노라.” 하셨다.

19. 도반인 대각스님이 방문하다

   대각 스님이 와서 뵈었다.
   임제 스님이 불자를 세우니 대각 스님이 좌구를 폈다.
   임제 스님이 불자를 던져버리니 대각 스님이 좌구를 거두어 승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중스님들이
   “이 스님은 큰스님의 친구이신가. 절도 안하고 또 얻어맞지도 않는구나.” 하였다.
   임제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대각 스님을 불러오게 하였다.
   대각 스님이 나오자,
   “대중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아직 참례하지 않았다고 하네.” 하였다.
   그러자 대각 스님이 “안녕하십니까?” 하고는 대중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20. 조주스님이 방문하다

   조주 스님이 행각할 때 선사를 찾아뵈었다. 그 때 발을 씻고 있었는데 조주 스님이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마침 내가 발을 씻고 있는 중이요.”
   조주 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여 듣는 시늉을 하자,
   “다시 또 두 번째 구정물 세례를 퍼부어야겠군요.” 하였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곧 내려가 버렸다.

21. 정상좌가 크게 깨닫다

   정상좌(定上座)가 임제 스님을 뵙고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물으니,
   임제 스님이 자리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쥐고 한 대 후려갈기며 밀쳐버렸다.
   정상좌가 멍하여 우두커니 서 있으니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여! 왜 절을 올리지 않는가?”
   정상좌가 절을 하려는 순간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22. 어느 것이 바른 얼굴인가

   마곡 스님이 임제 스님을 찾아뵙고 좌구를 펴며 물었다.
   “12면 관세음보살은 어느 얼굴이 바른 얼굴입니까?”
   그러자 임제 스님이 자리에서 내려와 한 손으로 좌구를 거두고 한 손으로는 마곡 스님을 붙잡으며,
   “12면 관세음보살이 어디로 갔는가?” 하였다.
   마곡 스님이 몸을 돌려 자리에 앉으려 하므로
   임제 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후려쳤는데
   마곡 스님이 이를 받아 쥐니 서로 붙잡고 방장실로 들어갔다.

23. 여러 가지 할!

   임제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할’은 금강왕의 보검과 같고, 어떤 ‘할’은 땅에 웅크리고 앉은 금빛 사자 같으며, 어떤 ‘할’은 어부가 고기를 찾는 장대 같고 도둑이 그림자를 드리워보는 풀 같고, 어떤 ‘할’은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 스님이 ‘할’을 하였다.

24. 비구니를 점검하다

   임제 스님이 어느 비구니에게 물었다.
   “잘 왔는가? 잘못 왔는가?”
   비구니가 ‘할’을 하자 임제 스님이 주장자를 집어 들고 말씀하였다.
   “다시 일러보아라. 다시 일러보아.”
   비구니가 또 ‘할’을 하자 임제 스님이 곧바로 후려쳤다.

25. 아직 조사의 뜻은 없다

   용아스님이 임제 스님께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나에게 선판을 건네주게.” 하니 용아스님이 바로 선판을 건네 드렸다.
   임제 스님이 받아서 그대로 내리치시므로 용아 스님이 말하였다.
   “치기는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러나 아직은 조사의 뜻은 없습니다.”
   
   용아 스님이 뒤에 취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나에게 좌복을 건네주게.” 하니 바로 좌복을 건네주었다.
   취미 스님이 받아들고 그대로 후려치므로 용아 스님이 말하였다.
   “치기는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러나 아직은 조사의 뜻은 없습니다.”
   
   용아 스님이 임제원에 머무르고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방에 들어와 법문을 청하였다.
   “스님께서 행각하실 때 두 큰스님을 찾아뵈었던 일에 대하여 그 분들을 옳다고 인정하십니까?”
   “인정한다면 깊이 인정하지만 아직 조사의 뜻은 없었네.”

26. 경산스님을 점검하다

   경산문하에 5백 대중이 있었으나 법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을 경산에 가서 보게 하였다.
   “그대는 거기에 가서 어떻게 하겠느냐?”
   “저가 거기에 가면 저절로 방편이 있겠지요.”
   임제 스님이 경산에 이르러 걸망도 풀지 않은 채 법당으로 올라가 경산 스님을 뵈었다.
   경산 스님이 막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임제스님이 “할”을 하였다.
   경산 스님이 무어라고 말하려 하자.
   임제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그대로 가 버렸다.
   그 즉시 어떤 스님이 경산 스님에게
   “저 스님이 왔을 때 무슨 말씀이 있었기에 스님에게 대뜸 ‘할’을 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 스님은 황벽 스님 회하에서 왔는데 그대가 알고 싶으면 그에게 직접 물어보아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난 후 경산의 5백 명 대중이 절반 이상 흩어져버렸다.
   
27. 보화스님의 열반

   보화 스님이 어느 날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장삼[直?] 한 벌을 달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매번 장삼을 주었으나 보화 스님은 그때마다 필요 없다고 하였다.
   임제 스님이 원주를 시켜 관을 하나 사오게 한 뒤 보화 스님이 들어오자 말씀하였다.
   “내가 그대를 위해 장삼을 장만해 두었네.”
   보화 스님이 관을 짊어지고 나가서 온 거리를 돌면서
   “임제 스님이 나에게 장삼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동문으로 가서 열반에 들겠다.”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따라가서 보니 보화 스님이
   “오늘은 아니다. 내일 남문에서 열반에 들리라.”
   이렇게 사흘을 하니 사람들이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흘째 되던 날은 따라와서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성 밖으로 나가 스스로 관 속으로 들어가서 길가는 행인에게 관 뚜껑에 못을 치게 하였다. 삽시간에 말이 퍼져서 시내 사람들이 쫓아가서 관을 열고 보았다. 그런데 몸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만 공중에서 요령소리만 은은히 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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