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行錄)

선어록/임제록 2009. 10. 30. 17:55

행록(行錄)

1.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임제 스님이 처음 황벽 스님의 회하에 있을 때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 순일하였다. 수좌 소임을 보는 목주(睦州) 스님이 찬탄하여 말하기를,
   “비록 후배이긴 하나 다른 대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묻기를,
   “스님이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3년 됩니다.”
   “공부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는가?”
   “아직 묻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장스님을 찾아뵙고 ‘무엇이 불법의 분명한 대의입니까?’ 하고 왜 묻지 않는가?”
   임제 스님이 바로 가서 물으니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벽 스님께서 대뜸 후려쳤다. 임제 스님이 내려오자 수좌가 물었다.
   “법을 물으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내가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상이 느닷없이 때리니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가서 묻도록 하게.”
   임제 스님이 다시 가서 물으니, 황벽 스님이 또 때렸다. 이렇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三度發問 三度被打].
   임제 스님이 돌아와서 수좌에게 말하였다.
   “다행히 자비하심을 입어서 제가 큰스님께 가서 불법을 물었는데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습니다. 장애로 인하여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한탄하고 지금 떠나려고 합니다.”
   “그대가 만약 떠나려하거든 큰스님께 가서 하직 인사나 꼭 하고 가게.”
   임제 스님은 예배하고 물러났다.
   
   수좌가 먼저 황벽스님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법을 물으러 왔던 후배가 대단히 여법(如法)합니다. 만약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거든 방편으로 그를 이끌어 주십시오. 앞으로 잘 다듬으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니 황벽스님이 말씀하였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네는 고안의 물가에 사는 대우스님 처소에 가도록 하여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에게 이르자 대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황벽 스님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황벽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제가 세 번이나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황벽스님이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하여 그대를 위해 뼈에 사무치게 하였거늘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임제 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황벽의 불법이 간단하구나.”
   대우 스님이 멱살을 움켜쥐며,
   “이 오줌싸개 같은 놈! 방금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 이제 와서는 도리어 황벽스님의 불법이 간단하다고 하느냐? 그래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봐라, 빨리 말해!” 하였다.
   이에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이나 쥐어박았다.
   대우 스님이 임제 스님을 밀쳐 버리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을 하직하고 다시 황벽 스님에게 돌아오자 황벽 스님이 보고는,
   “이놈이 왔다 갔다 하기만 하니 언제 공부를 마칠 날이 있겠느냐?”
   “오직 스님의 간절하신 노파심 때문이옵니다.”
   인사를 마치고 곁에 서 있으니 황벽 스님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느냐?”
   “지난번에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듣고 대우 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대우가 무슨 말을 하더냐?”
   임제 스님이 지난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황벽 스님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대우 이놈을 기다렸다가 호되게 한 방 줄까?”
   “무엇 때문에 기다린다 하십니까? 지금 바로 한 방 잡수시지요.” 하며 바로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황벽 스님께서
   “이 미친놈이 다시 와서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구나.” 하였다.
   그러자 임제 스님이 “할”을 하였다.
   황벽 스님이 “시자야, 이 미친놈을 데리고 가서 선방에 집어넣어라.” 하였다.
   
   뒷날 위산 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며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임제가 그때 대우의 힘을 얻었는가? 황벽의 힘을 얻었는가?”
   “범의 머리에 올라앉았을 뿐만 아니라, 범의 꼬리도 잡을 줄 안 것입니다.”

2. 소나무를 심는 뜻

   임제 스님이 소나무를 심고 있는데 황벽 스님께서 물었다.
   “깊은 산 속에 그 많은 나무를 심어서 무얼 하려 하는가?”
   “첫째는 절의 경치를 가꾸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후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하고나서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치니 황벽 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그대는 이미 나에게 30방을 얻어맞았다.”
   임제 스님이 또 다시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치며 “허허!”라고 하니 황벽 스님께서
   “나의 종풍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일어나겠구나.” 하셨다.
   
   뒷날 위산 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며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황벽 스님이 그 당시 임제 한 사람에게만 부촉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있는가?”
   “있습니다만, 연대가 매우 멀어서 스님께 말씀드리지 않으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또한 알고 싶으니 그대는 말해 보아라.”
   “한 사람이 남쪽을 가리켜서 오월지방에서 법령이 행해지다가 큰바람을 만나면 그칠 것입니다.”

3. 무슨 잠꼬대인가

   임제 스님이 덕산 스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덕산 스님이
   “오늘은 피곤하구나.” 하였다.
   이에 임제 스님이
   “이 노장이 무슨 잠꼬대를 하는가?” 하니 덕산 스님이 후려쳤다.
   임제 스님이 의자를 뒤엎어 버렸는데 덕산 스님은 가만히 있었다.

4. 이곳에는 산 채로 매장한다

   임제 스님이 밭을 매는 운력(運力)을 하다가 황벽 스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괭이에 기대어 서 있었다.
   황벽 스님께서
   “이 놈이 피곤한 모양이구나.” 하시니
   “괭이도 아직 들지 않았는데 피곤하다니요.” 하였다.
   황벽 스님이 임제를 후려치자,
   임제가 몽둥이를 잡아 던져버리고 넘어뜨렸다.
   황벽 스님이 유나를 불러 말씀하였다.
   “유나야! 나를 부축해 일으켜다오.”
   유나가 가까이 다가가 부축해 일으켜 드리면서,
   “큰스님! 이 미친놈의 무례한 짓을 어찌 그냥 두십니까?” 하였다.
   황벽스님은 일어나자 마자 유나를 후려갈겼다.
   임제스님이 괭이로 땅을 찍으면서 말하였다.
   “제방에서는 모두 화장을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순간에 생매장을 해버린다.”
   
   뒷날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황벽 스님이 유나를 때린 의도가 무엇인가?”
   “진짜 도둑은 달아나 버렸는데 뒤쫓던 순라군이 얻어맞은 꼴입니다.”

5. 황벽스님이 자기 입을 쥐어박다

   임제 스님이 하루는 큰 방에 앉아 있다가 황벽 스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아버렸다. 황벽 스님이 두려워하는 시늉을 하며 곧 바로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임제 스님이 뒤따라 방장실로 가서 무례하였음을 사과하였다.
   수좌가 황벽 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황벽 스님이
   “이 스님이 비록 후배이긴 하지만 이 일이 있는 줄을 안다.” 하였다.
   수좌가
   “노스님 자신의 발꿈치도 땅에 닿지도 않았는데 도리어 이 후배를 증명[인가]하십니까?” 하였다.
   황벽 스님이 스스로 자기 입을 한 대 쥐어박으니,
   수좌가 “아셨으면 됐습니다.”라고 하였다.

6. 이 노장이 무슨 수작인가

   임제 스님이 방에서 졸고 있는데 황벽 스님께서 내려와서 보시고 주장자로 선판을 한 번 두드렸다.
   임제 스님이 고개를 들어 황벽 스님인 것을 보고서도 다시 졸자 황벽 스님이 다시 선판을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윗자리로 가서 수좌가 좌선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아래 자리의 후배는 좌선을 하는데 그대는 여기서 무슨 망상을 피우고 있느냐?”
   그러자 수좌가
   “이 노장이 무슨 수작이야!” 하니,
   황벽 스님은 선판을 한 번 두드리고 나가버렸다.
   
   뒷날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이 선방에 들어갔던 뜻이 무엇인가?”
   “한 개 주사위의 두 가지 그림입니다.”

7. 많은 사람이 운력하리라

   하루는 대중이 운력을 하는데 임제 스님이 맨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황벽 스님이 고개를 돌려보니 임제 스님이 빈손으로 오길래
   “괭이는 어디 있느냐?” 라고 물었다.
   “어떤 사람이 가져갔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대와 이 일을 의논해 보자.”
   임제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오자. 황벽스님이 괭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씀하였다.
   “다만 이것은 천하 사람들이 잡아 세우려 해도 일으키지 못한다.”
   임제 스님이 손을 뻗쳐 낚아채서 잡아 세우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은 제 손 안에 있습니까?” 하니 황벽 스님께서
   “오늘은 대단한 사람이 운력을 하는구나.” 하시며 절로 돌아가 버렸다.
   
   뒷날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괭이가 황벽 스님의 손에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임제한테 빼앗겼느냐?”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도둑은 소인이지만 지혜는 군자를 능가합니다.”

8. 이 일을 안다면 그만 둡시다

   임제 스님이 황벽 스님의 편지를 전하려 위산스님에게 갔었다. 그때 앙산 스님이 지객 소임을 보고 있었는데, 편지를 받으며 물었다.
   “이것은 황벽 스님의 것이다. 그대의 것은 어느 것인가?”
   임제 스님이 손바닥으로 후려갈기자,
   앙산 스님이 그를 붙잡으며 말하였다.
   “노형께서 이 일을 아신 바에야 그만둡시다.”
   둘이 함께 가서 위산 스님을 뵈오니 위산 스님이 물었다.
   “황벽 사형께서는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7백 대중입니다.”
   “누가 우두머리인가요?”
   “방금 전에 이미 편지를 전해 드렸습니다.”
   임제 스님이 도리어 위산 스님에게 물었다.
   “이 곳 큰스님의 회하에는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일천 5백 대중이라네.”
   “매우 많군요.”
   “황벽 사형께서도 적지 않으시구나.”
   
   임제 스님이 위산 스님을 하직하고 나오니 앙산 스님이 전송하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뒷날 북쪽으로 가면 머무르실 곳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가시기만 하면 한 사람이 노형을 보좌해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머리만 있고 꼬리는 없으며, 시작은 있고 끝은 없을 것입니다.”
   임제 스님이 뒷날 진주에 이르자, 보화 스님이 이미 거기에 와 있었다. 임제 스님이 세상에 알려지자 보화 스님이 도와 드렸다. 임제 스님이 진주에 머무신지 오래지 않아 전신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 버렸다.

9. 검은 콩을 주어먹는 스님

   임제 스님이 여름철 안거 중간에 황벽산에 올라갔다가 황벽 스님께서 경을 읽고 계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저는 스님이 그럴싸한 분으로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검정콩이나 주워 먹는 노스님이군요.”
   며칠을 머물다가 하직 인사를 드리러 가니,
   “그대는 여름 안거를 깨뜨리고 오더니, 결국 여름 안거를 마치지도 않고 가려 하는가?” 하시므로,
   “저는 스님께 잠시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하였다.
   황벽 스님께서는 임제 스님을 후려갈겨 내쫓아 버렸다.
   임제 스님이 몇 리를 가다가 이 일을 의심하고 다시 돌아와 그 여름 안거를 마쳤다.
   
10. 천하 사람들의 입을 막으리라

   임제 스님이 어느 날 황벽 스님을 하직하니, 황벽 스님께서 물었다.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하남이 아니면 하북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황벽 스님이 곧바로 후려치자, 임제 스님이 그를 잡고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이에 황벽 스님이 큰 소리로 웃으며 시자를 불렀다.
   “백장 큰스님이 물려준 선판과 경상을 가져오너라.” 하시니
   임제 스님이
   “시자야! 그것을 불살라 버려라.” 하였다.
   황벽 스님이 말하였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그냥 가져가거라. 나중에 앉은 자리에서 천하 사람들의 입을 막게 할 것이다.”
   
   뒷날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임제가 황벽 스님을 저버린 게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은혜를 알아야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법입니다.”
   “옛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우가 있었는가?”
   “있습니다만 너무 오래된 일이라 스님께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나 나도 알고 싶으니 말해 보아라.”
   “다만 저 능엄회상에서 아난이 부처님을 찬탄하기를, ‘이 깊은 마음으로 먼지 같이 많은 국토를 받드는 것이 곧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 어찌 은혜를 갚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렇다. 견해가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덕을 반이나 감하는 것이고, 견해가 스승보다 나아야만 비로소 법을 전해줄 만하다.”

11. 부처와 조사에게 다 예배하지 않는다

   임제 스님이 달마 조사의 탑전에 이르렀는데 탑을 관리하는 스님이 말하였다.
   “장로께서는 부처님께 먼저 절하십니까? 조사에게 먼저 절하십니까?”
   “부처와 조사에게 다 절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과 조사가 장로에게 무슨 원수라도 됩니까?”
   임제 스님이 곧바로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12. 오늘은 낭패를 보았다

   임제 스님이 행각할 때 용광 스님이 계시는 곳에 이르렀는데, 용광 스님이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하고 있었으므로 임제 스님이 물었다.
   “칼을 뽑지 않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습니까?”
   용광 스님이 묵묵히 않아 있자 임제 스님이 말하였다.
   “큰 선지식께서 어찌 방편이 없으십니까?”
   용광 스님이 눈을 크게 뜨고 쉰 목소리로 “사!”하니,
   임제 스님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늙은이가 오늘 낭패를 보았구나.”

13. 앉아서 차나 들게

   삼봉에 갔을 때 평화상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황벽 스님의 회하에서 왔습니다.”
   “황벽 스님은 어떤 법문을 하시는가?”
   “금빛 소가 간밤에 진창에 빠져 아직까지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가을바람이 옥피리를 분다. 누가 이 소리를 아는가?”
   “곧바로 만 겹 관문을 뚫으니 맑은 하늘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대의 한마디 물음이 매우 높구나.”
   “용이 금빛 봉황의 새끼를 낳으니 유리빛 푸른 창공을 뚫고 날아갑니다.”
   “자, 앉아서 차나 들게.” 하셨다.
   
   평화상이 다시 물었다.
   “근래에는 어디에 왔는가?”
   “용광 스님이 계시는 곳에서 왔습니다.”
   “용광 스님은 요즈음 어떠하시던가?”
   임제 스님은 곧바로 나가버렸다.

14. 삼산이 만 겹의 관문을 가두어 버렸다

   대자 스님이 계신 곳에 갔을 때, 대자 스님이 방장실에 앉아 계셨는데 임제 스님이 여쭈었다.
   “방장실에 단정히 앉아 계실 때는 어떻습니까?”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는 한결 같아서 그 푸른빛이 천 년을 빼어났고, 시골의 노인이 꽃을 꺾어 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고금에 길이 뛰어난 크고 원만한 지혜의 본체여, 삼산(三山)이 만 겹의 관문을 가두어 버렸더라.”
   대자 스님이 대뜸 “할!”을 하시니, 임제 스님도 “할!”을 하셨다.
   대자 스님이 “어떤가?” 하시니, 임제 스님은 소매를 떨치며 가버렸다.

15. 훌륭한 선객은 정말 다르구나

   양주의 화엄 스님에게 갔을 때, 화엄 스님이 주장자에 기대어 조는 시늉을 하였다.
   임제스님이
   “노스님께서 졸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훌륭한 선객은 정말 다르구나.”
   “시자야! 차를 다려 와서 큰스님께서 드시도록 하여라.”
   화엄 스님이 유나를 불러
   “이 스님을 셋째 자리에 모시도록 하여라.” 하였다.

16. 화살이 서천을 지나갔다

   임제 스님이 취봉 스님 계신 곳에 이르자 취봉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황벽 스님 회하에서 왔습니다.”
   “황벽 스님은 어떤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하시는가?”
   “황벽 스님은 법문이 없으십니다.”
   “어째서 없는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소개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쨌든 한 번 말해 보아라.”
   “화살이 서천을 지나가 버렸습니다.”

17. 여기서 무슨 밥그릇을 찾는가

   임제 스님이 상전 스님 계신 곳에 이르러 물었다.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니 스님께서는 빨리 말씀해주십시오.”
   “노승은 그저 이럴 뿐이네.”
   임제 스님이 곧 “할!”을 하며 말하였다.
   “허다한 머리 깎은 이들아, 여기에서 무슨 밥그릇을 찾고 있는가?”

18. 짚신만 떨어뜨릴 뿐이다

   명화 스님이 계신 곳에 이르자 명화 스님이 물었다.
   “왔다 갔다 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저 쓸데없이 짚신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결국 어쩌겠다는 말인가?”
   “이 노인네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19. 노파의 거량

   스님이 봉림 스님에게 가던 도중 어떤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봉림 스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봉림 스님은 마침 계시지 않습니다.”
   “어딜 가셨습니까?” 하였는데 노파가 그냥 가니까 임제 스님이 불렀다.
   노파가 고개를 돌리자 임제 스님이 곧 후려쳤다.

20. 봉림과의 시문답(詩問答)

   임제 스님이 봉림스님이 계신 곳에 이르자 봉림 스님이 물었다.
   “물어 볼 것이 있는데 괜찮겠는가?”
   “무엇 때문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십니까?”
   “바다에 비친 달이 너무나 밝아서 그림자가 하나도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제 스스로 미혹할 뿐이다.”
   “바다에 비친 달은 이미 그림자가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미혹할 리 있겠습니까?”
   “바람을 보아 물결이 이는 것을 알고, 물을 보고 작은 배에 돛을 올린다.”
   “외로운 달이 홀로 비치어 강산은 고요한데, 혼자서 웃는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하는군요.”   
   “세 치 혀를 가지고 천지를 비추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나, 기틀에 맞는 한마디를 던져 보시게.”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쳐야 하지만, 시인이 아니면 시를 말하지 마십시오.”
   봉림 스님이 거기서 그만두자 임제 스님이 게송을 하였다.
   “큰 도는 철저히 동일해서 동쪽과 서쪽을 마음대로 향함이라. 부싯돌의 불도 따라잡지 못하고 번갯불도 통하지 못하도다.”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부싯돌의 불빛도 미칠 수 없고 번갯불도 통할 수 없는데 옛날부터 여러 성인들께서는 무엇으로 학인들을 지도하였는가?”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은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대는 어떤가?”
   “공적으로는 바늘 하나도 용납할 수 없지만 사적으로는 수레나 말까지도 통합니다.”

21. 오늘은 운수가 나쁘다

   금우 스님 계신 곳에 이르자, 금우 스님이 임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주장자를 가로 누인 체 문에 걸터앉아 있었다. 임제 스님이 손으로 주장자를 세 번 두드리고 선방으로 들어가 첫 번째 자리에 앉으니 금우스님이 내려와 보고 물었다.
   “손님과 주인이 만나면 서로 예의를 차려야 하는데, 상좌는 어디서 왔기에 이다지도 무례한가?”
   “노스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금우 스님이 입을 열려는데 임제 스님이 곧바로 후려쳤다.
   금우 스님이 넘어지는 시늉을 하는데 임제 스님이 또 치니 금우스님이 말하였다.
   “오늘은 운수가 나쁘다.”
   
   위산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이 두 큰스님 중에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느냐?”
   “이겼다면 다 이겼고, 졌다면 다 졌습니다.”

22. 임제스님이 열반할 때

   임제 스님이 열반하실 때 자리에 앉으셔서 말씀하였다.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삼성 스님이 나와서 사뢰었다.
   “어찌 감히 큰스님의 정법안장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후에 누가 그대에게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 주겠느냐?”
   삼성 스님이 “할!”을 하므로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 먼 나귀한테서 없어질 줄 누가 알겠는가?”
   말을 마치시고 단정하게 앉으신 채 열반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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