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比 스님 임제록 강설에서 無比 스님의 강설 부분을 제외한 임제록 원문의 해석만을 추린 것입니다. 강설 부분은
無比 스님의 카페 염화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서(序)
진주 임제혜조선사 어록 서문

   연강전의 학사이며, 금자광록의 대부며, 진정부로의 안무사요, 겸하여 마보군의 도총관이며, 겸하여 지성덕군의 부사인 마방이 쓰다.

   임제 스님은 황백 스님에게 일찍이 매서운 몽둥이를 얻어맞았다. 그리고는 대우 스님의 옆구리에 비로소 주먹질을 할 수 있었다.
   말 잘하는 노파 대우 스님은 “이 오줌싸개 어린 놈”이라 했고, 황벽 스님은 “이 미친놈이 또다시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고 있어!”라고 했다.
   
   임제 스님이 험한 골짜기에 소나무를 심은 것은 후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것이요, 또 괭이로 땅을 팠으니 황벽 스님은 거의 산 채로 생매장 당할 뻔했다.

   황벽 스님은 후생(後生) 임제 스님을 인가하다가 갑자기 입을 스스로 쥐어박았다. 임제 스님은 황벽 스님과 하직하고 떠날 때 법을 전한 것을 증명하는 경상[机案]을 주어도 받지 않고 오히려 불사르라 하였다. 그러나 황벽 스님은 가져가서 천하 사람들의 논란을 차단하게 하라고 하였다.

   하남 지방이 아니면 하북 지방으로 돌아감이며, 임제원은 옛 나루터에 임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요새(要塞)가 되는 나루터를 지키고 있으니 그 절벽의 높이는 만길이나 되고, 사람도 빼앗고 경계도 빼앗는 수단으로 선타바를 만들어 낸다.
   삼요삼현으로 수행납자들을 단련하였고, 항상 집안에 있으면서 길거리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무위진인이 얼굴을 통해 출입하고, 두 집의 수좌가 동시에 ‘할’을 함에 주객이 분명하다.
   비춤과 작용이 동시(同詩)라. 본래 앞뒤가 없고, 거울[菱花]은 만상을 비추고 빈 골짜기에는 메아리를 전하네.
   신묘하게 대응하는 솜씨는 종잡을 수 없어서 그 자취를 남기지 않았도다.
   
   옷깃을 가다듬고 남쪽으로 내려가 대명부에 머무르니, 홍화 스님은 임제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사람이라 스님을 동당에 모시니라. 구리로 된 물병과 쇠로 만든 발우뿐이요, 방문을 걸고 말을 하지 않았다. 소나무는 이미 늙었고 구름은 한가하여 시원스레 유유자적하도다.
   면벽하고 앉으신지 오래지 않아 은밀히 입멸 후의 뒷일을 부촉하였다. "정법을 누가 전할 것인가. 눈 먼 당나귀에게서 없어지리라." 하셨다.
    
   원각종연 스님이 이제 이 임제록을 유통하려 하기에 점검해 보니 아무런 잘못이 없도다. 오직 일할(一喝)을 남겨 놓고 헤아려 보기를 바라노니, 눈을 갖춘 선사들은 바라건대 잘못 거량하지 말라.
    
   선화경자(宣和庚子) 중추일에 삼가 서문을 쓰다.

   진주 임제혜조선사 어록
   삼성사에 사는 법을 이은 소사(小師) 혜연(慧然)이 수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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