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오염수(不汚染修)

   대사가 말씀하셨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씀드린다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아 증득[修證]하는가?"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오염(汚染)될 수는 없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不汚染]은 모든 부처님께선 호념(護念)하시는 바라, 네가 벌써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니라."

師曰 什?物 恁?來 曰說似一物 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
如是 吾亦如是-德.宗 三五 九(78)

   *불오염(不汚染)을 육조는 무념이라고 하였으며, 무념은 내외명철인 불지(佛地)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불지무념이 아니면 불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오염은 제불의 호념하는 바이며, 너도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도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행을 수행[修行佛行]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면 수증(修證 닦아 증득함)이란 무슨 말인가?
   옛 조사들은 이 불오염의 수증을 점차수증(漸次修證 점차로 닦아 증득함)이 아니요, 불지인 원증(圓證) 후의 원수(圓修)라고 하여, 착의끽반(着衣喫飯 옷 입고 밥 먹음), 소지분향(掃地焚香 땅을 쓸고 향을 사룸) 등을 지칭하는 바, <털끝만큼도 닦고 배우는 마음이 없고, 모양 없는 빛 속에서 항상 자재하다[不起纖毫修學心하고 無相光中常自在라]>고 한 것이다.
   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이 수증을 점수사상에 배합하여 망상을 닦아 다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이 불오염을 모르는 큰 잘못으로서, 육조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수문에서도 불오염을 주장하기는 하나, 점수문의 돈오는 '육진의 번뇌가 전과 다름 없어서[客塵煩惱 如前無殊]' 무념이 아니므로 생각 생각 오염되어 불오염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념을 돈증(頓證 단박에 깨침)하기 전의 수행은 모두 오염수(汚染修)인 것이다. 비록 망념이 본래 공(空)한 것은 안다 하여도, 망념이 계속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므로 경계를 따라 생각이 일어나[遇境生念] 전전(轉轉)히 오염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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