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極小同大하야 忘絶境界하고
    극소동대 망절경계

   어떻게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을 수 있는가? 이는 조그마한 좁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간다는 의미인데, 시방세계 속에 좁쌀이 들어간다는 말은 알기 쉽지만, 좁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간다 하면 상식적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원융무애하여 상대가 끊어진 세계는 조그마한 좁쌀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상대적인 경계가 끊어져 한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계가 있으면 작은 좁쌀에도 한계가 있고 시방세계도 한계가 있으니 작은 좁쌀 속에 어떻게 큰 시방세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는 한계가 없으므로 조그마한 좁쌀 속에 큰 시방세계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좁쌀이 큰 시방세계로서, 온 시방세계가 좁쌀 속에 모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고 작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경계가 있다면 좁쌀 속에 어찌 시방세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67.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極大同小하야 不見邊表라
    극대동소 불견변표

   지극히 커도 작은 것과 동일하여, 가도 없고 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이 큰 것과 같다' 함과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다' 함은 쌍조(雙照)를 말한 것이며, '경계가 끊어졌다' 함과 '끝과 겉을 볼 수 없다' 함은 쌍차를 말한 것으로 모두 양변을 여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쌍차쌍조(雙遮雙照)가 되면 둘 아닌 세계(不二世界)에 들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67.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有卽是無요 無卽是有니
    유즉시무 무즉시유

   있음과 없음이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이 가장 통하기 어려우나 진여법계에서는 모든 것이 원융하여 무애자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69.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若不如此인댄 不必須守니라
    약불여차 불필수수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닌 진여법계를 우리가 실제로 바로 깨치면,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인 둘 아닌 세계로 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하기 전에는 불법(佛法)이라 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70.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一卽一切요 一切卽一이니
    일즉일체 일체즉일

   하나는 작은 하나이며 일체는 커다란 전체입니다. 진여법계에서는 하나가 곧 많음이고 많음이 바로 하나로서 하나와 많음이 서로서로 통하여,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바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71.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但能如是하면 何慮不畢가
    단능여시 하려불필

   일체 진리를 깨치고 나면 일체 원리를 모두 성취하여 버렸다는 말이니, 결국 이것은 우리의 자성자리, 곧 법계실상(法界實相)을 얘기한 것입니다.

   72.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信心不二요 不二信心이니
    신심불이 불이신심

   그러면 이 진여법계를 무엇으로 깨치느냐 하면 바로 신심(信心) 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심(信心)은 범부에서부터 부처가 될 때까지 모두가 신심(信心)뿐인 것이니, 이는 신(信) 해(解) 오(悟) 증(證)을 함께 겸한 신심(信心)입니다. 그러므로 신심은 불법진여의 근본으로서 그것은 둘이 아니며, 모든 것이 원융하여 쌍조가 되어서 '둘 아님이 신심(信心)'이라 하였습니다. '둘 아님이 신심(信心)'이니 거기서는 아무 상대도 없고 무애자재만 남게 됩니다.

   73.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로다.
    言語道斷하야 非去來今이로다
    언어도단 비거래금

   그 깊고 오묘한 도리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 없고,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三世)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의 길이 끊겼다'하니 벙어리의 세계냐고 할지 모르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인 언어의 길은 끊겼지만 원융무애한 진여법계에서는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해도 한마디 한마디가 무한한 진리로서 모든 것이 다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삼세가 없다' 하지만 삼세가 끊어진 곳에 삼세가 분명하여 과거 속에 미래가 있고 미래 속에 과거가 있으며, 현재 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 속에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동시에 과거 속에 미래가 미래 속에 현재가 원융하여 무애자재한 진여법계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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