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술년(甲戌年) 동안거 법보신문과의 문답
    
문 : 큰스님, 건강하신 것 같아 마음이 좋습니다. 요즈음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답 :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지냅니다. 그곳엔 수좌가 한 30여명 있는데, 그들과 하루 4시간쯤 선방에서 정진하고, 아침공양 후에는 개별적으로 수좌들을 맞아 답을 해주고 그럽니다.    

문 : 큰스님의 출가 동기가 몹시 궁금합니다.        
답 : 나의 출가 동기는 숙세의 두터운 인연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는 경남 남해에서 출생했는데, 스물 한 살때 인가 마을 근처 해관암(海觀庵)이라는 절에 설석우 스님이 정초 법문을 한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 출가 인연이 됐어요. 그런데 첫친견 자리에서 설석우 스님께서 내 나이를 묻고 이것 저것 물으시더니
   "세상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하시는 거라. 그래 그 값진 생활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니까  
   "범부(凡夫)가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고 거듭 권유하십디다. 그래 그 길로 스님들의 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후 환희심을 느껴 출가를 했었지.        

문 : 은사 설석우 스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답 : 설석우 스님은 서른 일곱에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한 큰스님입니다. 출가 전엔 '설약국'이라고 해서 유명한 약방을 운영하셨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한 대선비였지요. 정화 이전 모든 사판승들도 '절집의 재상은 설석우 스님'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또  스님은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분입니다. 금강산에서 6.25사변 직전에 지리산 칠불사에 오셔서 대중과 함께 기거하시다가 당시 지리산 토벌 사건을 미리 아시고 남해 해관암으로 옮기셨지요. 나중에 해인사 조실로 계셨고, 정화 후에는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내셨습니다. 그후 동화사에 주석하시며 많은 후학을 지도하셨지요. 특히 큰스님의 임종게는 아주 좋습니다. 내 오늘 특별히 소개하지요.        

주머니에 하늘과 땅을 잡아 넣어서 시방 밖에다 던져 버리고,
소매 가운데에 해와 달을 따 넣어 감춰버림이라.        
종 한 소리 떨어지매 뜬 구름이 흩어지니.        
일만 푸른 산봉우리 이미 다 석양이라.        

囊括乾坤方外擲杖挑日月袖中藏        
一聲鍾落浮雲散萬朶靑山正夕陽이라.        

문: 큰스님과 향곡선사와의 인연은 어떤 계기로  맺어진 것입니까?  
답 : 내가 스물 한살 때 중이 된 이후 석우 스님 밑에서 4년간 공부를 한 후 선산 도리사에서 공부를 하던 중 망지견(妄知見)이 나서 월내 관음사의 향곡선사를 찾아가 법을 물은 일이 있었지요. 그게 인연의 시작이 된 셈입니다. 당시 향곡선사께서 법을 물으시매,  답을 해도 모두 다 아니라고 그래요. 그래도 제방(諸方)에서 계속 공부를 더한 후 오대산 상원사에서 겨울 안거를 나던 어느날, 그날은 유난히 날이 따뜻했었는데 문득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이 생겨나요. '내가 공부를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백지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향곡선사를 찾아가서 사생결단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화두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를 받아 참구를 했지요. 즉 '한 스님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입으로 가지를 문 채 매달려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달마대사가 서역에서  중국에 온 뜻을 물으니, 대답을 하면 떨어져 죽을 것이고 대답을  안하려니 모르는게 되고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내용의 화두지요, 이 화두를 2년간 참구하여 결국 해결을 했지요. 그래 향곡선사와 스승 제자가 되었습니다        

문 : '한국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답 : 선법(禪法)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 한국으로 전해졌는데, 당당한 진미의 기풍은 오직 한 가닥 한국에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온 국민의 영광이지요.        

문 : 큰스님께선 부처님 법을 이은 제 79조 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큰스님의 경우처럼 법맥을 잇고 있다고 말하는 스님이 또 있는 줄 압니다. 이를 어찌 보아야 할까요?        
답 : 법맥은 여러 갈래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조선사나 행사선사 밑에도 여러 제자가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얼마만큼 날카롭고 바른 안목을 잇는 상수전법(上首戰法)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자 굴에 사자 새끼가 나는 게 아니겠나.        

문 : 큰스님, 깨달음이란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답 : 깨달음은 곧 견성(見性)이라. 심성을 보는 것이지요. 심성을 바로 알았기 때문에 8만 4천가지 법을 아는 것이거든. 견성하면 일체가 차별이 없어천차만별이 다 한 가지라. 밝은 대낮에 사물을  보면 열 사람이 다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두운 밤에 보면 다 제각기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백일하에 심성을 본다면 일체 시비장단이 없는 것이라.        

문 : 만약  큰스님의 깨달음의 경계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답  : 오구진일(五九盡日)에 우봉춘(又逢春)이라. '오구가 다한 날에 또한 봄을 만남이로다'라고 말하겠어.        

문 : 큰스님, 간화선(看話禪)이 아닌 염불선(念佛禪)이나 위빠사나선으로서는 견성할 수 없습니까?        
답 : 간화선에 비하면 우열의 차등이 있지요.        

문 : 간화선이 최선이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답 : 간화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동시에 의심이 병행되거든. 제목과 함께 의심이 오매불망하면 의심삼매, 일념삼매의 경계에 이르게 되고 그럴 때 전후지(前後地) 일체분별이 사라지게 되지요. 의심과 화두 제목은 수레의 양쪽 바퀴마냥 항상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서 의심이 커지고 화두일념이 되면 깨달음이 열리는 것이라. 불조(佛祖)가 다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다른 수행법은 이러한  생명력이 미약하지요. 온천지가 의심 덩어리가 될 때 크게 깨달음이 열리지.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는 원리가 다 여기서 나온 것이라.        

문 : 염불이나 교학으로도 성불이 안되는 것입니까?        
답 : 안됩니다. 절대 가능하지 않아요.        

문 : 큰스님은 약 40여년간 출가 수행 해오셨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장애가 있었을 줄 압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답 : 나는 수행 과정이 아주 순탄했습니다. 발심할 때 좋은 스승(설 스님)을 만나 신심을 길렀고, 마음 공부할 때  밝은 스승(향곡 스님)을 만나 철방망이를 맞았으며, 세상의 모든 습기가 근접할 수 없는 그런 수행 생활을 해 온 셈이지요. 아마도 절집의 좋은 인연은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 다 선근공덕(善根功德)을 타고 난 덕이라 생각됩니다.        

문 : 오늘날 젊은 수행자들의 수행 자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답 : 요즈음 수좌들은 끈기가 부족해요. 공부하는 동안은 바위어야 합니다. 그러데 석달이 멀어라 하고 움직이려 하지. 다 깨달을 때까지 꿈쩍 않겠다는 근성이 필요합니다. 그래 앞으로 동화사 금당에선 5개월 결제 1개월 해제를 할 생각입니다.    

문 : 금당선원을 이끌어 나갈 계획이 있으시다면 밝혀 주십시오.
답 : 금당선원은 역대 선지식이 거의 다 수행하며 정지견(正知見)을 얻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참선 도량입니다. 그런데 여러사정으로 한 20여년 방치되어 있었지요. 나는 다시 금당을 선(禪)정진 도량으로 가꿔나갈 것입니다. 금당에서 안목 있는 이가 많이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문 : 큰스님, 세속 생활을 하면서 참선 정진을 잘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답 : 참선엔 출가(出家)와 재가(在家) 구분이 있을 수 없어요. 밥 먹을 줄 알면 누구나 참선을 할 수 있어요. 화두를 늘 간직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지. 방거사(龐居士) 같은 이도 있지 않습니까?        

문 : 오늘날 종교 인구는 늘어가는데 사회는 갈수록 혼탁해 갑니다. 불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답 : 바른 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오직 참선법(參禪法)만이 그 치유책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지도층부터 참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참선이 국민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먼저 깨달은 선지식이 많이 배출되어야겠지.    

문 : 큰스님과 늘 가깝게 교유하며 지내는 도반 스님이 계십니까?      
답 : 뜻이 통하는 도반은 드물지요.        

문 : 끝으로 후학들에게 경책의 말씀을 해 주시지요.        
답 : 수행의 근본은 '나'를 앞세워선 안되는 것이지. 일체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 출가의 본분사에 전생애를 쏟아야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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