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오년(庚午年) 4月 수선회(현담)와의 문답

문 : 평상심(平常心)이란 무엇입니까?
답 : 먹고 자고 하는 일상생활 그대로가 평상심이지.

문 :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평상심입니까?
답 : 그렇지.

문 : 도인들의 평상심과 속인들의 평상심은 어떻게 다른가요?
답 : 도인과 범부는 다르지. 중생은 모든 생활에 일일이 집착을 하는 반면에, 도인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지. 평상심이라는 것은 도인의 깨달은 경계를 생활화 하는 것이지.

문 :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말과 생사가 없다는 것은 다릅니까?
답 :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생(生)하는 이치나 사(死)하는 이치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시 진리 자체에는 생도 사도 없다.

문 : 깨닫고 나면 작용하는 망상이나 생각이 없습니까?
답 : 그대로 진법(眞法)으로 돌아가는 거지.

문 : 그러니까 망상 그대로가 보리(普提)가 된다는 것입니까?
답 : 망상이란 자체가 없는 것이지.

문 : 욕심(慾心)과 탐심(貪心)의 차이는 어떠한지요?
답 : 오십보백보지.

문 :  스님들께서는 무심(無心)으로 소유욕 없이 살아가라고 하시는데 중생들이 소유욕 없이 무심으로 살 수 있습니까?
답 : 그럴 수 있지. 참 나를 알면 온 법계(法界)를 알고 온 중생과 한 몸이 되어 절대 평등이 되게 되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견성을 하면 지상이 불국토가 되고, 모든 백성이 부모 형제로 한 몸이 되어서 아귀 다툼이 없고 항상 평온하고 안락하게 되지.

문 :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바르게 믿어야 한다는데 중생은 눈이 없는데 어떻게 선지식을 바르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답 : 중생은 안목이 없기 때문에 바른 선지식을 가리기가 어렵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스승에게 탁마(琢磨)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거든. 혼자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고 스승에게서 인가를 받은 분을 따르면 백 생애를 닦아야 할 것을 한 생에 바르게 닦아 깨치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이 사람도 선지식이고 저 사람도 선지식이라고 쫓아다니다 보면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정진(精進)에 진척이 없고 업(業)에다가 업을 더 보태게 되지. 그래서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멀어져서 깨달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야.

문 :  결국 본인이 정진을 해서 닦아야 하는 것이지, 눈 없는 사람은 선지식을 가리지 못하겠네요?
답 : 그렇지 , 안목이 없이는 상대를 바로 볼 수 없지.

문 : 금강경에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버리라고 하는데, 중생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고 생활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답 : 중생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참으로 올바르고 건전한 생활은 내가 없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

문 : 아상(我相)이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수행한 것이 제일이다, 내 법이 제일이다, 내가 잘났다, 내가 잘한다, 내가 많이 안다, 내가 많이 가졌다 하는 것이 다 아상에 속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처님법에는 대오(大悟)하면 이런 것이 없게 되지.

문 : 재가자(在家者)는 어떻게 해야 참답게 사는 것입니까?
답 :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자기를 계발(啓發)하는 수행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가운데 직분에 따라 성실하게 사는 것이 참답게 사는 길이지.

문 :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재가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답 :  참선을 하는 사람이 혼자서 사는 것은 좋은 것이지. 참 나를 알기 위해서 그 길을 가는 것이고. 아주 값진 생활이지.

문 : 출자가와 재가자의 수행에 있어서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답 : 출가자는 혼자의 몸으로 홀가분하고, 재가자는 처자가 있어서 생활을 하여야 하니까 번거롭지. 그러나 최상승법에서는 바른 신심으로 바른 법을 구하는 철두철미한 생각을 갖고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수행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승속(僧俗)에 관계가 없지.

문 : 총림(叢林)으로 출가를 하는 것이 좋습니까?
답 : 안목이 근본인데 총림의 방장이라도 모두 안목이 투철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한국 불교의 현실이거든. 절이 크다고 해서 일등 수행인이 사는 것은 아니야.

문 : 출가하는 사람은 어떠한 곳으로 출가를 하여야 합니까?
답 : 참 나를 발견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선지식(善知識)이 근본이다. 선지식은 부처님의 대행인(大行人)이야. 출가는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거든.

문 : 꿈과 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 : 잠으로 인해서 꿈을 꾸는 거지.

문 : 그럼, 꿈과 잠이 똑같은 것입니까?
답 :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이 없는 법이거든. 망상이 있는 중생이 망상이 그대로 꿈이 되는 것이지.

문 : 음욕심(性欲)은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답 : 전생의 습기로 축생이나 사람이나 다 익힌 것이지. 다겁생에 익힌 것으로 아주 예민한데 이것을 제하려면 정진을 해서 일념삼매가 되어야 하지. 좋고 나쁜 것이 차단이 되어서 깨달으면 모든 습기가 일시에 다 제거가 되지.

문 :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 이치로는 깨달았어도 습기는 제하지 못했다)라 하셨는데요.
답 : 그것은 모순이지. 육조 대사도 금을 캐어 녹여서 잡금을 제하면 순금이 된다고 하셨지. 물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순금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견성을 하면 습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 번뇌가 곧 보리, 완전한 진리로 돌아갔는데 번뇌에 놀아나게 되겠는가.

문 : 낮에는 화두가 잘 되는데 꿈 속에 화두가 안되는 이유는?
답 : 아주 간절하게 참 의심이 순일되어야 꿈 속에서도 화두가 이어지게 되지.

문 : 조실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화두가 꿈 속에서도 이어졌나요?
답 : 나는 결제, 해제에 관계없이 정진을 했었지. 아주 간절한 일념이 지속되다가 깨달았지.

문 : 잠깐 사이에 깨치셨습니까?
답 ; 잠깐 사이가 아니고 아주 간절하게 일념으로 화두의심이 지속되다가 깨쳤지.

문 : 시간적으로 얼마나 됩니까?
답 : 모르겠다.

문 ; 며칠 간은 일념이 지속된 것이지요?
답 : 전 생애를 화두에 걸고 생활을 했었지.

문 :  태고 보우국사는 오매일여가 90여일 간(가을-이듬해 봄)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답 :  선정삼매에 들면 눈깜짝할 사이에 3년이고 세월이 가는 것이지. 석가모니 부처님도 삼매에 드셔서 '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모르셨다'고 하셨거든. 누구든지 삼매에 들게 되면 길고 짧은 것을 논하게 되지는 않지.

문 : 외도(外道)들은 기(氣)가 있어야 한다. 기를 잘 돌려야 한다고 하는데 기(氣)는 무엇입니까?
답 : 견성법은 기(氣)를 논하지 않고 오직 바른 안목을 논하지. 이몸은 백년 이내 없어지거든. 수행인은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지.

문 : 죽는다는 것은 슬픈 것입니까?
답 : 가고 오는 것을 모르고, 참 나를 모르니까 적막하고 막막해서 슬프다고 하는 것이지.

문 :  죽은 후에도 자기가 닦은 것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지요?
답 : 그렇지. 지혜, 복덕, 업, 이 세가지는 가지고 가지.

문 : 참다운 근기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 : 부처님의 대승법, 최상승법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기(大機)를 말하는 것이지.

문 : 수좌 스님들이 몇 년간 정진을 하다가 강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답 : 신심이 빈약하고 참다운 발심을 못한고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니라. 출발 자체도 진정한 신심이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하다가 정진이 힘들고 진취도 없으니까 자포자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이지.

문 : 그러니까 한 번 수좌가 되면 끝까지 수좌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지요?
답 : 그렇지. 발심한 사람은 구경에 이를 때까지 불퇴전의 신심으로 정진을 해야 하지.

문 : 화두가 일념이 되기 전에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요?
답 : 그렇지. 정진삼매의 진가(眞價)를 모르니까.

문 : 초보자에게 권하시는 책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
답 : 육조단경이 좋지. 心要의 비결이 육조단경에 있지.

문 : 조실스님께서도 육조단경을 많이 보셨습니까?
답 : 육조단경을 수행의 길잡이로 삼았다.

문 : 결제 기간 중에 원각, 다각 등 소임을 맡은 것은?
답 : 선(禪)은 동정(動靜) 가운데서 익히는 것이지. 일거일동, 일상 생활 가운데에서 화두와 씨름을 하면서 익혀야 하는 것이지.

문 : 선지식이란 말과 스승이란 말과의 차이는?
답 : 스승은 은사스승, 법사스승 등 많고, 선지식은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안목을 갖춘 분을 말하지.

문 : 현 사회에 불신풍조가 만연하는 이유는?
답 : 탐, 진, 치와 아만, 교만, 허세 때문이지.

문 : 도인은 어떠한 분입니까?
답 : 진리대로 생활하고 모든 사람을 평화로운 곳에 인도하는 역할을 하지.

문 : 화두를 타는 방법이 있습니까?
답 : 삼배(三拜)하고 생각을 비우고 선지식이 일러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지.

문 : <無>자 화두를 참구할 때 '조주는 어째서 無라고 했는가?' 하고 그 뜻을 참구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입니까?
답 : 그렇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선사는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가?' 하고 오매불망 조주선사의 뜻을 참구하는 것이지.

문 : '이 뭣고?' 참구할 때  <이->만 바로 의심하면 <뭣고>는 필요 없다고 하는데요?
답 : 화두를 드는 데에는 화두 전체를 분명히 챙기는 것에 바로 화두를 드는 묘미(妙味)가 있는 법이지. 육조 선사가 시삼마(是森麻 : 이 뭣고) 화두를 들 때
   '모든 사람에게 한 물건이 있으되, 가고 오고 말하는 가운데에 늘 쓰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르니 이것이 무엇인고?'
   했으니 화두 전체가 분명한 가운데 의심이 철저해야 된다.

문 : 경계가 날 때마다 점검을 받는 것이 좋습니까?
답 :  말을 들어보고 바르게 지도를 하니까 자주 물을 수록 좋지.

문 : 묻는 허물보다 묻지 않는 허물이 더 큽니까?
답 : 서울을 가야 하는데 잘 모르고 엉뚱한 곳으로 가면 안되지.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곧바로 서울로 가야 하는 것이지.

문 : 어떻게 해야 업장 소멸이 됩니까?
답 : 참회하는 것도 조그마한 업장 소멸은 되는 것이지만, 견성을 해야 모든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지.

문 : 업(業)은 어떻게 이루어 집니까?
답 : 생활 가운데에 가지가지 습기(習氣)로 이루어진다.

문 : 생각이 업이라고 하는데요?
답 : 진법(眞法)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이 법이지만 중생은 진법을 모르니까 생각 생각이 다 습이 되고 업이 되는 것이지.

문 : 오매일여(悟昧一如)가 되면 배 고프고 오줌 누고 하는 생각들이 나지 않습니까?
답 : 그 가운데에서도 일념이 지속되는 것이지.

문 : 망상은 망상대로 약간은 남아 있는 것이지요?
답 : 화두가 일념이 되면 망상이 차단이 되지.

문 : 화두법 이전에는 무슨 법이 있었습니까?
답 : 염불, 독경, 관법이 있었지. 중국 육조선사 이후로 무수한 도인이 난 것은 최상승법으로 인하여 모든 습기가 제거되고 몰록 진리의 문이 열려진 것이지. 간화선만 바로 하면 누구나 견성도인이 되거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진리에 접할 수 있는 것이 간화선 화두이지.

문 : 정진 중에 과거 망상이 많이 떠오르고 미래 망상은 적은데 왜 그렇습니까?
답 : 과거의 습기로 인해서 망상이 떠 오르는 것이지.

문 : 많이 보고 듣는 것이 업식만 더 보태는 것입니까?
답 : 그렇지.

문 : 그럼, 산중에서 안보고 안듣고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닙니까?
답 :  그렇지도 않지. 선지식이 없는 것에서는 힘만 허비하는 것이지. 지혜로운 자는 선각자(先覺者)를 친견하여 바른 수행법 묻기를 좋아하지.

문 : 어떤 스님은 수좌가 300-400명이 되어도 그 분이 뜻하는 바대로 바르게 실참참구하는 사람은 한 두명밖에 없다고 하시는데, 조실스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답 : 이 일을 밝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나 십분신심과 용맹심을 가져서 선지식 스님의 지도를 받아 수행을 잘 하면 십중 팔구는 대도(大道)에 들어갈 수 있지.

문 : 선지식 스님을 만날 때마다 화두 참구 방법을 물어보야야 합니까?
답 : 바른 선지식을 만나 바르게 참구하는 법을 익혔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문 :  일반인들이 화두 참구를 하다보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지를 못하는데, 일반인들이 어떻게 생각을 정립해야 합니까?
답 : 여러가지 생각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데 이것을 화두로 돌리면 사심(邪心)이 없어지게 되지. 일상 생활을 직분에 충실하고 나머지 시간에 가지가지 생각을 하지 말고 오로지 화두 참구에 전력할 것 같으면 마음의 지혜가 계발되여 더욱 더 잘 사는 국토가 될 것이고, 온 세계가 일가친척같이 화목하고 평화가 오지,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도 농부도 정치인도 누구든지 참선을 수행해야 마음의 평화가 오는 법이지.

문 : 산중에서 20-30년 정진해도 견성을 하기가 어려운데 세속에서 처자와 살면서 견성할 수 있겠습니까?
답 : 진실하게 얼마만큼 바로 받아 들이느냐에 달렸지. 일념이 순일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지. 장시간(長時間)을 요하는 것이 아니거든. 일념이 지속되어서 홀연히 마음땅(心地)을 돌이키는 것이 견성이지. 시간에 구애되는 것이 아니야.

문 : 어떤 스님은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해서 터지지 못하면 견성을 못한다고 그러셨는데요?
답 : 형식적이 아니라 참의심이 일념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지. 하루가 지속되어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지.

문 : 무심(無心)과 무아(無我)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 : 마음 가운데에 따로 마음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지. 무심(無心)하면 무아(無我)를 누리고 무아(無我)하면 자연히 무심(無心)을 수용하느니라.

문 : 무심 상태에서는 업식이 동(動)하지 않기 때문에 무심 속에서 화두를 잡고 고기를 먹고 술을 먹어도 업식이 나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견성 전에는 업식이 나는 것이지요?
답 : 견성을 해서 진리를 봐야 정법이지. 무심 상태라고 진리를 보지 못하는 가무심(假無心)은 업식이 나는 법이지.

문 : 화두 공안 중에서도 체(體)를 나툰 공안이 있고, 용(用)을 나툰 공안이 있다고 하는데요?
답 : 체와 용에 국한되지 않고 향상구, 향하구, 최초구, 말후구, 일구, 이구, 여래선, 법신구 이러한 등등의 화두 공안이 나열되어 있지.

문 : 용(用)을 나툰 공안은 대표적으로 덕산 탁발(德山托鉢), 남전 참묘(南泉斬猫), 노파 소암(老婆燒庵)이 아닙니까?
답 : 그렇지 않지.  체니 용이니 논할 수가 없지. 그것은 선지식이 학자를 접할 때 밝혀야 하는 것이지.

문 : 법거량할 때 차별지(差別智)를 살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요번에 차별지의 답을 못하고 다음에 정진을 하고 나서 그 차별지를 설명하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답 : 바른 눈이 열리면 일체 법문이 일시에 열리게 되지.

문 : 세상살이가 고통이라고 하는데 가장 큰 괴로움은 무엇입니까?
답 : 나고 죽는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 되지.

문 : 전에 한 번 맛본 경계를 또 다시 맛보려고 하는데도 안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정진의 힘을 못 얻어서 그렇지.

문 : 잠을 몇 시간 자야 합니까?
답 : 이 참선 공부를 실천할려면 4-5시간 자는 것도 무방하지.

문 : 화두를 방편이라고들 하는데요?
답 : 화두를 실답게 참구해서 실답게 깨달으면 바로 진리에 들어가는 지름길이 되지.

문 : 식(識)이 맑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답 : 분별이 다하면 밝게 되지.

문 : 화두법(話頭法)에서 식이 맑다는 것과 관법(觀法)에서 식이 맑다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답 : 대동소이한 것이지.

문 : 대승법에서의 견성과 소승법에서의 견성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답 : 소승법에서는 견성이 없지.

문 : 사정(邪定)과 정정(正定)의 차이는?
답 : 견성을 해야 正定(바른 정)이고 못하면 邪定(삿된 정)이지.

문 : 화두를 참답게 실참실구(實參實究)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답 : 눈 밝은 선지식 밑에서 공부하면서 법문도 듣고 자주 묻고 해야지.

문 : 눈을 감고 정진을 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답 : 눈을 감고도 일념이 지속되면 관계가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혼침과 망상에 떨어지느니라.

문 : 호흡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  따로 권하지를 않는다.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데 일부러 따로 익히려고 하면 어렵지. 호흡에 관계하지 말고 화두에 전념하는 것이 힘을 더는 것이니라.

문 : 터(도량)는 어떻게 보십니까?
답 : 신라 고찰도 명당에 지어졌었고, 터가 좋으면 생기가 나고 좋지만 선지식이 없으면 소용없지. 선지식도 있고 도량이 좋으면 금상첨화지.

문 : 터가 센 곳에서 수행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답 : 터가 세고 세지 않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문 : 외마(外魔)가 있습니까?
답 : 마음의 분별이지.

문 : 가위에 눌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답 : 자나 깨나 화두를 일여하게 들면 없는 것이지.

문 : 섬, 바닷가에 도인이 적은 이유는..?
답 : 도인은 인연을 따라서 곳곳마다, 어디든지 머무르게 된다.

문 : 하안거보다 동안거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답 : 둘 다 중요하지. 발심하기에 달린 것이지.

문 : 30-40세에 힘을 얻지 못하면 내생으로 넘어가고 이 나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답 :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신심을 내어 간절한 마음으로 바른 지도를 받아 바르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문 : 현 시대의 도인이 신통이 나지 않는 이유는?
답 : 일상 생활 그대로가 다 신통이지. 별달리 신통을 구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야.

문 : 평소에 화두가 안되면 숨 떨어질 때에도 화두가 안될 것인데, 임종시에는 아미타불이라도 염(念)해야 하는 것입니까?
답 : 아미타불을 염하는 정신이 있으면 화두를 바로 챙기는 것이 더욱 좋지.

문 : 시신(屍身)을 화장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하는 것이 좋습니까?
답 : 화장을 하는 것이 좋지. 중생은 몸에 혼(魂)이 머물고 있는데 시신을 태워 없애고 법문을 해 주어서 집착을 떠나 없애 보내는 것이 좋지.

문 : 풍수가들은 묘자리의 씀에 따라서 집안이 흥하고 망한다고 하는데요?
답 : 절집 견성법 문중에는 중요시 여기지 아니한다.

문 : 도가 높을 수록 마가 세다고 하는데요, '도고마성(道高魔盛)'이란 무엇입니까?
답 : 잘못된 인식이니라.

문 : 정진 중에 꿈 가운데에서 몽사(夢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답 : 다 전생의 업이지.

문 : 조상이 천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수가 있습니까?
답 : 천도를 잘하면 영가가 집착을 놓고 좋은 곳으로 저절로 가게 되지. 신심과 정성으로 환희심을 다해서 영가를 천도할것 같으면 자연히 영가는 고(苦)를 여의고 낙(樂)을 얻어 가지. 천도는 법력을 의지하여야 되는 것이다.

문 : 대중 선방생활과 토굴 생활과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답 : 선지식이 주석하는 회상이라서 고귀한 생명력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용두사미에 불과하다.

문 : 끝으로 달마가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답 : 조사는 무의(無意)니라.

문 : 조사는 왜 뜻이 없습니까?
답 :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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