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년(戊辰年) 동안거 수선회(현담)와의 문답

문 : 조실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사상이 육조(六祖)이후 마조(馬祖)로 내려오는 것이 정맥(正脈)이고 하택(荷澤)- 규봉(圭峰)- 보조(普照)로 내려오는 문중은 문밖 사람이라 정맥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돈오돈수는 미세망념(微細妄念)이 없는 것입니까?        
답 :  그렇지. 일체번뇌(一切煩惱)와 미세망념이 몰록 끊어진 것이지.  

문 : 종정스님과 여기 조실스님 가풍은 돈오돈수 사상이지요?
답 : 그렇지. 육조문하(六祖門下)와 오종(五宗)이 벌어졌고 오종은 모두 돈오돈수 사상이지.        

문 : 깨친 다음에 인가(認可)를 받습니까? 깨치기 전에도 인가를 받습니까?        
답 : 깨친 다음에 일체법문(一切法門)에 막힘이 없어야 인가를 받는 것이지.        

문 : 깨친 후 탁마하여 확실하다고 인가해서 은밀히 전해진 후에도 미혹한 것이 있으면 또 다시 점검받는 경우도 있습니까?
답 : 향상구(向上句)가 해결되면 다시 더 닦고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이지. 법신구(法身句)나 여래선(如來禪)을 가지고 알았다는 것은 종사(宗師)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 마조(馬祖), 임제(臨濟), 덕산(德山)의 살림살이를 모르는 것이야. 마조선사께서 향상구를 제창하셨으니, 그 문하들이 모두 향상구를 모르면 견성이 아니고 임제,  덕산의 돈오돈수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바른 안목이 열리지 못하고 점수의 물이 잔뜩 들어서 큰 병폐가 되는 것이지. 육조대사(혜능)도 하택은 지해인(智解人)이라하셨고, 오조대사(홍인)는 신수(神秀)를 문 밖의 사람이라 하셨거든. 반야다라존자의 수기를 받으신 마조선사는 선(禪)에 대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안목을 지니신 분으로 마조의 가풍은 독특한 것이야.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보다도 마조선사가 더 안목이 투철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백장(百丈), 남전(南泉), 귀종(歸宗)이 마조의 법을 이어받아 이 법이 중국 천하를 덮게 되었고, 임제, 덕산도 바로 이 법을 터득한 것이지. 임제, 덕산의 법이 곧 마조의 법인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지만 이 법을 바로 알면 돈오돈수이고 이것이 부처님의 바른 수행법이 되는 것이야.        

문 : 돈오점수에서는 육조스님이 16년간 사냥꾼과 지낸 기간을 보림(점수:漸修)으로 보는데 스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답 : 돈오 후의 점수 기간이 아니라 시절 인연(時節因緣)이 있는 것이지. 오조대사도 육조대사에게 시절을 기다리라고 부촉했거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법을 펴는 데도 시절 인연이 있었던 것이지. 시절 인연이 도래하지 않으면 법을 펼수 없고 역행하게 되는 것이거든. 귀종선사는 마조선사의 제자인데 어느 납자가
   "어떤 것이 보림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한 티가 눈에 가리면 어지러이 허공 꽃이 떨어진다"
고 하셨단 말이야. 귀종선사가 아니면 이렇게 말을 못하지. 이것을 바로 들을 줄 알면 모든 종사의 본분사(本分事)를 다 알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근래 우리나라 선지식들에게 돈오점수 사상이 있게 된 것이지. '한 티가 눈에 가리면 허공 꽃이 떨어진다'고 한 뜻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종사의 눈을 바로 갖추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지.        

문 :  돈오점수 사상은 이변지(理邊智)가 부처님과 똑같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사변지(事邊智)는 부처님과 같은 능력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사변지를 닦기 위해서 닦는 것이 점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답 : 닦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즉 이변지만 바로 보게 되면 자연히 다 갖추게 되는 것이지.        
문 : 이변지만 확실히 보고 나면 사변지는 닦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신통이 저절로 나오는 것인가요?        
답 : 그럼, 이변지만 지키면 다 되는 것이지.        

문 :  소승사과(小乘四果)인 수다함(須陀含),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도 견성을 못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라한이 견성했습니까?  못했습니까?
답 : 아라한은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간 것이지. 부처님께서도 아라한은 성인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하지만 이것은 달마(達磨)의 견성법과는 다른 것이지.        
문 : 소승법(小乘法)이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까?        
답 : 소승법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고 견성법과는 차등이 있는 것이지.  
 
문 : 확철대오(確撤大悟)하면 미세망념(微細妄念)이 없다고 보십니까?  
답 : 그렇지. 돈오돈수(頓悟頓修)만 되면 미세망념이 없는 것이지.    

문 :  망상이 있는데 놀아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망상이 아주 없는 것입니까?
답 : 망상이 없는 자체를 그대로 수용하고 깨달은 경계 그대로가 일상 살림이 되는 것이지.        

문 :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이 일반인들은 아뢰야식 가운데 그대로 훈습[薰習]**이 되는데 확철대오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훈습[薰習]이 안됩니까?
답 : 그렇지. 육조대사도 제 8식을 넘어서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되면 종전의 분별 작용이 서지 못한다고 하신 것처럼 구경에 이르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이지.
**훈습 [薰習] : 향이 그 냄새를 옷에 배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가 행하는 선악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어떤 인상(印象)이나 힘을 마음 속에 남김을 이르는 말.

문 : 묘관음사의 비문에 적혀 있는 운봉선사로부터 향곡선사가 인가를 받고 난 후에 함께 정진하던 도반(성철스님)이 물었는데, 향곡선사께서 답을 못해서 더 정진을 하신 후에 답을 했다....하는 것은?        
답 : 향곡선사께서는 답을 못하시고는 소낙비가 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탑에 기대어 삼칠일간 용맹정진을 하면서 참구하시다가 깨치셨는데, 깨닫고 보니까 질문을 한 도반스님이 확실히 아는 것이 아닌 것을 별 도반스님에게 방망이를 놓고 이렇게 두 분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힘을 얻게 되고 깨닫게 되었지. 이 두 분 스님으로부터 다시 한국 선종이 임제, 덕산의 가풍을 재현하게 된 것이지. 그 전에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돈오점수 사상에 침체되어 있었거든.        

문 : 여기서 향상구는 조사선(祖師禪)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답 : 아니지, 별개야. 향상구를 알아야 차별삼매를 다 알게 되는 것이야.        

문 : 경허, 혜월로 이어지는 법맥을 운봉선사가 향곡선사에게 전하신 것인데, 향곡선사께서 인가를 받은 후, 도반의 물음에 막혀서 삼칠일 간 용맹정진을 해서 답을 했다는 것은 미진하기 때문에 더 닦은 것으로 돈오돈수의 확철대오가 아닌 돈오점수 아닙니까?        
답 : 고인들도 한 두번 늦게 깨달은 경우도 있지. 설봉선사(雪峰禪師)도 암두선사(巖頭禪師)에게 한 두번 혼이 났었고, 임제선사도 두 번 그런 적이 있고.....구경각, 즉 향상구에 이르러야 돈오돈수인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선사들의 사상이 향상구를 모르고 여래선만 알았지.        

문 : 400년 전의 서산대사까지도 돈오점수로 잘못 아신 것으로 보십니까?        
답 : 나중에는 돈오돈수를 재창했다.        
문 : 그 위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환암 혼수(幻菴混修), 구곡 각운(龜谷覺雲)같은 분들도....        
답 : 태고 보우국사가 중국으로부터 직접 선법을 전수받은 뒤로 환암, 혼수 등의 선사들은 안목이 있었고, 그 후로 실낱같이 내려오게 된 것이지.        

문 :  임제, 덕산의 살활자재(殺活自在)하는 가풍이 향곡-성철선사로부터 재현되었다고 보면 기존의 경허-혜월-운봉선사의 맥은 존중하되 거기에 맞추면 이론이나 논리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답 : 안 맞지. 우리가 허물을 짚고 넘어가야 돼. 임제 골수의 안목을 전수 받지 못하다가 변화가 온 것이지.        

문 :임제종(臨濟宗)에서 깨닫게 되면 조동종(曺洞琮), 위앙종(僞仰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과 거량해서 서로 통하고 걸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까?        
답 : 육조의 자손들도 다 똑같은 것이지. 임제의 가풍은 대기대용(大機大用)한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잘못 알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이지 알면 다 통하는 것이야.

문 : 큰스님께서는 법상에 올라가시기 전에 미리 법문을 준비하십니까?
답 : 준비가 좀 되어야지. 아침에 좀 생각하지.
문 :  준비한다는 것은 미진한 것 아닙니까?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살활자재(殺活自在)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답 : 미진한 것이 아니고, 줄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 사십구년 설법도 마찬가지야. 십이년간 소승법을 설하시고, 어느 정도 교육이 된 후에 한 단계씩 올려서 대승법으로, 마지막에는 최상승선을 설하신 것이지. 주장자만 들면 되는데 중생들이 이 뜻을 모르니까 말로 하신 것이지.

문 : 정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종할 때 매(昧, 어두울 매)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평상시에도 화두가 안되는데 숨 떨어질 때 되겠습니까?
답 : 진실되게 화두가 순일하게 될 것 같으면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나니....
문 : 숨 떨어질 때 차라리 주력(呪力) 등으로 힘을 얻는 것만 못한 것 아닙니까?
답 : 정신을 못차리는데 주력이라고 해서 나을 것이 없지. 그러나 화두 한 생각이 바로 이어지면 모든 산란심이 없어지고, 어느 것보다도 나은 것이지.

문 : 공안(公案) 화두법은 자력(自力)으로 보아야 합니까?  타력(他力)으로 보아야 합니까?        
답 : 절대 자력이지. 화두 일념이 지속되면 홀연히 타파가 되는 법이야.        

문 : 타력적인  기도나 정근(精勤)을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보십니까?        
답 : 그것은 하근(下根) 중생의 신앙 생활이지.        

문 : 복(福)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답 : 복은 마음이 깨끗하고 삿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마음이 깨끗하고 삿되지 않으면 일거일동이 선행(善行)이 됨이니 그것이 복의 원천이니라.        

문 : 덕(德)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답 : 덕도 복과 마찬가지이지. 남을 헐뜯지 않고 항시 본성의 깨끗한 성품을 따라서 평등하고 인아상(人我相), 아만(我慢)이 없는 마음을 쓸 것 같으면 덕이 되지.

문 : 지혜(智慧)는 무엇입니까?        
답 : 마음의 본 바탕을 봄으로 인해서 마음 광명이 열리니 이것을 지혜라 하나니라.

문 : 중생은 어리석고 무명업식(無明業識)에 있다고 하지만 머리를 써서 우주를 관찰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지혜와 다른 것입니까?        
답 : 지혜와 견음 알음알이는 다르지. 지혜는 본 바탕을 바로 보아서 체성(體性)의 광명을 찾는 것이고, 세상의 지식은 알음알이 분상으로 따지고 셈하는 것으로 과학이 이루어진 것이지.      

문 : 묘관음사에서 정진을 하실 적에 해운정사(海雲精舍)를 지으려고 생각하지 않으셨는지요?        
답 : 공부할 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        

문 : 인가를 받고 나서 회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신 후 장소를 물색하시던 중에 장수산의 맥이 뻗쳐 있는 것을 보시고 해운 정사를 지으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짓고 계시는 108평 큰 법당 불사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하신 것입니까?        
답 : 3년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지.        

문 : 중생들이 생각하는 알음알이 계산, 계획과 조실스님이 절을 지으시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답 : 몰록 차이가 있지. 혜안으로 미래사(未來事)를 직견(直見)하고 바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장소와 시주자와 여러가지 조건이 되어야지....  

문 : 해운정사가 장수산의 정맥으로 조실스님의 인연도 있는 것이지만, 불보살님의 가피[加被]도 입어서 절을 지으신 것은 아닌가요?  
답 : 가피는 생각 않고 그냥 세속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펴기 위하여 여기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 이렇게 좋은 조건의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숙세(宿世)에 많은 사람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보다도, 부처님법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바른 안목을 가진 자가 나와야 하는 것이지.
**가피[加被] :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

문 : 업장 소멸이 된 사람과 업장 소멸이 안된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 업장은 과거의 여러가지 습기(習氣)인데 중생은 그  습기가 없어지질 않지. 견성을 해야 없어지는 것이지.        

문 : 견성을 해야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라면 조실스님은 업장이 소멸된 것이네요.  업장이 소멸되지 않은 사람도 각기 업의 가볍고 무거운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답 : 덜하고 더한 경중(輕重)이 있지.

문 : 업이 최초로 시작되는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답 : 본심본성(本心本性)을 한 생각 등짐으로 인해서 한 생각을 쫓아서 온갖 생각이 점차 일어난 것이지.  모두 자성삼매(自性三昧)를 수용하면 생각이 붙지를 못하는데 한 생각 일어남으로 인해서 퇴보하게 되어 천차만별이 일어 나는 것이지.

문 : 깨달으면 확연하게 다 알게 됩니까?        
답 : 그렇지, 일체지(一切智)를 갖추면 다 알게 되지.        

문 : 확연하고 명백하게 아는 것을 확철대오(確撤大悟)라고 하는 것이고, 희미하게 아는 것을 그냥 안다고 하는 것입니까?        
답 :  구경(究境)에 이르러야 바로 아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지.        

문 : 화두를 하면 마음이 편안할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있는데 이것은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답 : 그렇지. 분별이 꼬리를 물고 따라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문 : 조실스님이 보실 때 한국 불교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 모두를 한 곳에 모아놓고 참선을 지도해서 인상(人相), 아상(我相)을 쉬게 하여 마음 광명을 찾음으로 인해서 종단이 화합하고 온 나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될 것이야.  껍데기 불교는 소용이 없는 것이지.        

문 :  체중현, 구중현, 현중현의 삼현(三玄)이 임제의 가풍이 아니라고 스님은 그러시는데, 임제록에는 삼현이 나오는데요?        
답 : 그것은 고탑주라는 후손이 자기의 사견(邪見)으로써 성립시킨 것이지. 임제선사의 삼현 현지(玄旨)와는 거리가 멀어.        

문 :  생사를 넷으로 나누어서 지무생사(知無生死), 체무생사(體無生死), 계무생사(界無生死), 용무생사(用無生死)라 하고 이것을 교가(敎家)의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이사무애(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와 비교하면 서로 맞는데, 이러한 것들을 후학이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깨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까?
답 : 깨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인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알려고 할 필요는 없지. 임제선사와 고인(古人)의 살림살이는 살활종탈(殺活從脫), 기용제시(機用提示)의 자재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바보가 되어서 화두와 씨름을 해서 일념삼매가 되어야 하는 것이야.    

문 :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어떻게 보십니까?        
답 : 나는 권하지를 않아. 왜냐하면 장좌불와를 해도 혼침이나 몸에 끄달리지 않는 상태이면 좋지만, 억지로 하려면 어려운 것이지. 화두가 일념으로 지속되면 장좌불와가 저절로 되고 혼침도 없어지고 괴로움도 없어지게 되는데 이를 흉내내서 몸만 망치게 되면 오히려 실다운 소득이 없게 되지. 몸은 기계와 같아서 기계에 기름을 치듯이 몇 시간을 쉬고 맑은 정신에서 혼침과 망상에 끄달리지 않고 정진을 하는 것이 좋지,      

문 : 오후 불식(午後不食)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 건강을 유지할 정도로 적당히 먹는 것이 좋지.        

문 : 화두만 바로 하면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默言), 일종식(一種食) 등은 저절로 되니까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답 : 그렇지, 화두만 바로 하면 되는 것이지.        

문 : 향상구와 일구는 어떠한 관계입니까?        
답 : 향상구를 알면 일구를 아는 것이지. 향상구와 향하구, 최초구와 말후구, 일구와 이구가 번복되면 안되는 것으로, 같은 몸이라도 머리, 손, 발이 있는 것처럼 각 부분이 있는 것인데, 미(迷)한 자는 이것을 가리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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